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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5_노벨화학상

[1924 노벨화학상] 수상자 없음 : 침묵의 해, 그리고 노벨상이 외면한 비운의 천재 '길버트 루이스'

by 어셈블러 2025.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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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4년, 스톡홀름의 단상은 비어 있었다

 

매년 12월이 되면 스웨덴 스톡홀름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축제의 장이 됩니다. 인류를 위해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노벨상이 수여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24년, 화학상 시상식의 단상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1917년이나 1919년처럼 불가피한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1924년은 평화로운 시기였고, 과학계는 양자역학의 태동과 함께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 위원회는 차가운 한 문장으로 그해의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올해 추천된 후보작 중,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명시된 조건을 충족하는 연구가 없으므로 상을 수여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1924년의 화학계에는 상을 받을 만한 영웅이 없었을까요? 많은 과학사가들은 이 해를 '노벨상 역사상 가장 큰 실수 중 하나' 가 저질러진 시기로 기억합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지만, 현대 화학의 문법을 만든 진정한 거장입니다. 화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려봤을 '점(Dot)'들의 우주, '루이스 구조식' 의 창시자.

노벨상 후보에 무려 41번이나 올랐지만 끝내 선택받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 길버트 뉴턴 루이스(Gilbert N. Lewis) 의 이야기를 통해 1924년의 침묵 뒤에 숨겨진 사연을 들여다보겠습니다.

 

📜 수상자가 없었던 이유 : 너무 엄격했거나, 혹은 편협했거나

 

노벨상 규정에는 "그 해에 적합한 수상자가 없으면 상금을 다음 해로 이월하거나 기금으로 귀속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1924년이 바로 그런 해였습니다.

당시 노벨 화학상 위원회는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검증된 실험적 발견을 선호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의 움직임이나 추상적인 이론 화학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화학계는 거대한 격변기였습니다. 물리학에서 시작된 '양자역학' 의 파도가 화학으로 넘어오면서, 원자들끼리 어떻게 결합하는지 그 근본 원리를 파헤치는 '이론 화학' 이 꽃피고 있었습니다.

위원회는 이 새로운 물결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외면했습니다. 그들이 "적합한 사람이 없다"며 문을 걸어 잠갔을 때, 문밖에는 현대 화학의 기초를 닦은 거인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화학자 길버트 루이스였습니다.

 

🧐 길버트 N. 루이스 : 화학 결합의 비밀을 푼 사나이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길버트 루이스는 천재였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공부했고,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 유학을 다녀와 버클리 대학교(UC Berkeley) 화학과의 학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칠판에 복잡한 수식을 적는 대신,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인 그림을 그려주었습니다.

"원자들은 안정해지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바깥쪽 껍질에 전자 8개를 채워야 한다. 이것이 '옥텟 규칙(Octet Rule)'이다."

당시만 해도 원자가 어떻게 결합하는지는 미스터리였습니다. 어떤 원자는 전자를 뺏고(이온 결합), 어떤 원자는 전자를 줍니다. 그런데 탄소 같은 애들은 뺏지도 주지도 않고 끈끈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루이스는 1916년, 역사적인 논문 <원자와 분자>를 통해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서로 전자를 뺏지 못한다면, 서로의 전자를 내놓고 '공유'하면 되지 않는가?"

그는 원자 기호 주변에 전자를 점(Dot)으로 찍어서 표현했습니다. 수소(H)는 점 하나(•), 염소(Cl)는 점 일곱 개(::::•). 이 둘이 만나면 서로 점 하나씩을 내놓아 가운데 두 개의 점(:) 을 공유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유 결합(Covalent Bond)' 의 발견이자, 오늘날 모든 화학 교과서의 1장에 나오는 '루이스 전자점식(Lewis Dot Structure)' 입니다.

이 단순한 점 몇 개로 세상 모든 분자의 모양과 결합 원리가 설명되었습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이나 화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적인 발견이었습니다.

 

⚡️ 왜 그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나?

 

루이스의 업적은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 열역학: 복잡한 열역학 법칙을 화학에 적용하여 체계화했습니다. (이 공로로 이미 노벨상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 산과 염기의 정의: "산은 수소를 내놓는 것"이라는 좁은 정의를 깨고, "산은 전자쌍을 받는 것"이라는 '루이스 산-염기' 개념을 만들어 화학 반응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 중수소 분리: 스승인 리처즈(1914년 수상자)도 하지 못한 중수(Heavy water)를 세계 최초로 분리해 냈습니다. (이 업적으로는 그의 제자인 해롤드 유레이가 1934년에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무려 41번이나 노벨상 후보에 지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톡홀름은 끝내 그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1. 적을 만든 성격

루이스는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론에 확신이 있었고, 반대파들을 거침없이 비판했습니다. 특히 1920년 노벨상 수상자인 발터 네른스트와 열역학 문제로 심각하게 대립했는데, 네른스트가 루이스를 몹시 싫어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2. 너무 시대를 앞서간 이론

그의 '전자쌍 공유' 개념은 당시의 물리학(양자역학이 완성되기 전)으로는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노벨 위원회는 "너무 사변적이다"라며 망설였습니다. 나중에 라이너스 폴링(1954년 수상자)이 양자역학을 도입해 루이스의 이론이 맞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3. 미국에 대한 견제?

당시만 해도 과학의 중심은 유럽이었습니다. 미국, 그것도 서부의 버클리 대학에서 나온 촌스러운(?) 화학자를 유럽 중심의 위원회가 껄끄러워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 1924년의 또 다른 후보들 : pH의 아버지

 

1924년에 루이스 말고도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던 또 다른 인물은 덴마크의 화학자 S.P.L. 쇠렌센(Sørensen) 이었습니다.

그는 칼스버그 맥주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pH(수소 이온 농도 지수)' 라는 개념을 창안했습니다. 우리가 산성도를 이야기할 때 쓰는 "pH 7이 중성이다"라는 바로 그 척도입니다.

맥주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개발된 이 개념은, 생물학, 의학, 농업 등 전 과학 분야의 표준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 역시 수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너무 실용적인 기술에 가깝다"는 이유 등으로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 TMI : 비운의 죽음

 

루이스의 말년은 쓸쓸했습니다. 그는 1946년 어느 날, 실험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미스터리에 싸여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심장마비였지만, 실험실에서 시안화수소(청산가스) 가 누출된 흔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기 직전, 그와 평생을 경쟁했던 어빙 랭뮤어(193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버클리를 방문해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루이스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날 오후 실험실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가 노벨상에 대한 좌절감과 라이벌에 대한 열등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제자들과 동료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 버클리 대학 화학관의 이름을 '루이스 홀(Lewis Hall)' 로 지었습니다.

 

🌏 맺음말 : 왕관 없는 제왕

 

19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명단은 '없음'입니다. 하지만 그 빈칸은 역설적으로 노벨상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길버트 루이스는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오늘날 전 세계의 모든 화학도들은 그가 고안한 방식으로 분자를 그리고, 그가 정의한 방식으로 산과 염기를 이해합니다.

화학의 언어를 만든 사람, 전자의 짝짓기를 통해 결합의 본질을 꿰뚫어 본 통찰력. 노벨상이 없어도 그의 이름은 주기율표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1924년의 빈자리는 오히려 그를 '무관의 제왕' 으로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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