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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3_노벨경제학상

[1985 노벨경제학상] 프랑코 모딜리아니 : 저축과 투자의 심리를 밝힌 경제학자

by 어셈블러 202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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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저축하고, 기업은 왜 투자를 할까?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왜 저축을 할까요? "당연히 노후를 위해서"라고 답할 수도 있고, "아이들 교육비나 집을 사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떨까요? 어떤 기업은 은행에서 막대한 돈을 빌리고[부채], 어떤 기업은 주식을 발행해[자기자본] 자금을 조달합니다. 이 선택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1980년대 중반까지도 경제학은 이 '상식적인'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특히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은 '저축은 현재 소득의 일부'라는 다소 기계적인 해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때, 한 명의 경제학자가 나타나 이 모든 질문의 중심에 '인간의 합리적인 장기 계획'과 '시장의 작동 원리'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나치즘을 피해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이자, 20세기 경제학의 지도를 바꾼 거인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랑코 모딜리아니 [Franco Modigliani]. 1985년 노벨 경제학상은 개인의 '저축'과 기업의 '금융'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영역에서 혁명적인 이론을 제시한 그에게 단독으로 수여되었습니다.


 

🏆 공식 수상 이유 : 저축과 금융 시장의 선구적 분석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그의 공로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저축 및 금융 시장에 대한 선구적인 분석 [For his pioneering analyses of saving and of financial markets]

이 짧은 문장은 모딜리아니의 빛나는 두 가지 핵심 업적을 가리킵니다.

  1. 저축 : 사람들은 '현재 소득'이 아니라 '평생 소득'을 기반으로 소비하고 저축한다는 생애주기 가설 [Life-Cycle Hypothesis]을 정립했습니다.
  2. 금융 시장 : 기업의 가치는 자금 조달 방식[부채 vs 자기자본]이 아니라 오직 '영업 능력'으로만 결정된다는 모딜리아니-밀러 정리 [Modigliani-Miller Theorem]를 발표했습니다.

이 두 이론은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경제학 및 경영학 교과서의 핵심 장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 생애주기 가설 : 당신은 현재가 아닌 평생을 계획한다

 

모딜리아니 이전의 케인스 경제학은 "사람들은 현재 소득이 늘면 소비와 저축을 늘리고, 소득이 줄면 줄인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딜리아니는 "아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근시안적이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벌어들일 총소득을 예상하고, 은퇴 후의 삶까지 모두 고려하여 현재의 소비와 저축을 '계획'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애주기 가설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개인의 저축 패턴은 나이에 따라 뚜렷한 [Hump] 모양을 그립니다.

 

청년기

 

  • 소득은 낮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 소득은 높습니다.
  • 집을 사거나[주택담보대출], 학업을 위해[학자금 대출] 돈을 빌립니다.
  • 즉, 저축이 마이너스 [ (-) ]인 상태입니다.

 

중장년기

 

  • 소득이 정점에 이르는 '황금기'입니다.
  • 빌렸던 대출금을 갚아나가고,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저축합니다.
  • 이 시기에 저축은 플러스 [ (+) ]로 전환되어 정점을 찍습니다.

 

노년기

 

  • 직장에서 은퇴하여 노동 소득이 끊깁니다.
  •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중장년기에 모아둔 저축과 자산을 꺼내 씁니다.
  • 저축은 다시 마이너스 [ (-) ]가 됩니다.

이 이론은 단순히 개인의 저축 행동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국가 전체의 저축률은 그 나라 국민들의 연령 분포에 달려있다는 엄청난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장년층 인구가 많은 국가는 총저축률이 높게 나타나고 [1980~90년대의 일본이나 한국], 반대로 노년층 인구 비중이 높아지는 '고령화 사회'는 총저축률이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경고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연금 고갈, 사회 보장 문제와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 모딜리아니-밀러 정리 : 피자 조각이 피자의 가치를 바꾸진 못한다

 

모딜리아니의 두 번째 위대한 업적은 '기업 금융' 분야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동료 학자이자 훗날 노벨상 수상자[1990년]가 되는 머턴 밀러 [Merton Miller]와 함께 기업 재무 관리의 근본을 뒤흔드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당시 경영학계의 가장 큰 화두는 이것이었습니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은행에서 빚을 내는 것[부채]이 좋은가, 아니면 주식을 발행하는 것[자기자본]이 좋은가?"

어떤 이들은 빚[부채]은 이자 비용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을 주니 무조건 유리하다고 했고, 어떤 이들은 빚이 많으면 파산 위험이 커지니 주식[자기자본]이 안전하고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모딜리아니와 밀러가 외쳤습니다.

"특정한 가정 [세금, 파산 비용 등이 없는 완벽한 시장] 하에서는, 그 두 가지 방식의 가치는 동일하다."

이것이 바로 모딜리아니-밀러 정리 [M&M 정리]입니다.

그들은 아주 유명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피자의 가치는 피자를 몇 조각으로 자르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The value of a pizza doesn't depend on how you slice it.]

  • 피자 전체의 가치 = 기업의 총 가치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
  • 피자 조각 = 자금 조달 방식 [부채 + 자기자본]

즉, 기업의 진짜 가치는 그 기업이 가진 기술력과 사업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돈을 빌려오든 주식을 발행하든 그 '조각'을 나누는 방식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무관련성 원칙'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지만, 그 진정한 공헌은 다음 단계에 있습니다. 이 정리는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왜 기업들이 부채 비율에 그토록 신경 쓰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습니다.

정답은 M&M 정리가 가정했던 '완벽한 시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는 세금이 존재하고[부채의 이자는 비용 처리되어 세금 감면을 받음], 파산 비용이 존재하며[부채가 너무 많으면 망함], 정보 비대칭이 존재합니다.

결국 M&M 정리는 현대 기업 재무학이 '세금 효과', '파산 비용', '정보 비대칭' 등이 기업 가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도록 하는, 거대한 '출발선'을 그어준 셈입니다.


 

⚡️ 파시즘을 피해 미국으로 간 천재

 

프랑코 모딜리아니의 삶은 그의 이론만큼이나 극적이었습니다. 그는 1918년 이탈리아 로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명석한 두뇌로 로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그는, 당시 이탈리아를 휩쓸던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반대하는 에세이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38년, 무솔리니 정권이 유대인의 공직 및 학계 진출을 금지하는 '인종법'을 통과시키자, 모딜리아니는 더 이상 조국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그는 1939년, 반유대주의자였던 장인을 설득해 연인 세레나와 함께 파리로, 그리고 곧바로 미국 뉴욕으로 망명길에 오릅니다.

그는 빈손으로 미국 땅을 밟았지만, 특유의 열정과 명석함으로 학업을 이어갔고, MIT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거시경제학자이자 금융이론가로 우뚝 섰습니다.


 

🧐 TMI & 비하인드 스토리

 

  • 열정적인 성격 : 모딜리아니는 매우 열정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으로 유명했습니다. 짙은 이탈리아 억양으로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MIT의 명물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 M&M 정리의 파트너 : M&M 정리의 공동 저자인 머턴 밀러는 5년 뒤인 1990년, 이 공로를 인정받아 다른 두 명의 금융 경제학자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 케인스의 비판적 계승자 : 모딜리아니는 자신을 '케인스주의자'라고 불렀지만, '생애주기 가설'을 통해 케인스의 단순한 소비-저축 이론을 완전히 대체해버렸습니다. 그는 스승의 이론을 맹목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비판하고 발전시킨 진정한 학자였습니다.
  • 날카로운 정책 비판가 : 그는 학계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 정책[감세를 통한 군비 증강]이 결국 미국의 국가 저축률을 훼손하고 미래 세대에게 짐을 떠넘길 것이라고 생애주기 가설에 근거하여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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