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7년 12월 16일, 벨 연구소 뉴저지.
존 바딘과 월터 브래튼은 게르마늄 조각에 두 개의 가는 금속 침을 아주 가까이 붙인 장치를 테스트하고 있었습니다.
오디오 신호를 입력했습니다.
출력 신호가 나왔습니다. 입력보다 훨씬 강한 신호가.
증폭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진공관 없이, 뜨거운 필라멘트 없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이 발명한 것은 단순한 증폭기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반도체 소자의 첫 번째 성공이었고, 디지털 시대의 문을 연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트랜지스터였습니다.
세상이 바뀌는 순간은 대부분 조용합니다. 1947년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뉴저지의 연구실에서 두 물리학자가 게르마늄 조각 위에 금속 침 두 개를 얹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폭발도, 섬광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인류의 기술 문명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꺾였습니다.
📜 파트 1. 세 사람의 이야기 — 바딘, 브래튼, 쇼클리
세 사람은 모두 벨 연구소에서 반도체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윌리엄 쇼클리는 팀의 리더였습니다. 191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했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반도체 이론을 이끌었지만, 실제 트랜지스터의 첫 번째 성공적 시연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딘과 브래튼의 독립적인 실험이었습니다. 쇼클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사람이 결정적인 실험을 성공시킨 것은 이후 세 사람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만드는 씨앗이 되기도 했습니다.
존 바딘은 1908년 미국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태어났습니다. 수학과 전기공학, 물리학 모두에 뛰어난 만능형 인재였습니다. 양자역학적 이론으로 반도체의 동작을 설명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초전도 이론 BCS로 또 다른 노벨상을 받습니다. 물리학 역사에서 같은 분야인 물리학으로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1956년 반도체와 트랜지스터, 1972년 초전도 이론. 두 번 다 물리학의 핵심을 뚫는 업적이었습니다.
월터 브래튼은 1902년 중국 샤먼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중국에 거주하던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자랐고, 실험물리학자로서 정밀한 실험 구성에 뛰어났습니다. 그는 손으로 직접 장치를 만들고 조작하는 탁월한 감각을 가졌습니다. 그 손끝에서 트랜지스터가 탄생했습니다.
트랜지스터 이전 — 진공관의 시대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기 전, 전자 회로는 진공관으로 작동했습니다.
진공관은 유리 용기 안에 진공을 만들고 그 안에 금속 전극을 넣은 것입니다. 필라멘트를 가열하면 열전자가 방출되고, 그 전자의 흐름을 제어해 증폭과 스위칭을 수행합니다.
진공관은 크고 무겁습니다. 가열에 시간이 걸립니다. 전력 소모가 큽니다. 수명이 짧고 잘 깨집니다. 열을 많이 냅니다. 부피 때문에 회로를 소형화하기가 어렵습니다.
1945년 완성된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 에니악은 약 18,000개의 진공관을 사용했습니다. 무게 30톤, 부피는 큰 방 전체를 차지했습니다. 전력 소모는 150킬로와트. 하루에도 여러 번 진공관이 고장났습니다.
진공관을 대체하는 소자가 만들어진다면 전자 공학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었습니다.
반도체 — 전기를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물질
반도체는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적 성질을 가진 물질입니다. 실리콘, 게르마늄 등이 대표적입니다.
순수한 반도체에 불순물을 특정하게 도핑하면 전기 전도성이 달라집니다. n형 반도체는 자유 전자가 많아 전자로 전류가 흐르고, p형 반도체는 양공(전자가 빠진 자리)이 많아 양공으로 전류가 흐릅니다.
이 두 종류의 반도체를 결합하면 다이오드(pn 접합)가 됩니다. 한 방향으로는 전류가 흐르고, 반대 방향으로는 차단됩니다.
트랜지스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세 층의 반도체를 쌓아 npn 또는 pnp 구조를 만듭니다. 가운데 얇은 층(베이스)에 작은 신호를 주면, 나머지 두 층(에미터-컬렉터) 사이의 큰 전류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증폭이고 스위칭입니다.
트랜지스터의 원리
트랜지스터는 세 개의 단자를 가집니다. 에미터, 베이스, 컬렉터. 베이스에 작은 신호를 주면 에미터-컬렉터 사이의 큰 전류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작은 신호로 큰 전류를 제어하는 것이 증폭입니다.
진공관에 비해 트랜지스터는 크기가 훨씬 작고, 전력 소모가 적고, 예열 시간이 없고, 훨씬 오래 지속됩니다.
1947년 바딘과 브래튼이 만든 최초의 점 접촉 트랜지스터는 게르마늄 결정 위에 두 개의 금침을 아주 가까이 붙인 형태였습니다. 조잡해 보이지만, 증폭이 일어났습니다.
쇼클리는 이 성공을 바탕으로 이론을 발전시켜 1948년 접합 트랜지스터를 고안했습니다. 세 층의 반도체를 층층이 쌓은 구조. 이것이 오늘날 트랜지스터의 기본 형태입니다.
📜 파트 2. 트랜지스터가 바꾼 세상
트랜지스터의 발명은 20세기 후반의 기술 혁명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1948년 벨 연구소가 트랜지스터를 공식 발표하자 세상은 처음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작은 단신으로 다루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한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이것은 진공관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자였습니다.
집적 회로의 탄생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가 집적 회로를 발명했습니다. 여러 개의 트랜지스터와 저항, 커패시터 등을 하나의 반도체 칩에 집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로버트 노이스도 독립적으로 집적 회로를 발명했습니다. 노이스의 방식이 제조에 더 적합했습니다.
집적 회로는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발전했습니다. 1971년 인텔이 최초의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를 출시했습니다. 손가락 손톱 크기의 칩 안에 2300개의 트랜지스터. 1947년 게르마늄 결정 위에 금침 두 개를 얹은 것에서 24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무어의 법칙 — 기하급수적 성장
1965년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는 무어의 법칙을 제시했습니다. 집적 회로의 트랜지스터 수가 약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칙은 이후 수십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1971년 2300개. 1982년 13만 4000개. 1993년 310만 개. 2000년 4200만 개. 2010년 23억 개. 2020년대 최신 프로세서에는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손가락 손톱만한 크기의 칩에 집적됩니다.
1947년 게르마늄 조각에 금속 침 두 개를 붙인 그 장치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디지털 혁명과 인터넷
트랜지스터 없이는 디지털 혁명이 없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인공지능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매년 수조 개의 트랜지스터가 생산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만들어진 인공물입니다. 모래에서 뽑아낸 실리콘으로, 나노미터 단위의 구조물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기기 안에서도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트랜지스터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단순했습니다. 0과 1. 전류가 흐르거나 안 흐르거나.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지거나. 그 단순한 이진법이 수십억 번 반복되면서 인간의 생각, 창의성, 소통, 지식 전체를 담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탄생
트랜지스터 발명의 또 다른 유산은 반도체 산업 자체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남쪽 지역은 오늘날 실리콘밸리라고 불립니다. 그 이름의 시작은 쇼클리의 선택이었습니다.
1956년 노벨상을 받은 직후, 쇼클리는 벨 연구소를 떠나 고향인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우수한 인재들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쇼클리의 독재적 경영 스타일과 편집증적 태도에 핵심 인력 8명이 1957년 집단 퇴사했습니다. 쇼클리는 이들을 배신자 8인방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8명이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했습니다. 페어차일드에서 다시 인재들이 나와 인텔, AMD, 내셔널 세미컨덕터 등 수십 개의 반도체 회사를 세웠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계보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 파트 3. 쇼클리의 빛과 그림자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 개발의 이론적 리더였습니다. 반도체 접합 이론, 접합 트랜지스터 구조 등 핵심 이론들을 그가 제안했습니다. 1956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할 자격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과학적 업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노벨상 수상 이후 쇼클리는 반도체 회사 경영에서 실패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70년대부터 인종별 지능 차이에 관한 논란이 많은 주장을 공개적으로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생학적 견해를 지지하며, 지능지수가 낮은 사람들의 출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흑인이 백인보다 평균적으로 지능이 낮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과학계는 이 주장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지능은 단일한 유전적 특성이 아니며, 측정 방법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쇼클리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과학계에서 사실상 고립되었습니다. 트랜지스터의 공동 발명자로 영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던 사람이 인종차별적 주장으로 스스로 명성을 망쳤습니다.
쇼클리는 1989년 79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자녀들조차 아버지와 거의 연락을 끊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연구실에서 함께 일했던 바딘과 브래튼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바딘은 조용하고 겸손한 태도로 평생 물리학에만 집중했습니다. 브래튼은 학교 강연을 다니며 과학 교육에 기여했습니다.
📜 파트 4. 존 바딘 — 노벨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물리학자
존 바딘은 물리학 역사상 가장 독특한 기록을 가진 사람입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사람.
1956년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쇼클리, 브래튼과 함께 받은 첫 번째 노벨상.
1972년 초전도 이론 BCS로 레온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와 함께 받은 두 번째 노벨상.
두 업적 모두 20세기 물리학과 기술 문명에 근본적인 영향을 준 것들이었습니다.
초전도 — 두 번째 혁명
초전도는 특정 온도 이하에서 금속의 전기 저항이 완전히 0이 되는 현상입니다. 1911년 네덜란드의 헤이케 카메를링 오네스가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40년 넘게 수수께끼였습니다. 양자역학으로도 설명이 안 되었습니다. 전자는 서로 반발하는데, 어떻게 저항 없이 흐를 수 있는가?
바딘은 레온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와 함께 이 수수께끼를 풀었습니다. 1957년 발표된 BCS 이론.
핵심 아이디어는 쿠퍼쌍이었습니다. 두 전자가 격자 진동을 매개로 서로 약하게 끌어당겨 쌍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쌍들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과 유사한 방식으로 집단적으로 흐를 때 저항이 사라집니다.
이 이론은 초전도 현상을 양자역학으로 완벽하게 설명했습니다.
겸손한 천재
바딘은 첫 번째 노벨상을 받은 직후 스웨덴 왕실에서 두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학교 시험이 있어서 중간에 귀국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수상 때는 스웨덴 국왕이 "다음에는 가족을 모두 데려오세요"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딘은 평생 조용히 연구하고, 조용히 가르치고, 조용히 살았습니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했고 초전도 이론을 세웠지만,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로 정년까지 재직하며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1991년, 바딘은 8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파트 5. 1956년 노벨상과 그 의미
1956년 노벨 물리학상 시상 이유: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 효과 발견에 대하여"
이 한 문장이 담고 있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발명품에 대한 수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공관의 시대가 끝나고 반도체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물질의 전자적 성질을 인류가 처음으로 제어하기 시작했다는 것의 인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트랜지스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에 삽니다. 스마트폰 안에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있습니다. 자동차 안에, 가전제품 안에, 심장 박동기 안에, 인공위성 안에.
1947년 12월의 그 조용한 실험실에서 시작된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트랜지스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만들어진 인공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조 개의 트랜지스터가 전 세계의 모든 전자 기기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1947년 겨울, 뉴저지의 연구실에서 바딘과 브래튼이 게르마늄 조각 위에 두 개의 금침을 얹은 순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파트 6. 실리콘밸리의 탄생 — 쇼클리의 서부 진출
쇼클리가 노벨상을 받은 1956년 직후, 그는 고향인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반도체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가 있는 팔로알토 근처, 당시에는 과수원과 농장이 많았던 산타클라라 밸리였습니다.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는 1956년 설립되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가 만든 회사라는 명성 덕분에 미국 최고의 젊은 물리학자들과 공학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고든 무어, 로버트 노이스, 진 호에니, 제이 라스트, 셸던 로버츠, 빅터 그리니크, 줄리어스 블랭크, 유진 클라이너.
이 여덟 명은 나중에 배신자 8인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배신한 것이 아니라, 쇼클리의 독단적이고 편집증적인 경영 스타일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쇼클리는 연구 방향을 자꾸 바꾸었습니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무시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실시해 누가 내부 정보를 유출하는지 찾으려 했습니다. 연구소 분위기는 최악이었습니다.
1957년, 여덟 명은 집단으로 쇼클리의 연구소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셔먼 페어차일드의 자금 지원으로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했습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로버트 노이스는 집적 회로의 실용적인 제조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실리콘밸리 반도체 산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1968년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페어차일드를 떠나 인텔을 설립했습니다. 무어의 법칙을 제시한 바로 그 고든 무어가 인텔을 만든 것입니다. 인텔은 1971년 최초의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를 출시했습니다.
페어차일드에서 나온 사람들이 만든 회사들이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이루는 기업들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AMD, 내셔널 세미컨덕터,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 등이 모두 페어차일드의 자손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쇼클리가 독단적 경영으로 인재들을 쫓아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탄생했습니다. 만약 쇼클리가 뛰어난 경영자였다면, 모든 인재가 한 회사에 모여 있었을 것이고 여러 회사로 퍼져나가는 역동적인 생태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쇼클리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해 디지털 혁명을 가능하게 했고, 형편없는 경영으로 실리콘밸리를 낳았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 중 한 명일 것입니다.
📜 파트 7. 트랜지스터의 미래 — 한계를 향해
오늘날 트랜지스터는 5나노미터, 3나노미터 공정으로 제조됩니다. 트랜지스터 하나의 크기가 원자 수십 개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 크기에서는 고전적인 반도체 물리학보다 양자역학적 효과가 중요해집니다.
전자가 얇은 절연층을 통과하는 터널링, 양자 불확정성 효과로 인한 누설 전류 등이 문제가 됩니다.
무어의 법칙이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단순히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드는 것으로 성능을 높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들이 여러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D 집적 기술은 트랜지스터를 수평으로 배치하는 대신 수직으로 쌓아 올려 밀도를 높입니다.
새로운 재료 — 그래핀, 2차원 물질, 탄소 나노튜브 — 가 실리콘을 대체할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양자 컴퓨팅은 기존 트랜지스터 방식과 전혀 다른 계산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큐비트는 0과 1이 아니라 중첩 상태로 계산합니다.
뉴로모픽 컴퓨팅은 인간의 뇌 신경망 구조를 모방한 컴퓨팅 방식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든, 그 출발점은 1947년 바딘과 브래튼이 게르마늄 조각 위에 두 개의 금침을 얹고 증폭 신호를 확인한 그 순간이었습니다. 반도체 소자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증명한 그 실험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어떤 발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지 논하면 항상 불꽃, 바퀴, 인쇄술 등이 나옵니다. 트랜지스터는 그 목록에서 최근 수십 년을 대표합니다. 불이 인류에게 열과 빛을 주었다면, 트랜지스터는 인류에게 계산과 통신의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 능력이 인공지능, 인터넷, 디지털 문명 전체를 낳았습니다.
📜 파트 8. 반도체 물리학의 과학적 기반
트랜지스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이 필요합니다. 고전 물리학으로는 반도체의 성질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실리콘 원자는 4개의 최외각 전자를 가집니다. 결정 구조에서 각 실리콘 원자는 이웃한 4개의 실리콘 원자와 공유 결합을 형성합니다. 이 결합이 에너지 띠를 만듭니다.
에너지 띠 이론에 따르면 전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에너지는 허용 띠와 금지 띠로 나뉩니다. 순수 실리콘에서 가전자 띠는 완전히 채워져 있고, 전도 띠는 비어 있습니다. 두 띠 사이의 에너지 간격이 약 1.1 전자볼트입니다.
상온에서 일부 전자들이 열에너지를 얻어 전도 띠로 뛰어오릅니다. 이 전자들이 전류를 운반합니다. 전자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양공이 생겨 이것도 전류에 기여합니다.
불순물 도핑은 이 상황을 조절합니다. 인(P) 같은 5족 원소를 도핑하면 여분의 전자가 생겨 n형 반도체가 됩니다. 보론(B) 같은 3족 원소를 도핑하면 양공이 많은 p형 반도체가 됩니다.
pn 접합에서는 확산 전류와 드리프트 전류가 균형을 이루는 공핍층이 형성됩니다. 순방향 바이어스를 걸면 공핍층이 좁아져 전류가 흐르고, 역방향 바이어스를 걸면 공핍층이 넓어져 전류가 차단됩니다. 이것이 다이오드의 작동 원리입니다.
트랜지스터는 이 원리를 세 층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베이스 층에 소량의 전류를 주입하면 에미터-컬렉터 사이의 전류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양자역학 없이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에너지 띠 이론, 터널링, 양자 통계역학 — 반도체 소자의 기초는 양자 세계에 있습니다.
바딘이 양자역학 이론으로 반도체의 동작을 설명하려 한 것은 그래서 핵심적이었습니다. 브래튼의 실험적 정밀함, 쇼클리의 이론적 구조화와 함께 이 세 가지 요소가 합쳐져 트랜지스터라는 혁명적 발명이 탄생했습니다.
게이트 절연 트랜지스터와 MOSFET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되는 트랜지스터는 바딘과 브래튼이 발명한 쌍극 접합 트랜지스터가 아니라 MOSFET입니다. 금속-산화물-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MOSFET는 전압으로 트랜지스터를 제어합니다. 게이트 전압을 걸어 채널의 전류를 제어하는 방식입니다. 쌍극 접합 트랜지스터보다 전력 효율이 높고 집적도를 높이기 쉬워서 디지털 회로에 더 적합합니다.
오늘날 컴퓨터 프로세서에 들어있는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는 모두 MOSFET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MOSFET의 게이트 길이가 몇 나노미터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바딘, 브래튼, 쇼클리가 발명한 점 접촉 트랜지스터와 접합 트랜지스터가 없었다면 MOSFET도 없었습니다. 반도체 소자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 파트 9. 현대 반도체 기술의 최전선
오늘날 반도체 기술은 물리학, 화학, 재료과학, 공학이 융합된 최첨단 분야입니다.
2nm 공정: 2020년대 최신 반도체 공정은 2nm(나노미터) 수준입니다. 1nm는 10억 분의 1미터. 원자 지름이 약 0.1~0.3nm이므로 2nm는 원자 수십 개 크기입니다.
이 크기에서는 기존 벌크 반도체 물리학이 아닌 양자 효과가 지배합니다. 전자가 터널링을 통해 절연층을 통과하는 문제, 소자 변동성, 열 발생 등이 핵심 과제입니다.
GAA (Gate-All-Around) 트랜지스터: 기존의 평면 트랜지스터에서 핀FET, 그리고 GAA 구조로 발전했습니다. 게이트가 채널을 사방에서 감싸는 구조로 전류 제어 효율이 높습니다.
3D 집적: 트랜지스터를 수직으로 쌓는 기술. 메모리 반도체에서 먼저 상용화되어 수백 층을 쌓는 3D NAND 플래시 메모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기술의 출발점은 1947년 게르마늄 조각 위에 두 개의 금침을 얹은 바딘과 브래튼의 실험이었습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2010년대 이후 인공지능, 특히 딥러닝의 부상으로 새로운 종류의 반도체가 중요해졌습니다.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원래 게임 그래픽을 위해 설계되었지만, 수천 개의 코어가 병렬로 작동하는 특성이 딥러닝 연산에 완벽하게 맞았습니다. NVIDIA의 GPU가 현대 AI 혁명의 엔진이 되었습니다.
TPU(텐서 처리 장치)는 구글이 딥러닝 연산을 위해 특별히 설계한 칩입니다. 행렬 연산을 전용 회로로 수행해 GPU보다 AI 연산에 더 효율적입니다.
NPU(신경망 처리 장치)는 스마트폰에 내장되어 AI 기능을 처리합니다. 얼굴 인식, 음성 인식, 사진 향상 등에 사용됩니다.
AI 반도체의 폭발적 수요가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황금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수조 달러에 달하는 것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AI 칩 안에는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있습니다. 바딘, 브래튼, 쇼클리의 유산이 AI 시대에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