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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5_노벨화학상

[1926 노벨화학상] 테오도르 스베드베리 : 중력을 이기다, '초원심분리기'로 단백질의 무게를 잰 과학자

by 어셈블러 2025.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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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중력의 수십만 배를 만든다면?"

 

우리가 흙탕물을 가만히 두면 흙은 바닥에 가라앉고 맑은 물만 위에 남습니다. 중력 때문입니다.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뜨죠.

하지만 단백질이나 바이러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들은 어떨까요? 이들은 너무 가벼워서 지구의 중력만으로는 가라앉지 않고 물속에 둥둥 떠다닙니다(브라운 운동).

20세기 초, 화학자들은 단백질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단백질은 일정한 크기를 가진 분자인가, 아니면 그냥 덩어리들이 뭉쳐 있는 혼합물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단백질을 '무게별로 분리' 해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중력으로는 어림도 없었죠.

"중력이 약하다면, 우리가 인공적으로 엄청나게 센 중력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오늘 소개할 1926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무모한 도전을 성공시킨 스웨덴의 화학자입니다.

팽이처럼 회전하는 힘을 이용해 지구 중력의 수십만 배에 달하는 힘을 만들어내는 기계, '초원심분리기(Ultracentrifuge)' 를 발명한 테오도르 스베드베리(Theodor Svedberg).

그가 만든 기계 덕분에 인류는 생명의 기본 단위인 단백질과 DNA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콜로이드의 끝을 보고 싶다

 

테오도르 스베드베리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그는 당시 화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던 '콜로이드(Colloid)' 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콜로이드는 우유나 젤리처럼 미세한 입자가 액체 속에 퍼져 있는 상태입니다. 1925년 노벨상 수상자인 지그몬디가 '초현미경'으로 콜로이드 입자를 눈으로 확인했다면, 스베드베리는 그 입자들의 '크기와 무게' 를 정확히 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콜로이드 입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 분자들의 방해(브라운 운동)를 받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스베드베리는 생각했습니다.

"브라운 운동을 이겨내고 입자를 강제로 가라앉히려면, 지구 중력보다 훨씬 더 강력한 원심력이 필요하다."

그는 실험실에서 모터와 회전판을 조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목표는 시료가 담긴 튜브를 초고속으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 초원심분리기의 탄생 : 40,000 RPM의 괴물

 

원심분리기는 세탁기 탈수 통과 같은 원리입니다. 통을 빠르게 돌리면 물이 밖으로 튕겨 나가듯, 무거운 입자는 튜브 바닥 쪽으로 밀려납니다.

하지만 스베드베리가 만들려는 것은 보통 세탁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분당 회전수(RPM)가 수만 번에 달하는 괴물 같은 기계를 설계했습니다.

  1. 초고속 회전: 분당 40,000번 이상 회전하여 지구 중력의 100,000배(10만 G) 가 넘는 힘을 만들어냈습니다.
  2. 광학 시스템: 회전하는 도중에 멈추지 않고도 입자가 얼마나 가라앉았는지 볼 수 있도록, 기계 안에 특수한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했습니다.
  3. 온도 조절: 고속 회전으로 인한 마찰열로 단백질이 익지 않도록 수소 가스로 냉각 시스템을 갖췄습니다.

1924년, 드디어 완성된 '초원심분리기' 가 굉음을 내며 돌아갔습니다. 스베드베리는 이 기계에 '헤모글로빈' 을 넣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헤모글로빈은 크기가 제각각인 덩어리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입자가 똑같은 속도로 가라앉아 '단일한 띠' 를 형성했습니다.

"보라! 단백질은 무작위로 뭉친 덩어리가 아니다. 명확한 분자량(약 68,000)을 가진 거대 분자(Macromolecule)다!"

이 발견은 당시까지 단백질을 그저 '작은 분자들의 느슨한 집합체'라고 여겼던 통념을 완전히 깨부수었습니다. 단백질도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분자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 스베드베리 단위 (S) : 그를 기리는 이름

 

스베드베리는 초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수많은 단백질의 분자량을 측정했습니다. 그는 입자가 가라앉는 속도(침강 계수)를 나타내는 단위로 자신의 이름 이니셜인 'S (Svedberg)' 를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생물학을 배우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용어들,

  • "리보솜은 70S다 (30S + 50S)"
  • "16S rRNA를 분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S' 가 바로 스베드베리의 이름입니다. 그가 만든 단위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분자생물학의 표준 언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 인류를 위한 기계

 

스베드베리의 발명품은 단순히 무게만 재는 저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물질을 '분리(Separation)'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초원심분리기는 이후 과학과 의학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 바이러스 분리: 1950년대 소아마비 바이러스를 순수하게 분리하여 백신을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2. 동위원소 농축: 우라늄 동위원소를 무게별로 분리하여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의 연료를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3. DNA 연구: 메셀슨과 스탈이 DNA의 복제 방식(반보존적 복제)을 증명할 때 사용한 것도 바로 초원심분리기였습니다.

 

🏆 노벨상 : 스웨덴의 자존심

 

1926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자국의 과학자 테오도르 스베드베리에게 노벨 화학상을 수여합니다. 수상 이유는 "분산계(콜로이드)에 대한 연구와 초원심분리기의 개발 공로" 였습니다.

그는 노벨상의 본고장인 스웨덴에서 나온 몇 안 되는 수상자로서 국민적인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는 연구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수준급의 수채화 화가이자 사진작가이기도 했습니다. 꽃과 자연을 사랑했던 그는 "과학 실험도 예술처럼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TMI : 기계 덕후의 열정

 

1. "더 빨리, 더 세게!"

스베드베리는 속도광이었습니다. 그는 만족하지 않고 기계를 계속 개량해서, 나중에는 지구 중력의 100만 배가 넘는 힘을 내는 원심분리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정도 힘이면 멀쩡한 쇠구슬도 찌그러질 정도입니다.

2. 연구소 자체가 거대한 기계

웁살라 대학에 있는 그의 연구소는 마치 공장 같았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원심분리기를 설치했는데, 혹시라도 회전체가 튀어나가 폭발할 경우를 대비해 벽을 엄청나게 두껍게 쌓았다고 합니다.

3. 방사선 연구소 소장

그는 말년에 핵화학에도 관심을 가졌고, 스웨덴의 가속기 연구소 소장을 맡아 방사선 치료 연구에도 힘썼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탐구했던 진정한 공학자형 과학자였습니다.

 

🌏 맺음말 : 중력을 거스르는 힘

 

테오도르 스베드베리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면, 볼 수 있는 도구를 만들라" 는 교훈을 줍니다.

그는 자연이 허락한 중력의 한계를 기계의 힘으로 뛰어넘었습니다. 그가 만든 인공 중력 속에서 생명의 분자들은 줄을 서고, 자신의 무게와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오늘날 병원에서 피 검사를 할 때마다 돌아가는 원심분리기, 그리고 최첨단 바이오 연구소에서 돌아가는 초원심분리기. 그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 속에 스베드베리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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