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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3_노벨경제학상

[2020 노벨경제학상] 폴 밀그롬 & 로버트 윌슨 : 경매를 과학으로 만든 경매 이론의 거장들

by 어셈블러 2025.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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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비싼 '게임'을 설계하다

 

우리는 '경매'라고 하면 미술품 경매장이나 중고 장터의 뜨거운 입찰 경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21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비싼 자원들은 대부분 경매를 통해 주인을 찾아갑니다.

당신이 지금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그 스마트폰이 사용하는 주파수는 정부가 통신사들(SKT, KT, LGU+)을 상대로 연 거대한 경매의 결과물입니다. 당신이 인터넷 검색창에 무언가를 입력할 때, 화면 상단에 뜨는 광고 순위 역시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벌어지는 '광고 경매'의 결과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부가 도로 건설권을 민간 기업에 넘길 때, 천연가스나 석유 시추권을 팔 때, 파산한 기업의 자산을 매각할 때, 이 모든 거대한 '게임'의 규칙을 설계하는 것이 바로 경매 이론 [Auction Theory]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매우 위험합니다.

  • 만약 경매 규칙이 잘못 설계되면, 아무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정부는 수조 원의 손해를 봅니다.
  • 만약 입찰자들이 '승자의 저주'에 빠져 너무 높은 가격을 써내면, 낙찰받은 기업은 파산하고 사회 전체가 피해를 봅니다.

2020년 노벨 경제학상은, 이 복잡하고 위험한 '경매'라는 게임의 작동 원리를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나아가 현실 세계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경매 방식'을 직접 설계해낸 두 명의 스탠퍼드 대학 거장, 폴 밀그롬 [Paul Milgrom]과 로버트 윌슨 [Robert Wilson]에게 돌아갔습니다.


 

🏆 공식 수상 이유 : 경매 이론의 개선과 새로운 경매 방식의 발명

 

스웨덴 왕립 과학 아카데미는 이들의 공로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경매 이론의 개선과 새로운 경매 형식의 발명에 대한 공로 [For improvements to auction theory and inventions of new auction formats]

이 수상 이유는 두 가지 핵심 공헌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1. 이론의 개선 : 로버트 윌슨은 "왜 사람들은 경매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써내고 후회하는가?" [승자의 저주]라는 문제를 파고들었고, 폴 밀그롬은 이를 일반화하여 '정보'가 경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밝혔습니다.
  2. 새로운 방식의 발명 : 두 사람은 단순히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론을 바탕으로 미국 정부의 '주파수 경매'라는 전례 없는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경매 방식을 직접 '발명'해냈습니다.

 

✍️ 스승과 제자, 경매의 '두뇌'를 완성하다

 

로버트 윌슨과 폴 밀그롬은 스탠퍼드 대학의 스승과 제자 사이입니다. (윌슨이 밀그롬의 박사 과정 지도교수였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경매'라는 복잡한 게임의 핵심을 꿰뚫습니다.

 

로버트 윌슨 : '승자의 저주'를 경고하다

 

로버트 윌슨은 경매에서 가장 무서운 함정인 승자의 저주 [Winner's Curse]를 이론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승자의 저주'란 경매에서 이기긴 이겼는데, 너무 높은 가격을 써낸 나머지 오히려 낙찰자가 손해를 보거나 파산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윌슨은 이것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낙찰받을 물건의 '객관적인 가치'는 동일한데 [예: 석유 시추권], 그 가치가 얼마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공통 가치 경매 [Common Value Auction]에서 이 문제가 발생합니다.

  1. A, B, C 세 회사가 석유 시추권 경매에 참여합니다.
  2. 땅에 묻힌 석유의 실제 가치는 '1,000억 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아무도 이 숫자를 모릅니다.
  3. A는 800억, B는 1,000억, C는 1,200억으로 가치를 추정합니다.
  4. 이때 C가 1,200억 원에 가장 가까운 1,100억 원을 써내 낙찰됩니다.
  5. [결과] C는 이겼지만, 실제 가치(1,000억)보다 비싼 값(1,100억)을 치렀기 때문에 100억 원의 손해를 봅니다. 이것이 승자의 저주입니다.

윌슨은 수학적으로 "합리적인 입찰자라면,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이 물건의 가치를 과대평가했다'는 나쁜 신호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입찰자들은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한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써내게 됩니다.

 

폴 밀그롬 : '정보'가 어떻게 경매를 지배하는가

 

제자인 폴 밀그롬은 스승의 이론을 한 차원 더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현실의 경매가 '공통 가치'와 '개인적 가치' [예: 이 물건이 나에게만 특별히 더 가치가 있음]가 뒤섞여 있다고 보았습니다.

밀그롬의 핵심 질문은 "어떻게 하면 판매자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의 대답은 정보의 투명성에 있었습니다. 그는 "판매자는 입찰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왜일까요? 윌슨이 경고했듯이, 입찰자들은 승자의 저주가 두려워 가격을 낮게 써냅니다. 정보가 불확실할수록 이 두려움은 커지고, 입찰 가격은 바닥을 칩니다.

하지만 만약 판매자가 물건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정보'[예: 전문 감정서]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요? 입찰자들은 승자의 저주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불확실성이 줄어들자, 그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에 더 가깝게, 즉 더 공격적으로 입찰하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더 투명한 정보를 제공한 판매자가 훨씬 더 높은 낙찰가를 받게 됩니다. 밀그롬은 또한 경매 중에 다른 입찰자들이 얼마를 써내는지 '정보'가 공개되는 것이 어떻게 입찰을 더 뜨겁게 만드는지 증명해냈습니다.


 

📚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 주파수 경매

 

이 두 거장의 이론이 어떻게 현실을 바꾸었는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바로 1994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FCC]의 주파수 경매입니다.

 

풀 수 없었던 문제

 

1990년대 초, 스마트폰 시대를 앞두고 미국 정부는 통신사들에게 라디오 주파수 사용권을 배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너무 복잡했습니다.

  • 문제 1 (상호보완성) : 통신사에게 '뉴욕' 주파수와 '뉴저지' 주파수는 따로따로일 때보다 '함께' 가질 때 그 가치가 훨씬 더 커집니다.
  • 문제 2 (복잡성) : 미국 전역의 수백 개 지역에 걸친 수천 개의 주파수 '묶음'을 어떻게 한 번에 공정하게 팔 수 있을까요?

기존의 방식[개별 경매]대로라면, 한 통신사가 뉴욕 경매에선 이겼는데 뉴저지 경매에선 지는 순간, 뉴욕 주파수마저 쓸모없어지는 '지옥'이 펼쳐질 수 있었습니다. 승자의 저주가 전국 단위로 터질 판이었습니다.

 

밀그롬과 윌슨의 '설계'

 

이때 FCC의 부름을 받은 이들이 바로 밀그롬과 윌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경매 방식을 '발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시 다중 라운드 경매 [Simultaneous Multi-Round Auction, SMRA]입니다.

  1. 동시 : 미국 전역의 모든 지역 주파수를 '동시에' 경매에 부칩니다.
  2. 다중 라운드 : 경매를 한 번에 끝내지 않습니다. 1라운드 입찰을 받고, 모든 입찰자에게 '현재 최고가'를 투명하게 공개합니다. 그리고 2라운드, 3라운드... 아무도 더 이상 입찰하지 않을 때까지 수십, 수백 라운드를 계속 진행합니다.

이 방식은 밀그롬과 윌슨의 이론이 완벽하게 적용된 걸작이었습니다.

  • 정보의 투명성 [밀그롬] : 매 라운드마다 가격 정보가 공개되자, 통신사들은 승자의 저주 공포에서 벗어났습니다. "아, A 통신사가 뉴욕을 저 가격에 사려 하는군. 그럼 나는 대신 LA에 집중해야겠다"와 같이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해졌습니다.
  • 상호보완성 해결 : 모든 경매가 동시에 진행되므로, 통신사는 뉴욕과 뉴저지의 가격을 '함께' 보면서 입찰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 가격이 너무 비싸지면, 두 곳을 동시에 포기하는 전략적 선택이 가능해졌습니다.

1994년 7월, 이들이 설계한 첫 번째 주파수 경매는 46라운드에 걸쳐 5일간 진행되었고, 정부 예상치의 3배가 넘는 6억 17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이후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이 SMRA 방식을 모방해 통신 주파수를 경매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수천억 달러의 공공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 이론은 어떻게 현실을 만드는가

 

폴 밀그롬로버트 윌슨의 수상은 경제학이 단지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공학'[Engineering]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그들은 승자의 저주라는 인간의 불안정성을 이해했고(윌슨), 정보가 그 불안을 잠재우는 열쇠임을 밝혔으며(밀그롬), 마침내 그 이론을 현실의 '설계도'로 만들어(FCC 경매)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 TMI & 비하인드 스토리

 

  • 제자의 집 문을 두드린 스승 : 2020년 노벨상 발표일 새벽 2시, 노벨 위원회는 폴 밀그롬에게 수상 소식을 알리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위원회는 공동 수상자이자 이웃집에 살던 스승 로버트 윌슨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윌슨은 새벽 2시 15분에 직접 제자 밀그롬의 집 현관 벨을 누르고, 현관 CCTV를 통해 "폴, 나 밥 윌슨이야. 자네가 노벨상을 받았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 훈훈한 장면은 CCTV에 그대로 남아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 경매 컨설팅의 창시자들 : 두 사람은 스탠퍼드 대학의 동료들과 함께 '경매' 전문 컨설팅 회사를 공동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FCC 경매 설계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 세계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가장 효율적인 경매 방식을 설계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 노벨상 3관왕 멘토 : 로버트 윌슨은 2012년 노벨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Alvin Roth, '매칭 이론'의 대가]의 박사 과정 지도교수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제자 두 명[밀그롬, 로스]을 노벨상 수상자로 길러낸 '킹메이커'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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