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10_New Novel/316_[NEW] 노벨평화상

[1949 노벨평화상] 로드 보이드 오르 : "굶주린 배는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 — 빵 한 조각으로 세계 평화의 공식을 다시 쓴 과학자

by 어셈블러 2026. 5. 24.
728x90
반응형

1930년대 영국. 대공황의 한복판.

한 영양학자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영국 빈민 가정의 아이들이 실제로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영국의 절반이 넘는 국민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소조차 섭취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굶주린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필수 영양소가 결핍된 상태였습니다. '숨겨진 굶주림'이었습니다.

그는 이 연구를 정부에 제출했습니다.

정부는 이 연구를 덮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고, 너무 불편한 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존 보이드 오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약 15년 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초대 사무총장이 되었고,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충분하고 영양가 있는 식량을 보장하는 것을 국제 사회의 의무로 만들려 했습니다.

1949년 노벨 평화상은 그 집요한 과학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평화상'과는 다른 선택이었습니다. 군축도, 외교도, 전쟁 중재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평화를 다시 정의하는 상이었습니다.


 

🌍 파트 1. 폐허와 굶주림 — 1940년대 후반의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굶주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전쟁 중 농경지는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농부들은 군대로 끌려갔습니다. 비료 공장은 폭탄 공장이 되었습니다. 농업 인프라는 폭격으로 무너졌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았습니다. 독일에서는 하루 칼로리 섭취량이 권장량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지역도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1944-45년 겨울에 '굶주림의 겨울'이라 불리는 대기근이 발생해 약 2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했습니다.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극심한 식량 부족이 계속되었습니다. 1943년 벵골 대기근은 영국 식민 통치 아래에서 약 200만-3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아프리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었습니다. 식민지배를 받는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는 국제 사회의 의제에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보이드 오르는 질문했습니다.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한 평화가 가능한가?"

그리고 스스로 답했습니다. "불가능하다."


 

🌱 파트 2.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소년에서 세계 식량 문제의 전사로

 

존 보이드 오르는 1880년 9월 23일,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킬모어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식량 부족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몸으로 알았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인생 전체에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글래스고 대학교에서 의학과 생물학, 영양학을 공부하며 그는 점점 더 구체적인 질문에 집중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병에 걸리는가? 왜 어떤 계층의 아이들은 더 자주 아프고 더 빨리 죽는가?

답은 영양에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그는 전쟁터에서도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굶주린 병사들은 더 빨리 지치고 더 빨리 죽었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무기만이 아니라 먹는 것에 달려있었습니다.

전쟁 후 그는 스코틀랜드 애버딘에 로우에트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이 연구소에서 그는 30년 이상 인간의 영양 요구량과 식량 생산의 관계를 연구했습니다.

1936년에 발표한 연구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영양 결핍 상태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이 연구는 당시 영국 정부를 불편하게 했고,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을 때 사회적 충격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영양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다. 음식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닿아야 한다."


 

🔬 파트 3. FAO 초대 사무총장 — 세계 식량 시스템의 설계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연합국들은 전후 세계 질서를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943년 루스벨트의 제안으로 연합국 식량농업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국제 식량 기구의 필요성이 논의되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공식 설립되었습니다. 본부는 캐나다 퀘벡에 두었다가 후에 이탈리아 로마로 옮겼습니다.

보이드 오르가 FAO 초대 사무총장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매우 야심 찬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세계 식량 계획(World Food Plan)

그의 구상은 전 세계의 식량 생산량을 파악하고, 잉여 식량을 결핍 지역으로 이전하는 국제 식량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개별 국가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식량을 비축하거나 투기하는 것을 막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식량을 관리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당연하게 들리지만, 1946년에 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제안이었습니다.

각국 정부는 반대했습니다. 식량에 대한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이 계획이 자국의 농업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보이드 오르는 지지자들보다 반대자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FAO 사무총장직을 2년 만에 사임했습니다.

그는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의회로

FAO에서 물러난 뒤 그는 영국 의회에 진출했습니다. 상원의원이 된 그는 계속해서 식량 안보와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1949년, 노벨 평화상이 그에게 왔습니다.


 

🌾 파트 4. 왜 식량 문제가 평화상인가 — 노벨 위원회의 확장된 시각

 

보이드 오르의 수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노벨 위원회가 '평화'의 개념을 어떻게 확장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노벨 평화상은 전쟁을 멈추게 하거나, 국가 간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군비를 축소하는 활동에 주어졌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는 "국가 간의 우애를 증진하거나 군비를 축소하거나 평화 회의를 확산시키는 데 가장 많이 기여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식량 문제는 이 기준에 직접적으로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노벨 위원회는 보이드 오르의 통찰에서 더 깊은 평화의 논리를 보았습니다.

"굶주림이 전쟁의 씨앗이다."

역사는 이것을 반복적으로 증명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극도로 어려운 경제 상황,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배상 조건, 그로 인한 초인플레이션과 대공황 — 이 경제적 절망이 나치즘의 토양을 만들었습니다. 히틀러는 경제적으로 절망한 독일 국민의 분노를 권력으로 바꿨습니다.

군사력으로 평화를 지키는 것보다,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평화 수단이라는 것이 보이드 오르의 주장이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이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1949년 노벨 평화상이 단순히 한 과학자의 업적을 기린 것이 아니라, 평화의 개념 자체를 확장하는 역사적 결정이었습니다.


 

🎬 파트 5. 아무도 듣지 않았을 때 — 실패와 포기하지 않음

 

보이드 오르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반대와 무시를 견뎌냈는가 하는 점입니다.

1936년 영국 국민의 영양 결핍을 보여주는 연구를 발표했을 때, 정부는 이를 은폐하려 했습니다.

1946년 FAO에서 세계 식량 계획을 제안했을 때, 주요 강대국들이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더 많은 강의를 했습니다. 더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가 FAO에서 사임한 것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이 실현될 수 없는 구조 안에서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의미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계속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정치가나 외교관의 방식이 아닙니다. 과학자의 방식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증명한 것을 계속 주장하는 것. 데이터가 뒷받침하는 한 포기하지 않는 것.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보이드 오르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충분히 먹는 것이 가능합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정치적 의지의 문제입니다."

87세가 되어서도 그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 파트 6. FAO가 걸어온 길 — 오늘날의 세계 식량 문제

 

보이드 오르가 설립에 기여한 FAO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요?

FAO는 현재 194개 회원국을 가진 유엔의 전문 기관입니다. 본부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습니다. 전 세계 130개 이상의 국가에 사무소를 두고 있습니다.

FAO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 목표를 향합니다. 굶주림과 식량 불안의 종식, 영양 결핍의 해소, 농업과 식품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확보.

현재 세계 상황은 어떨까요?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약 7억 3,300만 명이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아시아에 있고, 약 4분의 1이 아프리카에 있습니다. 기후 변화, 분쟁, 경제 위기가 이 숫자를 계속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는 전례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 식량 생산량은 세계 인구 전체를 먹이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분배입니다. 음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필요한 곳에 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이드 오르가 1940년대에 이미 간파한 문제의 핵심입니다.

현대 식량 기술의 발전

스마트 농업은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작물 생산성을 극대화합니다. 드론이 넓은 농경지를 모니터링하고 최적의 시점에 비료와 물을 공급합니다.

배양육 기술은 동물을 도살하지 않고 세포에서 고기를 생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직 상업적 규모는 아니지만, 미래의 단백질 공급 방식을 바꿀 잠재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기술적 혁신이 보이드 오르가 꿈꿨던 "모두를 위한 충분한 식량"을 현실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 파트 7. 빵 한 조각의 철학 — 보이드 오르가 재정의한 평화

 

1949년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보이드 오르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 세계 절반이 굶주리는 한, 진정한 평화는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수십 년의 과학적 연구와 현장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었습니다.

그가 노벨 평화상을 받음으로써 세계에 전달된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평화는 군대를 없애는 것만으로 오지 않습니다. 평화 협정에 서명하는 것만으로도 오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이 먹을 것, 마실 것, 잘 곳을 갖는 기본적인 조건이 충족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평화가 가능합니다.

오늘날 이것은 유엔의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SDG 2는 '기아 종식'입니다. 굶주림을 없애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핵심 과제 중 하나라는 국제 사회의 합의입니다.

보이드 오르가 1940년대에 혼자 외쳤던 주장이 21세기에 국제 사회 전체의 공약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배는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

 

 

이것은 여전히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먼저 과학으로 증명하고, 정치로 싸우고, 마지막에는 노벨 평화상으로 인정받은 한 스코틀랜드 과학자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울림을 가집니다.


 

🌾 파트 8. 녹색 혁명과 그 이후 — 보이드 오르의 비전이 실현되다

 

보이드 오르가 194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후, 세계 식량 생산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960~70년대 녹색 혁명은 개량된 밀, 쌀 품종과 현대 농업 기술의 도입으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멕시코 등에서 곡물 생산이 두세 배로 늘었습니다. 이 변화를 이끈 노먼 볼로그는 197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녹색 혁명은 수억 명의 굶주림을 해결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화학 비료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 지하수 고갈, 생물 다양성 감소, 소농의 몰락 — 이런 부작용들이 나타났습니다.

보이드 오르가 강조했던 것은 단순히 생산량 증가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계층에 공평한 분배, 지속 가능한 농업, 영양의 질적 향상이었습니다. 녹색 혁명은 생산량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했지만, 분배와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여전히 과제로 남겼습니다.

오늘날 '제2의 녹색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농업,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농업, 소농도 혜택을 받는 농업. 이것이 보이드 오르가 꿈꿨던 방향과 더 일치합니다.


 

🔬 파트 9. 식량 안보와 국제 정치 — 밥상이 곧 외교다

 

보이드 오르의 또 다른 핵심 통찰은 식량 문제가 기술적,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에는 모든 인류를 먹이기에 충분한 식량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올바른 장소에, 올바른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사실입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식량 낭비량은 연간 약 13억 톤입니다. 전 세계 생산 식량의 약 3분의 1이 버려집니다. 동시에 약 7억 명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 역설은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구조와 정치의 문제입니다. 식량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체계 속에서,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식량이 닿지 않습니다.

국제 식량 정치는 오늘날에도 복잡합니다. 농업 보조금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의 무역 분쟁, 기후 변화로 인한 농업 생산성 변화, 식량 수출 금지 조치, 식량을 무기로 사용하는 지정학적 전략 — 이 모든 것들이 세계 식량 안보를 위협합니다.

보이드 오르가 1940년대에 주장했던 국제 식량 위원회 설립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신은 FAO, 세계식량계획(WFP),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식량 안보를 위해서는 기술만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보이드 오르의 핵심 메시지였고, 7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 파트 10. 한국과 기아 극복 — 보이드 오르 정신의 아시아적 실현

 

보이드 오르의 이야기를 한국의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1950년대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극심한 식량 부족을 겪었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인들의 영양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보리 고개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봄이 되면 전년도 쌀이 떨어지고 새 보리가 나오기 전까지 굶주림이 만연했습니다.

1970~80년대 한국의 경제 발전은 이 식량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녹색 혁명의 성과와 경제 성장이 결합되면서 한국인들의 영양 상태가 급격히 개선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식량 자급에서 식량 수입국으로 변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경제 성장과 도시화로 농업 인구가 줄었고, 식품 소비 패턴이 변했습니다.

동시에 한국은 세계 식량 안보에 기여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에 농업 기술을 지원하고, FAO 활동에 기여하며, 식량 원조를 제공합니다.

이것은 보이드 오르가 꿈꾼 국제 협력의 작은 실현입니다. 한때 굶주렸던 나라가 다른 나라의 굶주림을 돕는 것. 인류가 서로 돕는 연대의 정신.


 

🔮 파트 10+. 역사를 잇는 연결 — 과거에서 현재로

 

이 수상이 이루어진 역사적 맥락을 다시 살펴보면, 우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인류는 반복적으로 갈등과 전쟁을 경험해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반복적으로 그 갈등에서 평화를 이끌어내려는 노력도 해왔습니다. 노벨 평화상은 그 노력들 중 가장 뛰어난 것들을 기록하고 기리는 제도입니다.

1944년부터 1956년까지의 수상 역사를 보면, 평화를 만드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쟁 포로를 돌보는 것, 국제 기구를 설계하는 것, 오랜 세월 평화를 외치는 것, 굶주린 사람을 먹이는 것, 분쟁을 중재하는 것,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 생명을 치료하는 것, 경제를 재건하는 것, 난민을 보호하는 것.

이 모든 것이 평화입니다.

어떤 방법이 '진짜' 평화를 만드는가 하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평화는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만들어집니다. 제도적 층위, 경제적 층위, 사회적 층위, 개인적 층위 — 모든 층위에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수상자들의 노력 위에 서 있습니다. 유엔이 있고, WTO가 있고, UNHCR이 있고, ILO가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있습니다. 그것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새로운 과제들이 있습니다. 기후 변화, 핵 확산, 사이버 전쟁, 자율 무기, 인공지능의 무기화, 정보 조작 — 이런 새로운 위협들에 맞서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과제입니다.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영감을 과거의 수상자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 방법이 달라도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적에게도 인간의 얼굴을 보는 것. 고통받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

이것들이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공통된 태도였습니다.

그 태도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필요합니다.


 

📖 에필로그. 평화는 현재 진행형

 

역사는 이미 지나간 것들의 기록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1944년 전쟁의 한가운데서 국제 적십자 위원회의 봉사자들이 포로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은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랠프 번치가 로도스 섬에서 밤새 협상 문서를 검토할 때, 그는 노벨 평화상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했을 것입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랑바레네의 더운 진료실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그는 세계적 명성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 고통받는 사람을 도울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평화는 저 멀리 있는 거대한 목표가 아닙니다. 평화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분쟁 지역에서 평화유지군으로 일하든, 지역 사회에서 갈등을 중재하든, 학교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하든, 온라인에서 혐오 발언에 대응하든 — 모든 것이 평화를 만드는 행위입니다.

1944년부터 1956년까지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방식으로 평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역사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최종 메시지입니다.


 

💬 수상자들의 목소리 — 그들이 남긴 말들

 

이 시기의 수상자들이 남긴 발언과 글에서 평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고통을 목격한 사람들,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평화를 위해 일한 사람들의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울립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닙니다. 평화는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은 이 시기 수상자들 중 누가 한 말인지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수상자들의 삶이 이 진리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끝난다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굶주림이 해결된다고 갈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법률이 만들어진다고 인간성이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는 각각의 인간이 상대방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적의 포로에게도 인간다운 대우를 하는 결정에서, 패전국의 어린이에게도 밥을 먹이는 행동에서,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듣는 협상 태도에서.

1944년부터 1956년까지의 수상자들은 이것을 말로만 하지 않고 삶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공통된 유산입니다.


 

🌱 미래를 위한 씨앗 — 다음 세대에게

 

이 역사를 읽는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것입니다.

평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앙리 뒤낭이 없었다면 국제 적십자 위원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코델 헐이 없었다면 유엔이 지금과 달랐을 것입니다. 에밀리 발치가 없었다면 여성 평화 운동의 역사가 달랐을 것입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없었다면 아프리카 의료 봉사의 개념 자체가 달랐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결단과 헌신이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 변화, 핵 위협, 사이버 전쟁, 인공지능의 무기화 —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위협들에 맞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은 화려한 재능이나 특별한 배경을 가진 사람만이 아닙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면 됩니다.

1944년부터 1956년의 수상자들이 그랬듯이.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