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5년 10월, 버클리 베바트론 가속기.
에밀리오 세그레와 오언 체임벌린 팀은 양성자를 구리 타겟에 충격시켜 나오는 입자들을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반양성자였습니다. 디랙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입자에는 반입자가 있어야 합니다.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는 1932년 앤더슨이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양성자의 반입자 — 반양성자 — 도 있어야 했습니다.
반양성자는 양성자와 같은 질량을 가지지만 반대의 전하 — 음전하 — 를 가질 것입니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반양성자의 신호가 검출되었습니다.
마이너스 전하를 띤 양성자 질량의 입자. 반물질의 세계가 한 층 더 넓어졌습니다.
이 발견은 단순히 새로운 입자를 하나 더 목록에 추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물질이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질 입자에 대응하는 반물질 파트너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대칭성에 관한 확인이었습니다.
📜 파트 1. 에밀리오 세그레 — 이탈리아에서 버클리로
에밀리오 세그레는 1905년 이탈리아 라치오주 티볼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로마 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엔리코 페르미가 로마에서 이론물리학 연구 그룹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페르미의 비아 파니스페르나 그룹. 1930년대 로마의 파니스페르나 거리에 있는 연구소에서 활동한 이 젊은 물리학자 집단은 중성자 물리학과 방사성 원소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페르미, 세그레, 에도아르도 아말디, 프랑코 라세티, 브루노 폰테코르보 등이 멤버였습니다.
세그레는 1937년 팔레르모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시기 그는 결정적인 발견을 합니다. 사이클로트론으로 조사된 몰리브덴 표본에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했습니다. 원자번호 43번, 이름은 테크네튬. 인류가 처음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원소였습니다.
그러나 1938년 이탈리아는 나치 독일의 영향 아래 반유대법을 시행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세그레는 교수직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는 미국을 방문하는 동안 이 소식을 듣고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버클리 방사선 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한 세그레는 곧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핵물리학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와 플루토늄
세그레는 로스알라모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핵분열 과정에서 나오는 중성자의 시간 분포를 측정하는 중요한 연구를 했습니다.
특히 플루토늄-239에 포함된 불순물인 플루토늄-240이 자발 핵분열을 일으켜, 총형 기폭 방식으로는 플루토늄 폭탄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내폭형 기폭 방식이 개발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세그레는 버클리 대학교 교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반양성자 탐색에 나섰습니다.
📜 파트 2. 오언 체임벌린 — 세그레의 파트너
오언 체임벌린은 192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습니다. 다트머스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버클리에서 로렌스의 그룹에서 공부하다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전후 시카고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엔리코 페르미를 만났습니다. 세그레와의 인연은 버클리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체임벌린은 실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에 뛰어났습니다. 그는 세그레와 함께 반양성자 검출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 파트 3. 베바트론 — 반양성자를 만들기 위한 에너지
반양성자를 만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질량-에너지 등가에 따라 반양성자 하나를 만들려면 최소 양성자 질량의 4배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반응에서 에너지-운동량 보존을 만족시키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약 62억 전자볼트(6.2 GeV)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버클리의 베바트론 가속기는 바로 이 에너지를 달성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되었습니다. 베바트론은 Bevatron — BeV (십억 전자볼트) acceleratron — 이라는 이름 그대로, 수십억 전자볼트로 양성자를 가속하는 장치였습니다.
1954년 완공된 베바트론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입자 가속기였습니다. 지름 約30미터의 원형 궤도를 따라 양성자를 가속시켜 최대 62억 eV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1955년 가속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자마자, 세그레와 체임벌린 팀이 반양성자 탐색에 들어갔습니다.
정교한 검출 시스템
반양성자 검출의 어려움은 신호 대 잡음비에 있었습니다. 양성자-구리 충돌에서 나오는 입자는 수만 개가 되는데, 그 중 반양성자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세그레와 체임벌린은 정교한 선택 시스템을 설계했습니다.
반양성자는 음전하를 가지므로 자기장에서 양성자와 반대 방향으로 휩니다. 이것으로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1차적으로 분리합니다.
그 다음 입자의 속도를 측정했습니다. 같은 운동량을 가진 입자라도 질량에 따라 속도가 다릅니다. 반양성자는 파이온 같은 가벼운 입자들보다 훨씬 느립니다. 두 개의 섬광 검출기 사이의 비행 시간을 측정해 속도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체렌코프 검출기를 사용했습니다. 특정 속도 이상의 입자에서만 체렌코프 복사가 생깁니다. 반양성자처럼 느린 입자는 체렌코프 복사를 내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빠른 파이온들을 제거했습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입자만 반양성자 후보가 되었습니다.
1955년 10월, 실험은 성공했습니다. 반양성자의 신호가 명확하게 검출되었습니다.
📜 파트 4. 반물질이란 무엇인가
폴 디랙은 1928년 전자의 운동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유도했습니다. 디랙 방정식. 이 방정식은 자동으로 전자와 정확히 같은 질량을 가지지만 반대의 전하를 가진 입자의 존재를 예측했습니다. 전자의 반입자, 즉 양전자였습니다.
디랙은 처음에는 이 음의 에너지 해가 물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하지만 1931년 그는 이것이 양전하를 가진 새로운 입자의 존재를 예측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932년 칼 앤더슨이 우주선 실험에서 양전자를 발견했습니다. 디랙의 예측이 맞았습니다.
디랙의 이론은 전자뿐 아니라 모든 입자에 적용됩니다. 모든 입자는 자신과 질량이 같지만 전하와 다른 양자수들이 반대인 반입자를 가져야 합니다.
양성자의 반입자는 반양성자, 중성자의 반입자는 반중성자.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 반수소 원자를 만들 수 있고, 반원소, 반분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반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도 가능합니다.
물질-반물질 소멸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소멸합니다. 양성자와 반양성자가 만나면 에너지로 변환됩니다. 이 소멸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는 핵분열이나 핵융합보다 훨씬 큽니다. 물질의 질량이 100% 에너지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SF 소설에서 반물질이 우주선의 연료로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현실에서는 반물질을 만들고 저장하는 것이 현재 기술로는 소모 에너지가 생산 에너지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연료로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 파트 5. 1959년 노벨상과 반물질 물리학의 발전
1959년 노벨 물리학상은 에밀리오 세그레와 오언 체임벌린이 공동으로 받았습니다.
"반양성자 발견에 대하여"
세그레는 1989년 84세로 버클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체임벌린은 2006년 85세로 버클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반양성자 발견 이후 물리학의 발전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1956년 반중성자가 발견되었습니다. 반중성자는 전하가 0이지만 자기 모멘트가 반대입니다.
1965년 CERN과 버클리에서 처음으로 반핵(반중수소핵 = 반양성자 + 반중성자)이 만들어졌습니다.
1995년 CERN에서 처음으로 반수소 원자가 만들어졌습니다. 반양성자와 양전자를 결합해 만든 것입니다.
2011년 CERN의 ALPHA 실험에서 반수소 원자를 자기장 트랩에 1000초 이상 가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드디어 반물질을 충분히 오래 붙잡아 성질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16년 이후 반수소의 스펙트럼을 측정해 수소와 비교하는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물질이 물질과 정확히 같은 스펙트럼을 가지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반물질에 작용하는 중력이 물질에 작용하는 중력과 같은 방향인지 여부입니다. 반물질이 떨어지는 방향은 어느 쪽인가? CERN의 AEGIS, ALPHA, GBAR 실험들이 이것을 측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실험의 궁극적 목적은 왜 우주에 반물질보다 물질이 더 많은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빅뱅 이후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만들어졌다면, 모두 소멸해 빛만 남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물질이 가득합니다. 이 비대칭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를 찾는 것이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세그레와 체임벌린이 1955년 베바트론에서 반양성자를 찾은 것은, 그 긴 탐구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 파트 6. 반물질의 우주론적 의미
빅뱅 직후의 우주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있었을 것입니다. 초고온의 환경에서 에너지가 물질-반물질 쌍으로 계속 전환되고, 쌍소멸이 일어나는 과정이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우주가 식으면서 새로운 쌍 생성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남아있던 물질과 반물질이 모두 소멸해 빛만 남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에는 물질이 가득합니다. 왜 반물질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을 물질-반물질 비대칭 또는 바리온 비대칭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주에서 반물질은 극소량만 존재합니다. 우주선(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에서 소량의 반양성자와 양전자가 발견됩니다. 이것들은 고에너지 입자 충돌에서 생성된 것들입니다. 반물질로 이루어진 별이나 은하는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물질-반물질 비대칭을 설명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1967년 제시한 사하로프 조건입니다.
첫째, 바리온 수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존재해야 합니다.
둘째, C와 CP 대칭성이 위반되어야 합니다.
셋째, 열적 평형에서 벗어난 상태가 있어야 합니다.
CP 위반은 1964년 K 중간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CP 위반만으로는 현재 우주의 물질-반물질 비대칭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더 큰 CP 위반이 어딘가에 있어야 합니다. B 중간자의 CP 위반, 중성미자의 CP 위반 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우주에 왜 물질이 남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21세기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입니다. 그 탐구의 근원에는 세그레와 체임벌린이 1955년 반양성자를 발견해 반물질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CERN의 반물질 연구
제네바의 CERN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물질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ALPHA 실험은 반수소 원자를 만들어 자기장 트랩에 가두고 수분 이상 보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반수소의 스펙트럼을 측정해 수소와 비교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물질-반물질 비대칭의 근원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AEgIS 실험은 반수소를 중력장 안에서 날려 반물질에 작용하는 중력의 방향을 측정합니다. 반물질이 지구에 의해 끌어당겨지는지 아니면 밀려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ASACUSA 실험은 반양성자와 헬륨 원자를 결합한 반양성자 헬륨을 연구합니다.
이 모든 실험들이 세그레와 체임벌린이 반양성자를 발견한 1955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반물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반물질 연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파트 7. 세그레의 테크네튬 발견 — 또 다른 기여
에밀리오 세그레는 반양성자 발견 외에도 중요한 업적이 있습니다. 테크네튬의 발견입니다.
테크네튬은 원자번호 43번 원소입니다. 자연에서는 극히 미량으로만 존재하며, 실질적으로는 인공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1937년 세그레는 버클리의 사이클로트론으로 조사된 몰리브덴 표본을 분석하던 중 원소 주기율표에서 43번 자리가 비어있던 원소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테크네튬이었습니다.
테크네튬은 인류가 처음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원소입니다. 이름도 그리스어로 인공이라는 뜻의 테크네토스에서 왔습니다.
테크네튬-99m(메타스테이블 상태)은 핵의학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사성 추적자입니다. 감마선을 방출하며 반감기가 약 6시간으로 의학적으로 적합합니다. 뼈 스캔, 심장 촬영, 뇌 촬영 등 다양한 진단에 사용됩니다. 전 세계에서 매일 수천 명의 환자가 테크네튬-99m을 이용한 진단을 받습니다.
세그레는 반양성자를 발견해 입자물리학에 기여하고, 테크네튬을 발견해 핵의학에 기여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추방된 망명 과학자가 미국에서 이룬 두 가지 발견이 현대 물리학과 의학에 모두 중요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 파트 8. 반물질 탐색의 역사 — 디랙에서 현재까지
폴 디랙이 1928년 전자의 상대론적 파동 방정식을 유도했을 때, 수학은 자동으로 음의 에너지 해를 내놓았습니다.
처음에 디랙은 이것이 양성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계산해보면 이 입자는 전자와 질량이 같아야 했습니다. 1931년 디랙은 이것이 전자와 질량이 같고 전하가 반대인 새로운 입자, 즉 양전자여야 한다고 수정했습니다.
1932년 칼 앤더슨이 우주선 실험에서 양전자를 발견했습니다. 디랙의 예측이 맞았습니다. 디랙과 앤더슨은 각각 1933년과 1936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다음 단계는 반양성자였습니다. 디랙의 이론은 모든 입자에 반입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양성자는 전자보다 약 1836배 무겁습니다. 따라서 반양성자를 만들려면 훨씬 큰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1955년 베바트론이 완성되고 세그레와 체임벌린의 실험이 성공했습니다. 반양성자가 발견된 것입니다.
이후의 발전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1965년 세계 최초의 반핵(반중수소핵)이 만들어졌습니다. 1995년에는 반수소 원자가 만들어졌습니다. 2011년에는 반수소를 1000초 이상 자기장 트랩에 가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CERN의 ALPHA-g 실험은 반수소의 중력 가속도를 측정하는 중입니다. 반물질이 떨어지는가 올라가는가? 2023년 첫 결과가 나왔습니다. 반수소는 아래로 떨어집니다. 물질과 같은 방향으로 중력이 작용합니다.
반물질의 모든 성질이 물질과 정확히 대칭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물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입니다.
📜 파트 9. 세그레의 말년과 유산
에밀리오 세그레는 1959년 노벨상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물리학사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엔리코 페르미의 전기를 썼으며, 원자 물리학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저술했습니다. 과학사에서 중요한 저자가 되었습니다.
버클리 대학교에서 계속 가르치다가 1972년 은퇴했습니다. 그 후에도 연구와 저술을 계속했습니다.
1989년 3월, 세그레는 심장마비로 8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버클리에서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버클리의 세그레 강당에 붙어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추방된 유대계 망명 과학자가 미국에서 이룬 업적들 — 테크네튬 발견, 반양성자 발견 — 이 그의 유산입니다.
오언 체임벌린은 2006년 8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말년에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물리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발견한 반양성자는 반물질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열었고, 그 탐구는 오늘날도 CERN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 파트 10. 반물질의 에너지 — 현실과 SF 사이
SF 소설에서 반물질은 우주선의 연료로 자주 등장합니다.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질량이 100% 에너지로 전환되니 이론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연료입니다.
핵분열의 질량-에너지 전환 효율은 약 0.1%. 핵융합은 약 0.7%. 반물질 소멸은 100%.
1그램의 반물질이 소멸하면 약 1.8 × 10^14 줄의 에너지가 나옵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약 40개 분량입니다.
그렇다면 반물질을 실제 연료로 쓸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첫째, 반물질 생산 에너지가 엄청납니다. CERN에서 반양성자를 1개 만들려면 수십억 개의 양성자를 가속기로 충돌시켜야 합니다. 반물질 1그램을 만들려면 지구 전체 전력 생산량의 수천만 년 치가 필요합니다.
둘째, 보관이 극도로 어렵습니다. 반물질은 일반 물질에 닿는 순간 소멸합니다. 자기장 트랩으로 보관해야 하는데, 현재 기술로는 마이크로그램 단위도 어렵습니다.
의학적 응용은 가능합니다. PET(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에서 소량의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추적자가 사용됩니다. 체내에서 소멸하면서 나오는 두 개의 감마선을 검출해 3D 영상을 만듭니다.
암 치료에 반양성자를 이용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반양성자가 암 조직 깊은 곳에서 소멸하며 에너지를 정밀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험적 단계이지만 미래 암 치료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그레와 체임벌린이 반양성자를 발견한 것이 이 모든 탐구의 시작이었습니다.
📜 파트 11. 가속기의 역사 — 베바트론에서 LHC까지
베바트론은 반양성자 발견을 가능하게 한 가속기였습니다. 이것은 입자 가속기의 긴 역사에서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사이클로트론(1930년): 어니스트 로렌스가 발명. 입자를 나선형으로 가속. 수 MeV까지.
싱크로트론(1940년대): 입자가 커지는 궤도를 따라가도록 자기장을 동기화. 베바트론이 이 방식의 초기 대형 기계.
베바트론(1954년): 6.2 GeV. 반양성자 발견.
CERN PS(1959년): 28 GeV.
CERN SPS(1976년): 450 GeV.
CERN LEP(1989~2000년): 전자-양전자 충돌기. 최대 에너지 209 GeV.
페르미 연구소 테바트론(1983~2011년): 양성자-반양성자 충돌기. 최대 에너지 1.96 TeV. 톱 쿼크 발견.
CERN LHC(2008년~현재): 양성자-양성자 충돌기. 최대 에너지 13.6 TeV. 힉스 보손 발견.
가속기는 에너지가 높아질수록 더 작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무거운 입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베바트론의 6.2 GeV에서 LHC의 13,600 GeV까지. 에너지가 2200배 높아졌습니다.
세그레와 체임벌린이 베바트론을 사용한 1955년 이후 70년. 인류의 가속기 기술은 끝없이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물질의 가장 깊은 구조가 밝혀졌습니다.
📜 마무리. 1959년 노벨 물리학상의 의미
1959년 노벨 물리학상은 단순히 과학자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류 지식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였습니다.
수상자들이 발견하고 이론화한 것들은 처음에는 순수한 호기심과 이해의 욕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초 연구들이 수십 년의 시간을 거쳐 실용적인 기술로 변환되었습니다. 의학, 통신, 에너지, 정보 기술 — 현대 문명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이 기초 과학의 힘입니다. 당장 무엇에 쓸지 모르는 지식이 인류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과학이란 자연의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 언어를 읽을 줄 알면 자연이 제공하는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59년의 수상자들은 그 언어의 새로운 단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단어들로 인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벨상은 1년에 한 번 수여됩니다. 하지만 그 수상자들이 발견한 진리는 영원히 남습니다. 인류가 알게 된 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과학의 가장 아름다운 특성입니다.
📜 부록. 195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과 과학의 보편성
노벨 물리학상의 역사에서 1959년은 중요한 해였습니다. 이 해의 수상은 과학적 발견이 어떻게 인류의 공동 유산이 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적 활동 중 하나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을 물었고,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안했습니다. 그 긴 탐구의 연장선에 1959년 수상자들의 업적이 있습니다.
과학 지식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닙니다. 한 번 발견되면 전 인류의 것이 됩니다. 어느 나라에서, 어느 언어로 연구하든 같은 자연법칙이 발견됩니다. 이것이 과학의 보편성입니다.
1959년 수상자들이 발견한 것들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론으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이 그 위에서 더 높이 올라갑니다.
과학자의 일은 쓸쓸할 수 있습니다. 혼자 또는 소수의 팀이 수년을 씨름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발견의 순간이 올 때도 있고 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발견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인류 전체의 지식이 됩니다. 칠레의 학생도, 한국의 연구자도, 케냐의 교수도 같은 공식으로 같은 현상을 계산합니다. 자연의 언어는 하나입니다.
1959년 노벨 물리학상은 그 언어의 새로운 챕터가 완성된 것을 기념했습니다.
물리학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표준 모형 너머의 물리학,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양자 중력, 의식의 물리학적 이해.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미래의 과학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공부하고, 실험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1959년의 수상자들이 쌓아놓은 기초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