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도 받지 못한 해
1935년, 노벨문학상은 수여되지 않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공식적으로 "상을 수여할 만한 적절한 후보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정말로 적절한 후보의 부재였을까? 아니면 그것은 세계가 너무나 복잡하고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던 시대에, 노벨 위원회가 처한 정치적 딜레마의 반영이었을까?
1935년은 세계사의 분기점 중 하나였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권력을 강화하며 재무장을 선언했고, 뉘른베르크 법이 제정되어 유대인에 대한 공식적인 차별이 법제화되었다.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려 했다. 스탈린의 소련에서는 대숙청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침략을 계속했다.
이 폭풍 전야의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노벨 위원회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가?
🏠 1935년의 세계 — 폭풍 전야
1935년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 해가 어떤 시대적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를 봐야 한다.
1933년 1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2년간 나치 독일은 민주주의 제도를 단계적으로 해체하고, 반유대주의를 국가 정책으로 채택했다. 1935년 9월, 뉘른베르크 법이 통과되었다. 유대인의 독일 시민권을 박탈하고, 유대인과 독일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이 법은, 홀로코스트의 법적 기반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 침공을 감행했다. 국제연맹은 이탈리아에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효력이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사회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어, 불과 1년 후인 1936년에 내전이 폭발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대공황의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이 전개되고 있었다.
세계는 전쟁과 파시즘과 경제 위기가 교차하는 위험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 금서의 시대 — 불태워지는 책들
나치 독일에서 1933년 5월, 책 소각이 시작되었다. 베를린 베벨 광장에서 시작된 이 분서(焚書)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불에 던져진 책들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막스, 하인리히 하이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엠 쉬네더, 에른스트 톨러, 그리고 망명한 토마스 만의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100년 전인 1820년대에 이미 경고했었다. "책을 불태우는 자들은 결국 인간을 불태울 것이다(Dort, wo man Bücher verbrennt, verbrennt man auch am Ende Menschen)." 이 예언은 불과 10년 후 현실이 되었다.
1935년의 독일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는가? 나치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선전가가 되거나, 망명하거나, 침묵하거나, 저항하다가 체포되거나. 그 선택지 사이에서 많은 독일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운명을 결정해야 했다.
📚 망명 문학의 꽃 — 경계 너머의 목소리들
1935년, 독일 문학의 중심은 독일 밖에 있었다. 망명 작가들이 파리, 프라하, 취리히, 뉴욕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토마스 만은 스위스에 머물며 나치즘에 반대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의 대하소설 『요제프와 그 형제들』(1933-1943)의 두 번째 권이 1934년 출판되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나치가 권력을 잡자 즉시 망명했다. 1935년 그는 덴마크에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코카서스의 백묵원』과 같은 걸작들의 초기 구상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안나 제거스(Anna Seghers)는 파리로 망명해 반파시즘 문학 활동을 펼쳤다. 그녀의 소설 『제7의 십자가』(Der siebte Kreuz)는 이 시기에 구상되었으며, 나치 독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반파시스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독일에서 금지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 작품들의 가치를 증명했다. 권력이 두려워하는 문학이야말로 살아있는 문학이었다.
⚡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 통제된 예술
한편 소련에서는 1934년 제1회 소련 작가회의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이 유일한 공식 예술 방법론으로 채택되었다. 이것은 예술에 대한 국가의 직접적 통제 선언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간단히 말해, 소련 사회주의의 진보와 우월성을 긍정적으로 묘사해야 하며, 노동자와 당의 영웅적 투쟁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술가의 개인적 비전이나 실험적 형식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 선언은 소련 문학계에서 이미 진행되던 탄압을 공식화한 것이었다. 오시프 만델스탐, 미하일 불가코프, 안나 아흐마토바 등 독립적인 목소리를 가진 작가들은 이미 박해를 받고 있었다.
만델스탐은 스탈린을 비판하는 시를 낭독했다가 체포되었고, 1937년 결국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출판이 금지되어 그가 죽은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았다.
독일과 소련이라는 두 전체주의 체제가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 문학은 권력의 도구여야 한다는 것. 이 두 체제 사이에서 유럽의 자유로운 문학 정신은 압박받고 있었다.
🧐 영미 문학의 황금기 — 폭풍 속의 창조
역설적으로, 이 불안한 시대에 영미 문학은 놀라운 창조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1935년은 T.S. 엘리엇이 시집 『에든버러 여행기』 같은 작품들을 통해 영시의 현대적 면모를 더욱 발전시키던 시기였다. 존 스타인벡은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분노의 포도』는 1939년 출판된다). 윌리엄 포크너는 이미 『소음과 분노』(1929)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1930)를 발표했으며, 이 시기에도 왕성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에블린 워(Evelyn Waugh)는 『허영의 불꽃』(A Handful of Dust, 1934)을 막 출판했다.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는 베를린 3부작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의 눈으로 본 나치 이전 베를린의 이야기는 나중에 뮤지컬 『카바레』의 원작이 된다.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세계의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하면서도, 그것을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문학적 형식으로 소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노벨 위원회의 딜레마 — 정치와 문학 사이
그렇다면 왜 1935년에는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지 않았는가?
공식적인 이유는 "적절한 후보 없음"이었지만, 이 설명은 불충분하다. 당시 세계에는 수상에 충분히 적합한 작가들이 많이 있었다.
실제 이유는 더 복잡했을 것이다. 정치적 고려, 즉 어떤 작가에게 상을 줄 경우 어떤 정치적 파장이 생길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컸을 것이다.
만약 독일 망명 작가에게 상을 준다면, 나치 독일과의 외교적 갈등이 불가피했다. 실제로 1936년 오스발트 슈펭글러 등 나치 성향 지식인들이 노벨 위원회에 압력을 가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소련 작가에게 상을 준다면 소련의 공식 예술 정책에 대한 인정처럼 보일 수 있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 작가에게 상을 준다면... 그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노벨 위원회는 가장 안전한 선택 — 아무에게도 주지 않는 것 — 을 했다. 그것이 현명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비겁한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다.
🌍 1935년의 문학, 1935년이 문학에 가한 것
이 해에 시상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문학의 가치를 증명한다. 문학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장식물이었다면, 노벨 위원회가 이토록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상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가 정치적 폭발력을 가진다는 사실은, 문학이 여전히 세계에 영향력을 가진다는 뜻이었다.
전체주의 국가들이 문학을 통제하려 했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히틀러와 스탈린 모두 책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언어가 가진 힘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통제하거나 파괴하려 했다.
1935년, 아무도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해에도, 전 세계의 작가들은 글을 썼다. 검열과 박해와 망명 속에서도.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을 찾는 언어의 힘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것이 문학이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는 이유다. 폭정은 지나가지만, 그 폭정 속에서 씌어진 말들은 남는다. 오시프 만델스탐은 수용소에서 죽었지만 그의 시는 살아있다.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반세기의 억압 끝에 출판되었다. 브레히트의 희곡은 오늘도 전 세계 무대에서 공연된다.
1935년은 시상 없는 해였다. 하지만 그 해도, 그 어두운 시대에도, 문학은 멈추지 않았다.
'310_New Novel > 312_[NEW] 노벨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37 노벨문학상] 로제 마르탱 뒤 가르 : 1차대전이 삼킨 프랑스, 8권으로 부활시킨 사람 (0) | 2026.05.11 |
|---|---|
| [1936 노벨문학상] 유진 오닐 : 미국 현대극의 아버지, 가족의 비극으로 세계를 울리다 (0) | 2026.05.10 |
| [1934 노벨문학상] 루이지 피란델로 : "나는 누구인가?" — 정체성을 해체한 현대극의 혁명가 (0) | 2026.05.09 |
| [1933 노벨문학상] 이반 부닌 : 혁명이 빼앗아간 러시아를 글로 되찾은 망명 작가 (0) | 2026.05.05 |
| [1932 노벨문학상] 존 골즈워디 : 『포사이트 가 이야기』로 영국 상류층의 민낯을 해부하다 (0) | 2026.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