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스 월터 알바레즈는 도널드 글레이저의 거품 상자 아이디어를 받아 대형 수소 거품 상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십 개의 새로운 소립자를 발견했습니다.
수소 원자는 핵 — 단일 양성자 — 이 하나라서 표적으로 완벽했습니다. 고에너지 입자가 수소 핵에 충돌하면 그 반응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알바레즈는 또한 거품 상자 사진을 자동으로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수백만 장의 사진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은 인간이 수동으로 할 수 없었습니다.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 분석 시스템 개발이 그의 또 다른 중요한 기여였습니다.
이것들을 합쳐 알바레즈의 그룹은 새로운 입자들을 쏟아냈습니다. 이 입자들의 발견이 결국 쿼크 모형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알바레즈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공룡 멸종의 원인을 밝히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아들 월터와 함께.
📜 파트 1. 루이스 알바레즈 — 다재다능한 실험물리학자
루이스 월터 알바레즈는 191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인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이었습니다.
시카고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버클리 대학교에서 어니스트 로렌스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태생적으로 실험적이고 발명가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새로운 실험 방법을 생각해내고 장치를 만들어 구현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버클리에서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한 여러 중요한 발견에 참여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알바레즈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핵폭탄을 폭발시키는 폭발 렌즈 기폭 시스템 설계에 기여했습니다. 내폭형 핵폭탄의 동시 기폭 기술의 핵심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임무에서 관측기에 탑승했습니다. 폭발을 직접 목격한 과학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레이더와 착륙 시스템
전쟁 중 알바레즈는 레이더 기술에도 기여했습니다. 특히 지상 접근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안개나 어둠 속에서도 항공기가 활주로에 정렬하고 착륙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쟁 중 폭격기 조종사들의 생환율을 높이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 파트 2. 수소 거품 상자와 새 입자들의 발견
전후 버클리로 돌아온 알바레즈는 입자물리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1952년 글레이저가 거품 상자를 발명하자, 알바레즈는 즉시 이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수소 액체를 사용한 대형 거품 상자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수소인가? 수소 원자핵은 양성자 하나입니다. 양성자는 가장 단순한 핵 표적입니다. 고에너지 파이온이나 다른 입자를 수소 표적에 충돌시키면, 반응이 깔끔하고 분석하기 쉽습니다. 다중 양성자를 가진 원자핵에서는 반응이 복잡해집니다.
1954년 10센티미터 수소 거품 상자, 1956년 38센티미터, 1959년 183센티미터(72인치) — 알바레즈 팀의 거품 상자는 점점 커졌습니다. 72인치 수소 거품 상자는 당시 세계 최대였습니다. 베바트론 가속기와 결합해 강력한 실험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사진 분석의 자동화
하루에 수만 장씩 찍히는 거품 상자 사진을 사람이 모두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알바레즈 팀은 반자동 분석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사진 측정기를 사용해 거품 궤적의 좌표를 읽어내고, 컴퓨터가 자동으로 입자의 운동량, 에너지, 질량을 계산했습니다.
이것은 실험 물리학에 컴퓨터를 체계적으로 도입한 초기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대규모 데이터 분석의 선구자였습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버클리 그룹은 수백만 장의 거품 상자 사진을 분석했습니다. 그 속에서 수십 개의 새로운 입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 파트 3. 공명 입자들의 발견과 쿼크 모형
알바레즈의 수소 거품 상자 실험에서 발견된 입자들 중 많은 것이 공명 입자였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불안정한 상태들.
예를 들어 델타 공명, 로 중간자, 오메가 중간자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수많은 공명 입자들이 어떻게 분류될 수 있는지가 1960년대 입자물리학의 핵심 질문이었습니다. 입자의 종류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기본 입자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았습니다.
겔만과 이스라엘의 유발 네에만은 이 입자들이 팔정도라는 대칭성 군에 따라 분류된다는 것을 독립적으로 발견했습니다. 1961년의 일이었습니다.
팔정도는 SU(3) 대칭군의 표현을 사용해 강입자를 8개씩 묶는 것이었습니다. 겔만은 이것을 불교의 팔정도와 연관지어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팔정도로 분류되는 패턴을 분석하자, 더 기본적인 삼원 묶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1964년 겔만은 쿼크 모형을 제안했습니다.
알바레즈의 데이터 없이는 겔만의 이론도 없었을 것입니다. 수백만 장의 거품 상자 사진에서 발견된 입자들이 쿼크 모형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습니다.
오메가-마이너스의 예측과 발견
쿼크 모형의 가장 극적인 확인 중 하나는 오메가-마이너스 입자의 발견이었습니다.
겔만은 팔정도 대칭성에서 스트레인지 쿼크 3개로 이루어진 입자가 있어야 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 입자를 오메가-마이너스라고 불렀습니다. 질량도 예측했습니다.
1964년 브룩헤이번 국립 연구소의 거품 상자 실험에서 오메가-마이너스가 발견되었습니다. 예측한 질량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이것은 겔만의 이론이 옳다는 결정적 증거였습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으로 해왕성의 존재를 예측하고 나중에 발견된 것처럼, 겔만이 입자를 예측하고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 파트 4. 케네디 암살 조사와 다방면의 과학자
알바레즈는 물리학 이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케네디 암살 분석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워런 위원회는 조사를 진행하면서 아마추어가 찍은 자프루더 영상을 분석했습니다.
알바레즈는 물리학자로서 자프루더 영상을 분석했습니다. 총알이 머리에 맞은 후 케네디의 머리가 움직이는 방향이 암살 음모론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총을 쐈다면 머리가 뒤로 가야 하는데, 영상에서는 앞으로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알바레즈는 총알이 맞은 후 반응성 운동 때문에 머리가 총알이 온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반응성 분출이라는 원리였습니다.
이것은 워렌 위원회의 단독 암살자 결론을 지지하는 물리학적 분석이었습니다.
📜 파트 5. 공룡 멸종 이론 — 아들 월터와의 공동 연구
루이스 알바레즈는 노벨상 이후에도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의 아들 월터 알바레즈는 지질학자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 월터는 이탈리아 구비오 지방의 석회암 노두에서 6600만 년 전의 K-Pg 경계층(백악기-팔레오기 경계)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이 경계층 바로 위에서 공룡을 포함한 대멸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경계층 점토에는 이리듐이라는 원소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있었습니다.
이리듐은 지구 표면에서는 희귀하지만 소행성에는 풍부합니다.
루이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물리학자의 관점으로 계산해보았습니다. 만약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했다면 이 양의 이리듐을 지구 전체에 퍼뜨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1980년 루이스와 월터 알바레즈, 두 명의 동료 과학자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6600만 년 전 거대한 소행성 또는 혜성이 지구에 충돌해 공룡과 다른 많은 생물종이 멸종했다는 가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질학계에서 강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지질학자들은 대부분 점진적 변화를 선호했고, 갑작스러운 충돌 사건에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증거가 쌓였습니다. 전 세계 K-Pg 경계층에서 이리듐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충격 석영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칙술루브 충돌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지름 약 180킬로미터의 충돌구. 알바레즈 가설이 맞았습니다.
오늘날 소행성 충돌에 의한 공룡 멸종은 주류 과학의 정설입니다.
루이스 알바레즈는 1988년 7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충돌구가 발견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론이 인정받는 것은 보았습니다.
1968년 노벨상
1968년 노벨 물리학상은 루이스 알바레즈에게 수여되었습니다.
"소립자 물리학에서의 결정적 공헌, 특히 수소 거품 상자의 발전과 데이터 분석 기술, 그리고 이를 통한 수많은 공명 상태 발견에 대하여"
수소 거품 상자가 쏟아낸 입자들의 목록이 쿼크 모형의 근거가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표준 모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알바레즈의 실험이 현대 입자물리학의 직접적인 토대를 놓은 것입니다.
입자물리학자이자 공학자이자 지구과학 혁명가였던 루이스 알바레즈. 그는 물리학자가 단 하나의 분야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에든 물리학적 사고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 파트 6. 소행성 충돌 이론의 확립
루이스 알바레즈가 1980년 아들 월터와 함께 발표한 소행성 충돌 공룡 멸종 이론은 처음에 큰 반발을 받았습니다. 당시 지질학계는 점진적 변화를 선호하는 균일론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재앙적 사건으로 대멸종이 일어났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증거들이 쌓였습니다.
1981년 덴마크, 스페인, 뉴질랜드 등 전 세계 K-Pg 경계층에서 이리듐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 현상이었습니다.
1984년 충격 석영이 K-Pg 경계층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충격 석영은 엄청난 압력을 받을 때만 생기는 광물입니다. 소행성 충돌 외에는 이런 압력이 생길 수 없습니다.
1991년 멕시코 유카탄 반도 북쪽 해안에서 칙술루브 충돌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지름 약 180킬로미터의 거대한 구조. 66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알바레즈의 이론이 완전히 확인되었습니다. 6600만 년 전, 직경 약 10킬로미터의 소행성이 유카탄 반도에 충돌했습니다. 엄청난 충격파, 화재, 먼지 구름이 지구를 덮었습니다. 햇빛이 차단되어 기온이 급락했습니다. 식물이 죽고 먹이 사슬이 붕괴했습니다. 비조류 공룡을 포함한 75%의 생물종이 멸종했습니다.
이것이 K-Pg 경계의 대멸종 사건입니다.
오늘날 이 이론은 지구과학의 정설입니다. 물리학자가 지질학에 혁명을 가져온 드문 사례입니다. 루이스 알바레즈의 방사성 원소 분석 능력과 물리학적 계산이 없었다면 이 발견이 훨씬 늦어졌을 것입니다.
행성 방어
칙술루브 충돌의 확인 이후, 소행성 충돌에 의한 지구 위협이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NASA는 지구 근접 소행성을 체계적으로 목록화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잠재적으로 위험한 소행성들을 추적합니다.
2022년 NASA의 DART 임무는 소행성의 궤도를 변경하는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소행성 디모르포스에 우주선을 충돌시켜 궤도를 변경했습니다. 행성 방어 기술의 첫 실증이었습니다.
루이스 알바레즈의 소행성 충돌 이론이 인류의 행성 방어 노력을 촉발시킨 것입니다.
📜 파트 7. 알바레즈 실험 데이터와 쿼크 모형
루이스 알바레즈의 수소 거품 상자 실험에서 쌓인 데이터가 겔만의 쿼크 모형을 탄생시키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 버클리의 72인치 수소 거품 상자에서는 매주 수십만 장의 사진이 찍혔습니다. 각 사진에는 수십에서 수백 개의 입자 궤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들을 분석해 새로운 강입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입자의 질량, 전하, 스핀, 동위스핀, 기묘도 등의 성질이 측정되었습니다.
이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성질을 가진 입자들이 묶이는 패턴. 겔만은 이 패턴에서 SU(3) 대칭성을 발견했습니다.
팔정도 대칭성의 한 묶음에서 오메가-마이너스가 빠져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채울 입자의 성질을 겔만은 정밀하게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1964년 브룩헤이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다음 단계가 쿼크 모형이었습니다. 팔정도 패턴을 만들어내는 더 기본적인 삼원 묶음. 업, 다운, 스트레인지 쿼크.
알바레즈의 실험 없이는 겔만의 이론도 없었습니다. 실험 데이터가 이론을 인도한 것입니다. 수백만 장의 거품 상자 사진에서 시작된 것이 현대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으로 이어졌습니다.
📜 파트 8. LHC 시대의 실험 물리학
루이스 알바레즈가 개척한 수소 거품 상자 실험의 정신은 오늘날 LHC의 대형 검출기 실험으로 이어집니다.
알바레즈가 만든 72인치 수소 거품 상자는 수천 명의 협력으로 운영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LHC의 ATLAS와 CMS 검출기는 각각 3000명 이상의 물리학자들이 참여하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입니다.
규모는 다르지만 정신은 같습니다. 고에너지 입자 충돌에서 새로운 입자를 찾는 것.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패턴을 찾는 것.
힉스 보손의 발견
2012년 7월 4일, CERN은 힉스 보손 발견을 발표했습니다. ATLAS와 CMS 두 실험이 동시에 확인했습니다.
힉스 보손은 표준 모형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습니다. 피터 힉스가 1964년 예측한 이 입자는 48년 만에 발견되었습니다.
알바레즈의 시대에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는 것이 혁명적이었습니다. 현재 LHC의 시대에도 새로운 입자 발견은 물리학의 가장 큰 사건입니다.
알바레즈의 수소 거품 상자 데이터에서 쿼크 모형이 탄생했고, 그 쿼크 모형이 표준 모형의 기초가 되었으며, 그 표준 모형의 마지막 입자가 LHC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반세기에 걸친 연결입니다.
실험 물리학자의 자세
알바레즈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실행하라. 나쁜 아이디어라도 실행하면 배울 수 있다"는 철학을 가졌다고 합니다. 맥주와 물리학, 공룡과 물리학, 입자물리학과 공학 — 그는 경계를 두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입자물리학자들도 이 정신을 이어받습니다. 컴퓨터 과학, 공학, 의학 등 여러 분야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새로운 검출 기술과 분석 방법을 개발합니다.
알바레즈가 컴퓨터를 물리학 데이터 분석에 도입한 것이 오늘날 머신러닝과 인공지능을 입자물리학 데이터 분석에 사용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알고리즘이 수십억 개의 충돌 데이터에서 힉스 보손의 신호를 찾아냅니다.
📜 파트 9. 공룡 멸종과 소행성 충돌의 증거들
루이스 알바레즈와 아들 월터가 1980년 제안한 소행성 충돌 공룡 멸종 이론은 이후 30년에 걸쳐 풍부한 증거로 뒷받침되었습니다.
이리듐 이상
알바레즈 가설의 핵심 증거는 K-Pg 경계층의 이리듐 이상이었습니다.
이리듐은 지구 지각에서 매우 희귀하지만(10억 분의 1 수준) 소행성에는 풍부합니다(백만 분의 수십 수준). K-Pg 경계층에서 이리듐 농도가 일반적인 수백 배에 달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구비오에서만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전 세계 K-Pg 경계층에서 같은 이리듐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구 전체에 균일하게 이리듐이 퍼진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칙술루브 충돌구
1991년 루이스 마린이 과거의 중력 데이터를 재분석해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거대한 원형 구조물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칙술루브 충돌구입니다.
지름 약 180킬로미터. 깊이 약 20킬로미터. 방사성 연대 측정 결과 6600만 년 전 생성. K-Pg 경계의 연대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소행성 충돌 규모의 계산: 직경 약 10~15킬로미터의 소행성이 초속 약 20킬로미터로 충돌했을 것. 이때 방출된 에너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수억 배.
충격 변성 광물
충격 석영은 소행성 충돌 같은 엄청난 압력에서만 생깁니다. K-Pg 경계층에서 충격 석영이 발견되었습니다.
코사이트는 충격 변성에서 생기는 석영의 고압 형태입니다.
스티쇼바이트도 초고압 충격 변성 광물입니다.
이 광물들이 K-Pg 경계층에서 전 세계적으로 발견됩니다. 화산 활동으로는 이런 광물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충돌 기원이 유일한 설명입니다.
루이스 알바레즈는 198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칙술루브 충돌구가 발견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이 증거들로 완전히 확인되는 과정을 어느 정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물리학자의 분석 방법이 지구과학에 혁명을 가져온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파트 10. 알바레즈의 영향 — 물리학과 다른 과학의 경계
루이스 알바레즈의 삶은 물리학자가 다른 과학 분야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고고학에서의 물리학
알바레즈는 물리학을 고고학에도 적용했습니다.
1967~68년, 알바레즈는 이집트 피라미드 내부의 숨겨진 방을 찾기 위해 뮤온 라디오그래피를 시도했습니다.
뮤온은 우주선에서 만들어지는 입자입니다. 매우 무거운 물질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더 많이 흡수됩니다.
피라미드 내부에 검출기를 설치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뮤온을 검출했습니다. 비어있는 공간이 있다면 더 많은 뮤온이 통과할 것입니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에서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당시에는 특별한 숨겨진 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반세기 후 꽃을 피웠습니다. 2017년 ScanPyramids 프로젝트는 현대적인 뮤온 검출기로 쿠푸 왕 대피라미드에서 숨겨진 큰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알바레즈가 1960년대에 제안한 방법이 드디어 성공한 것입니다.
지구 내부 탐사
뮤온 라디오그래피는 이제 화산 내부 구조 탐사에도 사용됩니다. 화산 내부의 용암실과 통로를 외부에서 촬영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후지산, 이탈리아의 베수비오, 인도네시아의 여러 화산들의 내부 구조가 뮤온 라디오그래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물리학자가 발전시킨 입자 검출 기술이 고고학과 지구과학에 혁명을 가져온 것입니다. 알바레즈의 정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마무리. 1968년 노벨 물리학상의 의미
1968년 노벨 물리학상은 단순히 과학자 개인의 업적을 기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류 지식의 경계가 어디까지 넓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였습니다.
수상자들이 발견하고 이론화한 것들은 처음에는 순수한 호기심과 이해의 욕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초 연구들이 수십 년의 시간을 거쳐 실용적인 기술로 변환되었습니다. 의학, 통신, 에너지, 정보 기술 — 현대 문명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이 기초 과학의 힘입니다. 당장 무엇에 쓸지 모르는 지식이 인류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됩니다.
과학이란 자연의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 언어를 읽을 줄 알면 자연이 제공하는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68년의 수상자들은 그 언어의 새로운 단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단어들로 인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벨상은 1년에 한 번 수여됩니다. 하지만 그 수상자들이 발견한 진리는 영원히 남습니다. 인류가 알게 된 것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과학의 가장 아름다운 특성입니다.
📜 부록. 196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과 과학의 보편성
노벨 물리학상의 역사에서 1968년은 중요한 해였습니다. 이 해의 수상은 과학적 발견이 어떻게 인류의 공동 유산이 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적 활동 중 하나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만물의 근원을 물었고,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고,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제안했습니다. 그 긴 탐구의 연장선에 1968년 수상자들의 업적이 있습니다.
과학 지식은 누군가의 소유가 아닙니다. 한 번 발견되면 전 인류의 것이 됩니다. 어느 나라에서, 어느 언어로 연구하든 같은 자연법칙이 발견됩니다. 이것이 과학의 보편성입니다.
1968년 수상자들이 발견한 것들은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론으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이 그 위에서 더 높이 올라갑니다.
과학자의 일은 쓸쓸할 수 있습니다. 혼자 또는 소수의 팀이 수년을 씨름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발견의 순간이 올 때도 있고 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발견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인류 전체의 지식이 됩니다. 칠레의 학생도, 한국의 연구자도, 케냐의 교수도 같은 공식으로 같은 현상을 계산합니다. 자연의 언어는 하나입니다.
1968년 노벨 물리학상은 그 언어의 새로운 챕터가 완성된 것을 기념했습니다.
물리학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표준 모형 너머의 물리학,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양자 중력, 의식의 물리학적 이해.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이 미래의 과학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공부하고, 실험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1968년의 수상자들이 쌓아놓은 기초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