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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5_[NEW] 노벨생리의학상

[1950 노벨생리의학상] 에드워드 켄들, 필립 헨치,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 : 부신피질 호르몬과 코르티손의 발견

by 어셈블러 202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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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받는 인류, 희망을 갈망하던 시대

 

20세기 초는 인류가 수많은 질병과 씨름하던 시기였다. 항생제가 막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만성적인 염증성 질환, 특히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고통스러운 질환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은 전무했다. 이 질병은 관절을 서서히 파괴하며 극심한 통증과 변형을 유발하여 환자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가진 환자를 상상해보라. 아침마다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어 젓가락조차 들 수 없고, 무릎 관절이 부어올라 계단 한 칸을 내려가는 것도 엄청난 고통이 되는 상황. 날이 갈수록 관절이 변형되어 결국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 당시 의사들은 아스피린이나 물리치료 등 제한적인 방법만을 사용할 수 있었고, 많은 환자들은 평생을 침대에 누워 지내거나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과학자들은 인체 내부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특히 내분비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생체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면서, 질병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이 모색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부신피질에서 강력한 생리 활성 물질이 분비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 물질의 정체와 정확한 기능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1950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이야기는 이 베일을 걷어낸 세 명의 과학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고, 그 결과 의학의 역사를 바꾼 기적 같은 발견을 이루어냈다.


 

🖊️ 집념의 과학자들,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다

 

메이요 클리닉의 생화학자, 에드워드 C. 켄달

에드워드 C. 켄달(Edward C. Kendall)은 1886년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14년부터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에 위치한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생화학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초기 연구는 갑상선 호르몬인 티록신의 분리와 구조 규명에 집중되었는데, 이 업적 하나만으로도 이미 세계적인 생화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1930년대 초부터 켄달은 관심을 부신피질 호르몬으로 돌렸다. 그는 소의 부신에서 활성 물질을 분리하는 데 집중했다. 이 작업은 극도로 고된 것이었다. 수천 마리의 소 부신을 처리하여 극히 미량의 물질을 추출하고 정제하는 과정이었다. 켄달은 자신이 분리한 화합물에 알파벳 순서대로 이름을 붙였는데, 화합물 A, B, E, F... 그중 화합물 E로 명명된 물질이 바로 훗날 코르티손(Cortisone)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1935년에 이 화합물을 처음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정확한 생물학적 기능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임상의의 예리한 눈, 필립 S. 헨치

필립 S. 헨치(Philip S. Hench)는 189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의학 학위를 받은 그는 1923년부터 같은 메이요 클리닉에서 류마티스 질환 전문의로 활동했다.

헨치의 가장 위대한 자질은 임상 현장에서 발휘된 예리한 관찰력이었다. 그는 수년간 환자들을 돌보면서 이상한 패턴을 발견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던 환자들이 임신 중에 증상이 놀랍도록 호전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황달에 걸린 환자들도 일시적으로 관절염 증상이 완화되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헨치는 수십 명의 환자에서 이 패턴을 확인했다.

그는 이 현상이 신체 내에서 생성되는 어떤 물질이 염증을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그 물질이 호르몬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부신피질에서 나올 것이라고 가정했다. 켄달이 분리한 화합물 E(코르티손)가 바로 그 물질일 수 있다는 직관이 그를 켄달과의 협력으로 이끌었다.

스위스의 유기화학 거장,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Tadeusz Reichstein)은 1897년 폴란드 브워츠와베크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았다.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비타민 C의 공업적 합성에 성공한 것으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었다.

라이히슈타인은 켄달과는 독립적으로 부신피질 호르몬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부신 추출물에서 무려 29가지에 달하는 스테로이드 화합물을 분리하고 그 화학 구조를 규명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코르티손을 포함한 여러 부신피질 호르몬의 화학적 합성을 위한 중요한 중간 단계를 개발하여, 이 물질들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 생체 조절의 열쇠, 코르티손을 찾아가는 여정

 

켄달, 헨치, 라이히슈타인의 연구가 합쳐지는 과정은 현대 의학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1948년 9월, 헨치는 켄달과 협력하여 켄달이 힘들게 분리한 코르티손을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에게 투여하는 임상 시험을 시작했다. 당시 코르티손은 극히 희귀하고 비싼 물질이었다. 수천 마리의 소 부신에서 겨우 몇 그램을 얻을 수 있었고, 그마저도 당시의 합성 기술로는 대량 생산이 어려웠다.

첫 번째 환자는 심각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던 29세 여성이었다. 헨치는 그녀에게 코르티손을 주사했다. 첫 하루, 이틀, 사흘.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흘째 되던 날, 환자가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닷새째, 그녀는 걸어서 병실 밖을 나갔다. 엿새째, 그녀는 쇼핑을 나갔다.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던 환자가 쇼핑을 하러 나간 것이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헨치와 그의 팀은 흥분과 감격으로 가득 찼다. 이어진 다른 환자들에게서도 유사한 극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1949년에 발표된 이 결과는 전 세계 의학계를 충격과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코르티손의 작용 원리는 이후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코르티손(정확히는 체내에서 활성형인 코르티솔로 전환됨)을 비롯한 부신피질 호르몬은 세포 내부로 들어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염증 반응을 촉진하는 단백질들의 생성을 억제하고, 면역 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강력한 항염증 효과를 발휘한다. 이는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염증 반응의 근본적인 생화학적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 치료의 희망 뒤에 숨겨진 경쟁과 도전

 

코르티손의 발견과 치료 효과는 의학계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켄달과 라이히슈타인이 코르티손을 분리하고 그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 양이 극히 미량이었다는 점이다. 수천 마리의 소 부신에서 겨우 몇 밀리그램의 코르티손을 얻을 수 있었으니, 임상 시험이나 대중적인 치료에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제약회사 머크(Merck & Co.)는 코르티손의 합성에 막대한 자원과 인력을 투자했다. 1940년대 중반, 머크의 화학자 루이스 사레트(Lewis Sarett)는 소의 담즙산에서 코르티손을 부분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코르티손의 대량 생산 가능성을 열어준 중요한 돌파구였다.

이 시기에는 스테로이드 화학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자들이 경쟁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멕시코의 화학자 러셀 마커(Russell Marker)는 멕시코 야생 얌에서 디오스게닌이라는 스테로이드 전구체를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스테로이드 호르몬 합성에 혁신을 가져왔다. 그의 발견은 코르티손뿐만 아니라 경구 피임약을 포함한 다른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산업적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코르티손의 성공은 곧 새로운 과제를 낳았다. 처음에는 기적의 약처럼 보였지만, 장기간 고용량 사용 시 골다공증, 고혈압, 당뇨병, 면역력 저하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코르티손이 의학에 가져온 혁명은 동시에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는 새로운 과제를 의학계에 던졌다.


 

📱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든 코르티손의 유산

 

코르티손의 발견은 1950년대 이후 의학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코르티손과 그 유도체인 스테로이드 약물(corticosteroids)은 현대 의학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약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물론, 천식 및 알레르기 반응,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피부 질환, 루푸스,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다발성 경화증 등 수많은 질환에서 스테로이드는 염증을 억제하고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데 필수적인 약물로 사용된다. 천식 환자들은 흡입용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여 기도 염증을 줄이고 발작을 예방하며,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은 국소 스테로이드 연고로 피부 염증을 완화한다.

장기 이식 수술 후 면역 거부 반응을 억제하는 데도 스테로이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식된 장기를 신체가 외부 물질로 인식하여 공격하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이식 성공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코르티손의 발견이 없었다면 현대의 장기 이식 의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테로이드는 강력한 효과만큼이나 부작용도 동반한다. 장기간 고용량 사용 시 골다공증, 면역력 저하, 고혈압, 당뇨병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현대 의학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용량과 기간을 신중하게 조절하고, 보다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스테로이드 제제를 개발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관찰과 협력, 그리고 인류애가 빚어낸 기적

 

195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이야기는 과학적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켄달의 끈질긴 생화학적 분리 작업, 라이히슈타인의 정교한 유기화학적 합성 연구, 그리고 헨치의 예리한 임상적 관찰과 가설 설정은 마치 퍼즐의 조각처럼 서로를 보완하며 코르티손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완성했다. 생화학자가 물질을 분리하고, 화학자가 구조를 밝히며 합성의 길을 열고, 임상의학자가 그 물질의 치료적 가치를 입증하는, 이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했다.

헨치가 수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보며 그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을 찾으려 했던 열정, 켄달과 라이히슈타인이 미지의 물질을 탐구하며 인체 생리의 비밀을 풀고자 했던 끈기는 모두 인간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숭고한 목표에서 비롯되었다.

코르티손이 처음 투여되어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가 일어나 걸음을 내딛던 그 순간,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약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의 끈질긴 탐구, 수많은 실패, 그리고 인류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이 마침내 현실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과학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인류의 복지에 기여할 때 가장 큰 가치를 발휘한다는 교훈을 이 세 과학자의 이야기는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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