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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3_[NEW] 노벨화학상

[1943 노벨화학상] 게오르크 폰 헤베시 : 방사성 동위원소로 생명의 흐름을 추적한 선구자

by 어셈블러 2026.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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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출신의 헝가리 귀족. 왕수에 노벨 금메달을 녹여 나치를 속인 화학자. 방사성 원자에 미세한 꼬리표를 달아 몸속의 화학 반응을 따라다닌 사람.

게오르크 폰 헤베시의 삶은 그 자체로 20세기 과학의 드라마틱한 역사를 담은 전기입니다.

그는 1923년 하프늄이라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고, 방사성 동위원소를 추적자로 사용하는 혁명적인 기법을 개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병원에서 받는 PET 스캔, 갑상선 기능 검사, 뼈 스캔 — 이 모든 것이 헤베시가 개척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3년의 노벨상 공백을 깨뜨린 1943년의 수상자, 게오르크 폰 헤베시.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화학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가 생명의 화학을 이해하게 된 방법의 이야기입니다.


 

📜 부다페스트 귀족 가문에서 세계적 과학자로

 

게오르크 폰 헤베시(György Hevesy)는 1885년 8월 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문은 헝가리 귀족이었고, 아버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고위 관리였습니다.

부유하고 특권적인 가정 배경을 가졌지만, 헤베시는 안락한 삶보다 지적 탐구의 길을 택했습니다. 부다페스트, 베를린, 프라이부르크를 거쳐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취리히)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맨체스터에서의 만남 — 러더퍼드와 함께

 

1911년, 26살의 헤베시는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로 가서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연구팀에 합류했습니다. 러더퍼드는 190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원자핵의 존재를 처음 증명한 인물이었습니다.

맨체스터에서의 경험은 헤베시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더퍼드는 그에게 납 광석에서 방사성 납을 분리하는 과제를 주었는데, 이 작업을 수행하면서 헤베시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추적자로 사용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방사성 납(라듐 D라고 불렸던)은 비방사성 납과 화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하게 행동하지만,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성질을 이용하면 납 원자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방사성 추적자 기법이 탄생했습니다.

 

하프늄의 발견

 

헤베시의 또 다른 큰 업적은 하프늄 원소의 발견입니다.

1922년, 닐스 보어는 원자 구조 이론을 바탕으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72번 원소의 성질을 예측했습니다. 그 원소는 지르코늄과 비슷한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헤베시는 보어의 연구소가 있는 코펜하겐에서 동료 더크 코스터와 함께, 지르코늄 광석에서 이 예언된 원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1923년, 그들은 X선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지르코늄 광석 속에 72번 원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원소는 코펜하겐의 라틴어 이름 하프니아(Hafnia)에서 따서 하프늄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 방사성 추적자 기법의 탄생과 발전

 

방사성 추적자 기법의 핵심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추적하고 싶은 분자에 방사성 원자를 달아주면, 그 분자가 어디로 이동하든 방사선 검출기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최초의 생물학적 응용

 

1923년, 헤베시는 방사성 납을 이용해 식물에서 납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추적했습니다. 식물의 뿌리에 방사성 납을 포함한 용액을 공급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물의 어느 부분에서 방사선이 검출되는지 추적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방사성 추적자를 이용한 생물학 실험이었습니다.

이 실험은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 원리적 중요성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 내부에서 원소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비침습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인공 방사성 동위원소의 등장

 

1934년 졸리오 부부가 인공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방사성 추적자 기법의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방사성 동위원소는 종류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납의 방사성 동위원소는 납 이온의 이동을 추적하는 데 유용했지만, 탄소나 산소, 질소 같은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원소들의 방사성 동위원소는 자연에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공 방사성 동위원소 기술로 탄소-11, 질소-13, 산소-15, 인-32 같은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원소들의 방사성 버전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살아있는 세포 내부의 화학 반응을 직접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인체 내 원소 이동 추적

 

1930년대 중반부터 헤베시는 인체 내에서 원소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대사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32를 이용한 연구에서 그는 인이 뼈에 얼마나 빨리 흡수되는지, 뼈 속의 인이 얼마나 빠르게 교체되는지를 측정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뼈가 일단 만들어지면 고정된 구조물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헤베시의 실험은 뼈가 놀랍도록 동적인 조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뼈 속의 인이 매일 조금씩 교체되면서 새로운 원자들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뼈는 수년에 걸쳐 완전히 새로운 원자들로 교체되는 것입니다.

이 발견은 생물학과 의학에 근본적인 시각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생체 조직은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교체되는 동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 두 번째 세계대전 속의 헤베시

 

1940년 4월, 독일군이 덴마크를 침공했습니다. 헤베시가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금메달을 녹인 왕수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일군이 코펜하겐을 점령하자, 헤베시는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던 두 개의 노벨 금메달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독일군이 점령 지역에서 금을 몰수하고 있었고, 유대인 소유의 귀중품은 특히 위험했습니다. 더구나 나치 독일은 자국민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금메달을 독일로 반입하면 그 소유자인 과학자들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헤베시는 두 개의 금메달을 왕수에 녹였습니다. 금은 대부분의 산에 녹지 않지만, 진한 질산과 진한 염산의 3:1 혼합물인 왕수에는 녹습니다. 금메달은 황갈색의 용액이 되어 실험실 선반의 유리 용기 안에 담겼습니다.

독일군이 연구소를 수색했지만, 그 용기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헤베시는 용기에서 금을 다시 침전시켰고, 그 금으로 노벨 재단이 금메달을 새로 만들어 원래 수상자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과장인지에 대해 역사가들의 의견이 갈리지만, 이 이야기는 헤베시라는 인물의 재치와 과학자로서의 위기 대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전해집니다.

 

스웨덴으로의 탈출

 

1943년, 덴마크의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박해가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유대계였던 헤베시는 비밀리에 덴마크를 탈출하여 스웨덴으로 피신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는 그를 환영하며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헤베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스톡홀름에서 연구를 계속했고, 종전 후에도 스톡홀름 대학교에 남았습니다.


 

🏆 1943년 노벨화학상 — 3년의 침묵을 깨다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었던 1943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게오르크 폰 헤베시에게 노벨화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화학 과정 연구에서 동위원소를 추적자로 사용한 업적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3년 연속 수상자가 없었던 후에 처음으로 수여된 노벨화학상이었습니다. 그리고 헤베시는 스웨덴에 피신해 있는 상태였으므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수상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시상식은 축소된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수상은 3년의 침묵 끝에 과학이 다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서 특별한 무게를 가졌습니다.


 

💡 방사성 추적자 기법이 현대 의학에 가져온 것

 

헤베시가 개척한 방사성 추적자 기법은 오늘날 현대 의학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PET 스캔 — 살아있는 뇌를 들여다보다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 즉 PET 스캔은 헤베시의 아이디어를 극한까지 발전시킨 기술입니다.

플루오린-18이라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포도당 분자에 달아 만든 FDG라는 물질을 정맥 주사합니다. 이 분자는 포도당처럼 행동하여 포도당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세포들에 집중됩니다. 그리고 플루오린-18이 붕괴하면서 양전자를 방출하면, 그것을 검출하여 몸 속 어느 부위가 얼마나 활발하게 활동하는지를 3차원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뇌에서 어느 부위가 어떤 생각을 할 때 활성화되는지, 암세포가 어디에 있는지, 심장 어느 부위가 혈류가 부족한지 — 이 모든 것을 PET 스캔으로 볼 수 있습니다. 헤베시가 1920년대에 납 원자의 이동을 추적하기 시작했을 때, 이런 기술이 가능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방사성 요오드와 갑상선 치료

 

갑상선은 요오드를 집중적으로 흡수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 성질을 이용하면, 방사성 요오드(요오드-131)를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갑상선 조직에 집중되어 그 세포들을 방사선으로 파괴할 수 있습니다.

갑상선 과활성증, 갑상선암 — 이런 질환들이 이 방법으로 치료됩니다. 수술 없이, 방사성 동위원소의 정확성을 이용해 표적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뼈 스캔과 암 전이 진단

 

헤베시가 연구한 인의 뼈 흡수 원리는 오늘날 뼈 스캔이라는 검사법으로 발전했습니다. 테크네튬-99m이라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달아 만든 물질을 주사하면 뼈 조직에 집중됩니다. 암이 뼈로 전이되었을 때 그 부위에서 특히 강한 신호가 나타납니다.


 

🌍 헤베시의 후반생과 유산

 

전쟁이 끝난 후 헤베시는 스톡홀름 대학교에 계속 남았습니다. 스웨덴은 그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제공했고, 그는 감사한 마음으로 스웨덴 과학계에 기여했습니다.

1966년 7월 5일, 게오르크 폰 헤베시는 프라이부르크에서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헝가리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유럽을 누비며 연구하다가, 나치를 피해 스웨덴으로 망명하여 생애를 마친 그의 삶은 20세기 유럽 지식인의 역정을 압축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방사성 추적자 기법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의학 진단 기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천만 건의 핵의학 검사가 이루어지고, 그 검사들이 수백만 명의 환자들의 생명을 구합니다.

보이지 않는 원자에 꼬리표를 달아 생명의 흐름을 따라간 한 화학자의 아이디어가, 결국 인류 의학의 가장 소중한 도구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생명 탐구의 여정, 그 출발점에 게오르크 폰 헤베시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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