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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3_[NEW] 노벨화학상

[1985 노벨화학상] 허버트 하우프트만·제롬 칼 : X선 회절 패턴에서 분자 구조를 읽어내다 — 직접법의 혁명

by 어셈블러 2026.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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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에 X선을 쏘면 회절 패턴이 생깁니다.

이 패턴으로부터 분자의 3차원 구조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X선 결정학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런데 이 '알아낸다'는 과정이 1950년대 이전까지는 엄청난 예술에 가까운 작업이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소위 위상 문제(phase problem)입니다. X선 회절 실험에서는 회절된 X선의 강도(intensity)만 측정할 수 있고, 위상(phase) 정보는 사라집니다. 그런데 분자 구조를 계산하려면 강도뿐만 아니라 위상 정보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X선 결정학의 근본적인 난관이었습니다.

허버트 하우프트만과 제롬 칼은 이 위상 문제를 수학적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들이 개발한 직접법(direct methods)은 오직 회절 강도 데이터만으로 위상 정보를 통계적으로 결정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의 등장으로 X선 결정학은 소수의 전문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예술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표준 도구로 변했습니다.


 

🏆 결정 구조 결정의 직접법 — 수상의 의미

 

 

 

"결정 구조의 직접 결정 방법 개발에서 뛰어난 업적을 인정하여"

 

 

1985년 노벨위원회의 수상 이유입니다. 흥미롭게도 두 수상자 중 하우프트만은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였습니다. 화학 연구의 핵심 도구를 개발하는 데 수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입니다.

이 상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두 수상자는 화학자나 결정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와 물리학자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것은 특정 분자의 구조가 아니라, 수천 가지 분자의 구조를 결정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방법론이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이런 방법론적 기여도 노벨상의 가치가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직접법의 개발 이후 수십 년간 X선 결정학으로 결정된 분자 구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수천 개의 의약품, 천연물, 바이오분자의 구조가 직접법 덕분에 밝혀졌습니다.


 

📜 두 수학자와 결정학

 

허버트 A. 하우프트만은 1917년 2월 14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에서 복무한 후 1954년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제롬 칼은 1918년 6월 18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뉴욕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1944년 미시간 대학교에서 물리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워싱턴 D.C.의 미국 해군연구소(Naval Research Laboratory)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하우프트만은 수학 부서에서, 칼은 X선 결정학 연구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30년의 파트너십

 

두 사람이 직접법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40년대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순수 수학적 관점(하우프트만)과 물리화학적 관점(칼)을 결합하여 위상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1953년 그들은 직접법의 핵심 이론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논문은 처음에는 결정학 공동체에서 거의 무시당했습니다. 기존의 결정학자들은 회절 강도만으로 위상 정보를 결정할 수 있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이론을 계속 발전시켰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그들은 직접법의 수학적 기초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실제 적용 가능성을 높이는 알고리즘들을 개발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직접법의 실용적 적용이 가능해지면서, 이 방법의 위력이 서서히 입증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직접법이 소분자 결정 구조 결정의 표준 방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위상 문제와 직접법의 원리

 

위상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하우프트만과 칼이 어떻게 이것을 해결했는지를 이해해 보겠습니다.

 

X선 회절의 기본

 

결정에 X선을 쪼이면, 결정 내부의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X선이 특정한 방향으로 회절됩니다. 이 회절 패턴(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반사 신호들)을 기록한 것이 회절 데이터입니다.

각 반사 신호는 두 가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진폭(amplitude) — 이것은 회절된 X선의 강도를 측정하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위상(phase) — 이것은 회절된 X선의 파동이 기준점에 대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위상 정보는 실험에서 직접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원자의 위치를 계산하기 위해서는(푸리에 변환을 통해) 진폭과 위상 정보가 모두 필요합니다. 진폭은 알 수 있지만 위상을 모르는 상황 — 이것이 위상 문제입니다.

 

직접법의 핵심 아이디어

 

하우프트만과 칼의 핵심 통찰은 이것입니다. 결정 내부의 원자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어야 물리적으로 의미가 있는지(원자 위치에서 전자 밀도가 양수이고 국소화되어야 한다는 물리적 제약)를 이용하면, 위상들 사이의 확률적 관계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은 강도가 강한 반사 신호들의 위상들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인-릉게 관계식(Sayre equation)탄젠트 공식(tangent formula) 같은 방정식들이 위상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합니다.

이 관계식들을 반복적으로 적용하면(반복 계산, iterative calculation), 처음에 가정한 위상들을 점차 개선하여 올바른 위상 집합으로 수렴시킬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얻어진 위상과 진폭으로 전자 밀도 지도를 계산하면, 원자들의 위치가 나타납니다.

 

컴퓨터의 역할

 

직접법이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컴퓨터의 발전이었습니다. 직접법의 계산 과정은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수작업으로 하기에는 계산량이 너무 많습니다.

1960년대부터 컴퓨터를 이용한 직접법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SHELX, MULTAN 등의 소프트웨어 패키지들이 개발되면서 직접법은 세계 어느 실험실에서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 직접법이 가져온 변화 — 구조 결정의 민주화

 

직접법 이전의 X선 결정학에서 구조 결정은 고도의 기술과 경험을 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경험 많은 결정학자들은 분자의 화학적 지식과 직관, 그리고 다양한 우회적 방법들(동형 치환법, 이상 분산법 등)을 이용하여 위상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과정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직접법의 등장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구조 결정 시간의 단축: 이전에 몇 달이 걸리던 구조 결정이 며칠, 심지어 몇 시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비전문가도 사용 가능: 결정학 전문가가 아닌 화학자, 생화학자, 약학자들도 직접법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합성하거나 추출한 화합물의 구조를 직접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연구 범위의 확대: 이전에는 구조 결정이 너무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걸려 포기했던 복잡한 분자들의 구조가 잇달아 밝혀졌습니다.

직접법 이후 수십 년간 결정 구조 데이터베이스(Cambridge Structural Database)에 등록된 구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현재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100만 개 이상의 결정 구조가 담겨 있습니다.


 

🌱 두 수상자의 이후 삶

 

허버트 하우프트만은 1970년 뉴욕의 의학재단 결정학 연구소(Hauptman-Woodward Medical Research Institute, 현재는 그의 이름을 딴 기관)로 자리를 옮겨 평생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2011년 10월 23일 9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우프트만은 노벨상 수상 후에도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특히 그는 직접법을 소분자를 넘어 더 큰 분자(특히 단백질)에 적용하는 방법을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단백질은 수천 개의 원자를 가지고 있어 소분자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데, 하우프트만은 이 문제에 말년까지 도전했습니다.

제롬 칼은 미국 해군연구소에서 계속 근무하며 결정학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는 2013년 6월 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내 이저벨라 칼(Isabella Karle)도 뛰어난 결정학자였으며, 해군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했습니다.


 

💡 직접법의 유산 — 분자의 지도 제작

 

직접법의 발전은 현대 과학의 여러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의약품 개발: 신약 후보 물질들의 3차원 구조를 빠르게 결정함으로써, 구조-활성 관계 연구를 가속화했습니다. 수천 가지 항생제, 항암제, 항바이러스제들의 구조가 직접법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천연물 화학: 식물, 미생물, 해양 생물 등에서 추출한 복잡한 천연물들의 구조 결정에 직접법이 필수적으로 활용됩니다. 이 구조 정보가 새로운 의약품 개발의 출발점이 됩니다.

재료 과학: 새로운 소재들(초전도체, 반도체, 나노 재료 등)의 결정 구조를 이해하는 데 직접법이 활용됩니다.

하우프트만과 칼은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도구가 열어놓은 세계는 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대했습니다. 분자의 지도 제작자들, 그것이 두 수상자가 과학사에서 차지하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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