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00_Novel/303_노벨경제학상

[1990 노벨경제학상] 해리 마코위츠, 머턴 밀러, 윌리엄 샤프 : '위험'을 숫자로 계산한 재무 혁명가들

by 어셈블러 2025. 11. 17.
728x90
반응형

 

 

 

📜 투자의 '과학'을 탄생시키다

 

1990년 이전까지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금융 투자의 세계는 직관, 그리고 경험이 지배하는 영역이었습니다. "이 주식은 오를 것 같다"는 내부자 정보나, "그 회사는 유망하다"는 막연한 믿음이 투자의 기준이었습니다. '위험' [Risk]이라는 단어는 존재했지만, 그것은 그저 '피해야 할 그 무엇'일 뿐, 누구도 그것을 정확히 측정하거나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은, 이 거대한 금융 시장을 '경험의 영역'에서 '수학과 통계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세 명의 거장에게 돌아갔습니다.

바로 해리 마코위츠 [Harry Markowitz], 머턴 밀러 [Merton Miller], 그리고 윌리엄 샤프 [William Sharpe]입니다.

이 세 사람은 각각 '투자자는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가?', '기업은 자본을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개별 자산의 위험과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현대 재무 경제학의 가장 근본적인 세 기둥을 세운 혁명가들입니다. 그들 덕분에 투자는 '도박'에서 '과학'으로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 공식 수상 이유 : 재무 경제학의 이론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이 세 사람의 공로를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재무 경제학 이론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 [For their pioneering work in the theory of financial economics]

이 간결한 문장 뒤에는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경영대학원[MBA]과 금융 기관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세 가지 핵심 이론이 숨어 있습니다.

  • 해리 마코위츠 :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 [Modern Portfolio Theory]
  • 윌리엄 샤프 : 자본자산 가격결정 모형 [CAPM, Capital Asset Pricing Model]
  • 머턴 밀러 : 모딜리아니-밀러 정리 [M&M Theorem, 기업 재무 이론]

흥미롭게도 머턴 밀러의 업적은 1985년 수상자인 프랑코 모딜리아니와의 공동 연구였으며, 윌리엄 샤프의 이론은 해리 마코위츠의 이론을 기반으로 탄생했습니다. 그야말로 '재무 경제학'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학문 체계를 완성한 공로였던 셈입니다.


 

✍️ 해리 마코위츠 :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은 수 세기 동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해리 마코위츠는 1952년,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 격언이 '왜' 그리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수학적으로 증명해냈습니다.

 

포트폴리오 이론의 탄생

 

마코위츠 이전의 투자자들은 그저 '수익률이 높은' 자산을 찾는 데만 혈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코위츠는 "개별 자산의 수익률이 아니라, 자산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핵심 통찰은 상관관계 [Correlation]였습니다.

예를 들어, [A: 아이스크림 회사]와 [B: 우산 회사]라는 두 개의 주식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 날씨가 맑으면 -> A는 대박, B는 쪽박.
  • 날씨가 비 오면 -> A는 쪽박, B는 대박.

만약 당신이 A에만 '몰빵' 투자했다면, 당신의 수익은 날씨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갈 것입니다. [높은 위험] 하지만 만약 당신이 A와 B에 돈을 '나누어' 투자[포트폴리오]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맑은 날에는 A가 B의 손해를 메워주고, 비 오는 날에는 B가 A의 손해를 메워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의 총수익은 날씨에 상관없이 매우 안정적이 됩니다. [낮은 위험] 이것이 바로 마코위츠가 증명한 '분산 투자를 통한 위험 감소'의 마법입니다.

 

위험과 수익의 효율적 경계

 

마코위츠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수많은 주식의 조합을 컴퓨터로 계산하여,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지도'를 그렸습니다.

"같은 위험을 감수한다면, 가장 높은 수익률을 주는 포트폴리오를 선택하고, 같은 수익률을 원한다면, 가장 낮은 위험을 감수하는 포트폴리오를 선택하라."

이 최적의 포트폴리오 조합들을 연결한 선이 바로 효율적 경계 [Efficient Frontier]입니다. 이 그래프의 등장은 투자자들에게 '내가 얼마나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위험 대비 최대 수익은 얼마인지'를 숫자로 보여주는 최초의 내비게이션이 되었습니다.


 

📚 윌리엄 샤프 : 시장의 '위험'을 측정하는 단 하나의 숫자

 

해리 마코위츠가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짤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면, 윌리엄 샤프는 마코위츠의 이론을 한 단계 발전시켜 '그래서, 개별 주식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했습니다.

그의 대답이 바로 현대 재무학의 심장이라 불리는 자본자산 가격결정 모형 [CAPM]입니다.

 

체계적 위험과 비체계적 위험

 

샤프는 먼저 '위험'을 두 가지 종류로 명확하게 분리했습니다.

  1. 비체계적 위험 [Unsystematic Risk] : 그 기업 '개별'의 문제로 발생하는 위험입니다. (예: CEO의 횡령, 공장 화재, 신제품 실패 등) 이 위험은 마코위츠의 방식대로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를 하면 제거할 수 있습니다.
  2. 체계적 위험 [Systematic Risk] : 시장 '전체'가 움직여서 발생하는, 피할 수 없는 위험입니다. (예: 전쟁 발발, 글로벌 금리 인상, 경제 위기 등) 이 위험은 아무리 분산 투자를 해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샤프는 "투자자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위험은 오직 피할 수 없는 위험, 즉 체계적 위험뿐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비체계적 위험은 투자자가 분산을 안 한 '본인 탓'이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의 숫자, 베타

 

그렇다면 이 '피할 수 없는 위험' 즉, 체계적 위험은 어떻게 측정할까요? 샤프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베타 [Beta]라는 놀라운 개념을 제시합니다.

베타는 시장 전체가 1% 움직일 때, 특정 주식이 몇 %나 더 민감하게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 베타 = 1 : 시장과 똑같이 움직이는 평균적인 주식.
  • 베타 = 2 : 시장이 1% 오를 때 2% 오르고, 1% 내릴 때 2% 내리는, 매우 민감하고 위험한 주식. [고위험 고수익]
  • 베타 = 0.5 : 시장이 1% 오를 때 0.5%만 오르는, 매우 둔감하고 안정적인 주식. [저위험 저수익]

이제 투자자는 베타라는 단 하나의 숫자만 보고도 "이 주식이 시장 전체에 비해 얼마나 위험한지"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CAPM은 이 베타 값을 이용해 해당 주식이 마땅히 벌어들여야 할 '기대 수익률'을 계산하는 공식을 완성시켰고, 이는 모든 자산 가격을 평가하는 표준이 되었습니다.


 

⚡️ 머턴 밀러 : 1985년의 약속을 완성하다

 

198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던 프랑코 모딜리아니를 기억하실 겁니다. 머턴 밀러는 바로 모딜리아니의 위대한 파트너였습니다.

1990년 노벨 위원회는 1985년에 미처 조명하지 못했던 머턴 밀러의 공로를 다시금 인정한 것입니다.

 

모딜리아니 밀러 정리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모딜리아니-밀러 정리 [M&M 정리]는 기업 재무 이론의 출발점입니다. 그들의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빚[부채]을 내는 것과 주식[자기자본]을 발행하는 것 중 무엇이 더 기업 가치를 높이는가?"

두 사람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세금도 없고, 파산 비용도 없는 '완벽한 시장'이라면, 기업의 가치는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는 앞서 1985년 포스트에서 다룬 '피자 비유'와 같습니다. 기업의 가치는 그 기업의 '사업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 가치를 '빚'이라는 조각과 '주식'이라는 조각으로 어떻게 나누든 피자 전체의 크기[기업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시장이라는 출발점

 

M&M 정리는 '현실에서 아무 쓸모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에는 세금도 있고 파산 비용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정리의 진정한 위대함은 바로 그 '비현실적인 가정'에 있습니다. 밀러와 모딜리아P아니는 "자, 우리가 완벽한 시장에서는 자본 구조가 아무 상관없음을 증명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세금이 있거나 파산 비용이 있을 때 기업 가치가 '왜' 변하는지 연구해보자!"라며, 현대 기업 재무학이 나아가야 할 거대한 '연구 지도'를 제시한 것입니다.


 

🧐 TMI & 비하인드 스토리

 

  • 도서관에서의 운명 : 마코위츠는 시카고 대학 박사 과정 중, 논문 주제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수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우연히 존 폰 노이만 [John von Neumann]의 '게임 이론'을 읽고 큰 영감을 받아 "불확실성 하에서의 선택"을 연구하기로 결심했고, 이것이 포트폴리오 이론으로 이어졌습니다.
  • 시카고 학파의 거두 : 머턴 밀러는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시카고 학파'의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노벨상을 받았다고 내 의견이 더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 말을 더 귀담아들을 것이고, 그건 아주 끔찍한 일이다"라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답변을 남겼습니다.
  • 샤프 지수 : 오늘날 펀드 매니저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샤프 지수 [Sharpe Ratio]는 바로 윌리엄 샤프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이는 '위험 1단위 당 얼마의 초과 수익을 올렸는가'를 측정하는 지표로, 그가 얼마나 실무적인 공헌을 했는지 보여줍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