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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4_노벨생리의학상

[1943 노벨생리의학상] 헨리크 담 & 에드워드 도이지 : 생명의 '응고 스위치', 비타민 K를 발견하다

by 어셈블러 2025.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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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벨상 수상자 시리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몸의 '피'는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생명수가 통제할 수 없이 흘러나온다면, 그것은 순식간에 죽음의 공포가 됩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혈우병'처럼 피가 멈추지 않는 병을 두려워해왔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과학자들은 특정 조건에서 피가 멎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 몸의 '응고 스위치'를 켜는 결정적인 열쇠를 발견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도 생명의 비밀을 밝혀낸 두 과학자, 덴마크의 헨리크 담 [Henrik Dam]과 미국의 에드워드 도이지 [Edward Adelbert Doisy]입니다.

이들은 혈액 응고에 필수적인 미지의 물질, 비타민 K를 발견하고 그 정체를 규명해냈습니다. 이들의 발견은 오늘날 전 세계 수많은 신생아의 생명을 구하고, 외과 수술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위대한 업적이 되었습니다.

어둠의 시대에 생명의 빛을 밝힌 두 거인의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 병아리가 가르쳐준 미지의 물질

 

이야기는 1929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실험실에서 시작됩니다. 생화학자 헨리크 담 교수는 사실 비타민이 아닌 '콜레스테롤' 대사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아리에게 콜레스테롤이 완전히 제거된 특수 합성 사료를 먹이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병아리들에게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날개 밑, 다리, 근육 등 몸 곳곳에 원인 모를 출혈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상처가 없는데도 피하 출혈이 발생했고, 작은 상처에도 피가 멎지 않았습니다.

담 교수는 즉각 당시 알려져 있던 '괴혈병' [비타민 C 부족]을 의심했습니다.

그는 병아리들에게 레몬 주스(비타민 C)를 먹여보았습니다. 하지만 출혈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시 알려진 모든 비타민(A, B, D, E)을 사료에 추가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 헨리크 담은 위대한 과학자의 직감을 발휘합니다.

"이것은 기존에 알려진 비타민의 결핍이 아니다. 사료에서 제거된 '지용성 물질' 중에, 혈액 응고를 조절하는 '미지의 인자'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 인자가 없으면 혈액 속 '프로트롬빈' [응고 인자]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1935년, 그는 이 미지의 물질에 '응고'를 뜻하는 덴마크어 'Koagulation'의 첫 글자를 따서 '비타민 K' [Koagulationsvitamin]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비타민 K'의 존재와 기능을 세상에 알렸지만, 아직 그 정체는 안개 속에 있었습니다.

 

✍️ 'K'의 화학적 정체를 추적하다

 

헨리크 담이 '현상'을 발견했다면, 이제 그 '실체'를 밝혀낼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 바통은 대서양 건너편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의 생화학자, 에드워드 도이지 교수에게 넘어갔습니다.

도이지는 이미 여성 호르몬 '에스트론'을 순수 분리해낸 당대 최고의 생화학자였습니다. 그는 담의 발표에 주목하고, 이 미지의 물질을 순수한 형태로 분리하고 그 화학 구조를 밝혀내겠다는 도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비타민 K는 식물에 극미량 존재했습니다. 도이지의 연구팀은 수천 킬로그램의 '알팔파' [자주개자리, 식물]를 갈고, 끓이고, 유기 용매로 추출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동시에, 부패한 '생선 가루'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1939년, 마침내 도이지는 두 가지 형태의 비타민 K를 순수하게 분리하고 그 구조를 밝혀내는 데 성공합니다.

  • 비타민 K1 [필로퀴논] : 알팔파와 같은 녹색 식물에서 발견
  • 비타민 K2 [메나퀴논] : 부패한 생선 가루나 장내 세균이 생성

그의 업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바로 실험실에서 비타민 K1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까지 성공합니다.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수천 킬로그램의 알팔파를 갈아 넣지 않아도, 이 생명의 스위치를 약으로 만들어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 것입니다.

 

🏆 전쟁 속에서 빛난 생명의 발견

 

1943년, 노벨 위원회는 이 두 과학자의 공로를 인정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지만, 인류의 생명을 구한 이 위대한 발견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비타민 K의 발견을 공로로" (헨리크 담) "비타민 K의 화학적 성질을 규명한 공로로" (에드워드 도이지)

노벨 위원회는 두 사람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여 공적을 기렸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덴마크는 1940년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상태였습니다. 헨리크 담은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점령된 조국이 아닌, 강연차 방문 중이던 미국에서 망명자 신분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그는 1944년 뉴욕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전쟁이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 속에서, 생명을 구하는 과학의 가치는 더욱 역설적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 신생아의 생명을 구한 '기적의 주사'

 

비타민 K의 발견이 의학계에 가져온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로 '신생아'들에게서 일어났습니다.

과거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아기가 뇌나 장기에서 내부 출혈을 일으켜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를 입는 '신생아 출혈성 질환'이 흔했습니다.

과학자들은 비타민 K의 발견을 통해 그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1. 비타민 K는 지용성이라 태반을 잘 통과하지 못해,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비축량이 적습니다.
  2. 비타민 K를 생성하는 장내 세균이 아직 아기의 장 속에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3. 모유에는 비타민 K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즉, 모든 신생아는 일시적인 '비타민 K 결핍' 상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밝혀진 후, 전 세계 병원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비타민 K 주사 한 방을 놓는 것이 표준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간단한 조치 하나로, 원인 모를 죽음의 공포에 떨었던 '신생아 출혈성 질환'은 사실상 정복되었습니다.

 

🧐 수술의 안전성을 높이고, 역설을 발견하다

 

비타민 K의 혜택은 신생아에게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황달' 환자들은 외과 의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간에서 생성된 담즙(쓸개즙)이 막혀서 황달이 생기는데, 담즙이 없으면 장에서 '지용성'인 비타민 K를 흡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자들은 비타민 K 결핍으로 혈액 응고 인자를 만들지 못해, 간단한 수술에도 과다출혈로 사망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의사들은 수술 전, 이들에게 비타민 K를 '주사'로 투여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타민 K가 간으로 직접 전달되자 응고 인자가 정상적으로 생성되었고, 수술은 안전해졌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발견됩니다.

비타민 K가 어떻게 응고 인자를 '만드는지'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반대로 이 과정을 '방해하는' 물질도 찾아냈습니다. 바로 '디쿠마롤'이나 '와파린' 같은 물질입니다.

이 물질들은 비타민 K의 작용을 차단하여, 피가 굳지 않게, 즉 '묽게' 만듭니다.

오늘날 심장병이나 뇌졸중 환자에게 '혈전' [피떡]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처방하는 핵심 약물, 항응고제가 바로 이 비타민 K의 발견이라는 동전의 반대편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 두 수상자에 대한 TMI

 

  • 헨리크 담의 망명 생활: 1940년 4월, 나치가 덴마크를 침공하던 바로 그날, 담은 미국 강연을 위해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간 미국에 머물며 연구를 계속했고, 1945년 덴마크가 해방된 후에야 영웅으로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 에드워드 도이지의 또 다른 업적: 도이지는 비타민 K뿐만 아니라,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을 처음으로 결정 형태로 분리해낸 공로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20세기 생화학의 두 가지 거대한 흐름(비타민과 호르몬)에 모두 핵심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 이름의 유래: K는 덴마크어 'Koagulation'에서 왔지만, 이 발견에 기여한 다른 많은 과학자가 각자의 언어로 이름을 붙이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Stollingsvitamine' (역시 '응고'라는 뜻)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담의 명명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오늘은 피가 멎는 생명의 핵심 원리, 비타민 K를 발견한 헨리크 담과 에드워드 도이지의 이야기를 만나봤습니다. 병아리의 작은 출혈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전 세계 신생아들의 생명을 구하는 거대한 강물이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또 다른 위대한 지성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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