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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3_노벨경제학상

[2015 노벨경제학상] 앵거스 디턴 : 가난한 사람들의 '소비'를 통해 불평등을 증명하다

by 어셈블러 2025.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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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무엇을, 왜, 어떻게 소비하는가

 

우리는 매일 돈을 씁니다. 식료품을 사고, 교통비를 내고, 월세를 냅니다. 이 '소비'라는 행위는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한 사람의 삶과 한 사회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데이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까지, 경제학은 이 '소비'를 너무 거대하게만 바라봤습니다. "국가 총소비"라는 뭉뚱그려진 숫자 뒤에 숨은 개개인의 삶에는 무관심했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쓰는지, 그들의 작은 소비가 그들의 삶과 건강, 그리고 빈곤 탈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파고든 학자는 드물었습니다.

여기, "경제학은 '평균'이 아니라 '사람'을 연구해야 한다"고 믿었던 한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돋보기를 들고 전 세계 수백만 가구의 가계부를 파고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소득이 늘면 식비 비중을 얼마나 줄이는가?", "식료품에 세금을 올리면, 가난한 사람들은 단백질 섭취를 얼마나 포기하는가?", "인도와 아프리카의 빈곤은 정말 줄어들고 있는가?"

이 집요한 질문들을 통해 '소비, 빈곤, 그리고 복지'의 관계를 완전히 새로 정립한 공로로,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 [Angus Deaton] 교수에게 수여되었습니다.


 

🏆 공식 수상 이유 : 소비, 빈곤, 그리고 복지에 대한 분석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그의 공로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소비, 빈곤, 그리고 복지에 대한 분석 공로 [For his analysis of consumption, poverty, and welfare]

이 세 개의 키워드는 앵거스 디턴의 연구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1. 소비 [Consumption] : (미시경제) 개인이 소득과 가격에 따라 어떻게 소비를 '선택'하는가?
  2. 빈곤 [Poverty] : (개발경제) 그 소비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는 전 세계의 '빈곤'을 어떻게 정확히 측정할 것인가?
  3. 복지 [Welfare] : (보건경제) 소득과 소비를 넘어, 사람들의 '행복'과 '건강', 즉 진정한 '복지' 수준은 어떻게 측정하고 개선할 것인가?

디턴은 이 세 단계를 평생에 걸쳐 밟아가며, 경제학이 '돈'을 넘어 '삶'을 다루는 학문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 첫 번째 기둥 : 소비자는 어떻게 선택하는가

 

디턴의 초기 업적은 '어떻게 하면 정부 정책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정부가 우유에 세금을 10% 올린다고 가정해봅시다. 사람들은 우유 소비를 얼마나 줄일까요? 그리고 우유 대신 무엇을 살까요? 그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것은 어떤 계층일까요?

 

AIDS 모델 : 정부 정책의 '나침반'을 만들다

 

1980년, 디턴은 존 무엘바우어 [John Muellbauer]와 함께 현대 미시경제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모델 중 하나인 AIDS 모델 [Almost Ideal Demand System, 준 이상적 수요 체계]을 개발합니다.

이름은 다소 무섭게 들리지만, 그 내용은 정부 정책 담당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습니다.

이 모델은 "소득 수준이 다른 각 그룹이, 전체 소득에서 식비, 주거비, 교통비 등에 각각 몇 %를 지출하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했을까요? AIDS 모델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부가 특정 물품에 세금을 매기면 그저 '소비가 줄어든다' 정도만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델은 "우유에 세금을 부과하면, 저소득층은 우유 소비를 5% 줄이고, 그 돈을 아끼기 위해 고기 소비까지 2% 줄이게 된다. 반면 고소득층은 아무 영향이 없다"와 같이, 정책이 소득 계층별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고통을 전가하는지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디턴 패러독스 : 소득보다 '매끄러운' 소비

 

디턴은 소비를 연구하다가 또 하나의 큰 수수께끼를 발견합니다. 바로 디턴 패러독스 [Deaton Paradox]입니다.

당시 주류 경제학 이론[밀턴 프리드먼의 '항상 소득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의 '소비'는 '미래에 벌어들일 총소득'에 따라 결정되므로, '현재 소득'이 일시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끄럽고 안정적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디턴이 실제 데이터를 파고들어 보니, 이상했습니다. 사람들의 소비는 이론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들쭉날쭉했습니다. 특히 소득이 갑자기 줄어들 때, 사람들은 소비를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줄였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하며, 당장의 현금 흐름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디턴 패러독스는 이후 "사람들은 왜 저축을 충분히 하지 않는가?", "유동성이 소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등 행동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수많은 후속 연구를 촉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 두 번째 기둥 : 빈곤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가

 

디턴의 관심은 선진국을 넘어 개발도상국, 특히 인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정말 세계 빈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가?"라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세계은행의 1달러"를 의심하다

 

우리는 흔히 "전 세계 빈곤 인구가 줄었다"는 통계를 접합니다. 이는 대부분 세계은행[World Bank]이 정한 '하루 1달러(혹은 1.9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절대 빈곤선을 기준으로 합니다.

디턴은 이 통계의 '허점'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이 빈곤선을 계산하는 기준인 PPP [Purchasing Power Parity, 구매력 평가 환율]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 "인도에서의 1달러와 케냐에서의 1달러, 그리고 미국에서의 1달러가 과연 같은 가치를 지니는가?"
  • "인도 뭄바이의 물가와 시골 마을의 물가는 완전히 다른데, 어떻게 하나의 빈곤선으로 묶을 수 있는가?"

디턴은 각국의 가계 조사 데이터 [Household Survey]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며, 기존의 거시 통계가 얼마나 많은 '평균의 함정'에 빠져있는지를 폭로했습니다. 그는 "빈곤을 측정하려면, 국가 GDP 같은 거대한 숫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사는지' 그들의 가계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집요한 연구 덕분에, 국제기구들은 빈곤선을 더 정교하게 다듬기 시작했고, 경제학자들은 빈곤을 '소득'이 아닌 '실제 소비'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 세 번째 기둥 : 무엇이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2015년 노벨상을 받을 당시, 디턴은 이미 경제학의 또 다른 지평을 열고 있었습니다. 바로 '소득'을 넘어선 '건강'과 '행복'의 영역입니다.

 

절망의 죽음 : '디턴의 절규'

 

디턴은 그의 아내이자 프린스턴 동료 교수인 앤 케이스 [Anne Case]와 함께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는 절망의 죽음 [Deaths of Despair]이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들은 미국 사회의 사망률 데이터를 분석하다가 경악스러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거의 모든 인종과 연령 집단에서 사망률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즉, 더 오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딱 한 집단, 즉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중년 백인 남성 집단에서만 사망률이 오히려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자살, 약물 과다 복용 [특히 오피오이드], 그리고 알코올성 간 질환이었습니다. 디턴과 케이스는 이 세 가지 '죽음'을 절망의 죽음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들은 이 현상이 단순히 '돈이 없어서'[빈곤]가 아니라고 진단했습니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진 제조업의 붕괴, 안정적인 일자리의 상실,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 속에서, 이들이 사회로부터 '쓸모없어졌다'고 느끼는 사회적 고통절망감이 누적된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앵거스 디턴은 가계부의 '소비'에서 출발한 경제학자였지만, 그의 연구는 마지막에 "무엇이 사람을 살게 하고, 무엇이 사람을 죽게 하는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한 것입니다.


 

🧐 TMI & 비하인드 스토리

 

  • 위대한 탈출 : 디턴의 사상을 집대성한 책으로 <위대한 탈출> [The Great Escape]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류가 어떻게 빈곤, 질병, 조기 사망으로부터 '탈출'해왔는지를 조명하는 동시에, 이 '탈출'의 과정이 어떻게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냈는지를 통찰합니다.
  • 해외 원조에 대한 비판 : 디턴은 '해외 원조'가 가난한 나라를 돕는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정부 대 정부로 이루어지는 막대한 원조가 종종 부패한 독재 정권을 유지시켜주고, 그 나라의 자생적인 정치·경제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했습니다.
  • 스코틀랜드의 자부심 : 그는 1945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에서 오래 재직하며 미국 시민권자가 되었지만,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도 자신의 스코틀랜드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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