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 깜짝할 새보다 빠른 화학 반응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소금이 물에 녹는 데는 몇 초가 걸립니다. 철이 녹슬려면 수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부 화학 반응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빠르게 일어납니다. 100만분의 1초보다, 심지어 10억분의 1초보다 빠르게 완결되는 반응들이 있습니다.
산과 염기가 만날 때 일어나는 중화 반응, 전자가 분자들 사이에서 이동하는 산화환원 반응, 빛을 받은 분자가 들뜬 상태에서 바닥 상태로 돌아오는 반응, 효소 활성 부위에서 기질이 전환되는 반응 — 이런 반응들은 너무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전혀 연구할 수 없었습니다.
1967년 노벨화학상은 이런 초고속 화학 반응을 연구하는 방법들을 개발한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습니다. 독일의 만프레트 아이겐, 영국의 로널드 노리시, 그리고 영국의 조지 포터. 이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접근법으로 같은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 세 명의 개척자
만프레트 아이겐은 1927년 5월 9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보훔에서 태어났습니다. 괴팅겐 대학교에서 물리화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괴팅겐의 막스 플랑크 생물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수십 년간 연구했으며, 이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습니다. 아이겐은 2019년 2월 6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널드 조지 레이퍼드 노리시는 1897년 11월 9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연구했으며, 광화학과 화학 반응 속도론의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1978년 6월 7일,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지 포터는 1920년 12월 6일, 영국 요크셔 주 스태인포스(Stainforth)에서 태어났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여러 대학과 영국 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2002년 8월 31일,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아이겐의 이완법: 평형을 순간적으로 흔들다
만프레트 아이겐이 개발한 방법은 "이완법(relaxation method)"입니다. 이 방법의 아이디어는 단순하지만 천재적입니다.
화학 반응이 동적 평형 상태에 있다고 가정합니다. 정반응과 역반응이 같은 속도로 일어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갑자기 외부 조건(온도, 압력, 전기장 등)을 순간적으로 변화시키면, 시스템은 새로운 평형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평형에 도달하는 과정을 "이완(relaxation)"이라고 하며, 이 이완 과정의 속도를 측정하면 반응 속도 상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아이겐은 여러 가지 이완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온도 점프법(temperature jump, T-jump)은 고전압 방전이나 레이저를 이용해 용액의 온도를 수 마이크로초 이내에 수도씨 상승시키는 방법입니다. 온도가 변하면 반응의 평형 상수가 변하기 때문에, 시스템은 새로운 평형을 향해 이완합니다.
압력 점프법(pressure jump, P-jump)은 압력을 순간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기체가 관여하거나 체적 변화가 있는 반응에 특히 유용합니다.
전기장 점프법(electric field jump)은 강한 전기장을 순간적으로 인가하는 방법입니다. 이온이나 극성 분자들의 반응을 연구하는 데 사용됩니다.
아이겐은 이 방법들을 이용하여 산-염기 중화 반응이 10⁻¹⁰초(100피코초) 수준의 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측정했습니다. 이것은 수소 이온(H⁺)과 수산화 이온(OH⁻)이 만나는 속도가 확산에 의한 이동 속도에 근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반응을 "확산 제어 반응(diffusion-controlled reaction)"이라고 합니다.
🔬 노리시와 포터의 섬광 광분해법
로널드 노리시와 조지 포터는 함께 "섬광 광분해법(flash photolysis)"을 개발했습니다. 이 방법은 1940년대 말 케임브리지에서 함께 연구하던 중 개발되었습니다.
섬광 광분해법의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매우 강렬한 빛의 섬광(flash)을 아주 짧은 시간(수 마이크로초) 동안 시료에 조사합니다. 이 섬광에 의해 분자들이 광화학적으로 분해되거나 들뜬 상태가 됩니다. 그 직후, 또 다른 약한 빛을 이용해 생성된 반응성 중간체들을 분광학적으로 검출합니다. 시간의 함수로 이 중간체들의 농도 변화를 추적하면 반응 속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전기 방전 램프를 섬광 광원으로 사용했으며, 마이크로초(10⁻⁶초) 수준의 시간 분해능을 가졌습니다. 이 방법으로 많은 단명 라디칼 중간체들의 수명과 반응성을 처음으로 직접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리시는 광화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노리시 반응 I형과 II형은 그의 이름을 딴 광화학 반응으로, 케톤 화합물이 빛을 흡수하여 일어나는 분열 반응입니다. 이 반응들은 유기 광화학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반응들입니다.
💡 레이저의 등장과 시간 분해 분광학의 혁명
노리시와 포터가 처음 섬광 광분해법을 개발할 때는 레이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레이저가 등장하면서 이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레이저는 매우 짧은 시간(나노초, 피코초, 펨토초 수준)에 걸쳐 매우 강렬한 빛 펄스를 방출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여 섬광 광분해법의 시간 분해능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펨토초(10⁻¹⁵초) 레이저를 이용한 초고속 분광학은 화학 결합이 형성되고 끊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아흐메드 즈웨일(Ahmed Zewail)은 이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9년 노벨화학상을 받았습니다.
🌱 초고속 반응 연구의 응용
아이겐, 노리시, 포터가 개발한 초고속 반응 연구 방법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효소 반응 메커니즘 연구에서 이완법과 섬광 광분해법은 핵심적인 도구였습니다. 효소가 기질을 전환시키는 과정의 각 단계, 중간체의 형성과 소멸, 효소의 구조적 변화 등을 시간적으로 분해하여 관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광합성 연구에서 섬광 광분해법은 빛 에너지가 어떻게 화학 에너지로 변환되는지를 초고속 수준에서 탐구하는 데 활용되었습니다. 광계 I과 광계 II에서의 전자 이동 반응, 에너지 전달 과정 등이 이 방법으로 연구되었습니다.
시각 과정 연구에서도 섬광 광분해법이 사용되었습니다. 빛을 받은 로돕신(rhodopsin)이 어떻게 시각 신호로 변환되는지의 분자적 과정이 초고속 분광학으로 밝혀졌습니다.
오존층 분해 메커니즘 연구에서도 이 기술들이 활용되었습니다.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라디칼 반응들의 속도를 정확히 측정하여 오존층 파괴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 물리화학과 생명과학의 교차로
아이겐은 단순히 빠른 반응을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완법을 이용하여 물의 자기 이온화, DNA 이중 나선의 형성과 해리, 단백질 접힘 등 생화학적으로 중요한 과정들을 연구했습니다.
특히 아이겐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적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초사이클(hypercycle)" 이론을 제안하여, 자기 복제하는 분자들이 어떻게 협력하여 더 복잡한 생명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 연구는 화학에서 생물학으로의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였습니다.
조지 포터는 과학 대중화에도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영국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강연을 진행하면서 화학과 광화학을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과학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빠른 반응이 느린 세계를 설명한다
1967년 노벨화학상이 세 명의 화학자에게 수여된 것은 이 분야의 중요성이 그만큼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이겐의 이완법과 노리시·포터의 섬광 광분해법은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이지만, 모두 같은 목표를 향했습니다. 극도로 빠른 화학 반응을 연구 가능한 대상으로 만드는 것.
이들의 방법들 덕분에 화학자들은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가장 빠른 과정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효소 작용, 광합성, 신경 신호 전달, 시각 과정 등 생명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약을 개발할 때 효소의 동역학을 분석하고, 태양전지를 개발할 때 광에너지 전달 과정을 최적화하며, 의료 진단에서 빠른 생화학적 반응을 활용하는 것은 모두 이 세 과학자가 개척한 초고속 반응 연구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 너무 빠른 것을 측정한다는 것의 의미
"너무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연구할 수 없다"는 한계를 "측정 방법을 만들면 된다"는 창의성으로 극복한 것이 1967년 노벨화학상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과학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패턴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현미경,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도구, 너무 작은 것을 측정하는 방법 — 과학은 끊임없이 인간의 감각과 측정의 한계를 확장해왔습니다. 아이겐, 노리시, 포터는 "너무 빠른 것을 측정하는 방법"을 만들어 시간의 한계를 넘었습니다.
"화학 반응의 속도를 측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측정이 시작되는 곳에서 이해도 시작됩니다."
— 만프레트 아이겐
수상자: 만프레트 아이겐 (독일), 로널드 조지 레이퍼드 노리시 (영국), 조지 포터 (영국)
수상 연도: 1967년
수상 이유: 극도로 빠른 화학 반응 연구 — 에너지의 짧은 펄스로 평형을 교란시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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