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은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가장 거대한 두 가지 질문에 답하려 평생을 바친 두 명의 경제학자에게 돌아갔습니다.
한 명은 윌리엄 노드하우스 [William Nordhaus]. 그는 "우리의 경제 성장이 지구를 불태우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외면하던 경제학계에 기후 변화라는 재앙의 비용을 계산할 수 있는 도구를 쥐여준 선구자입니다.
다른 한 명은 폴 로머 [Paul Romer]. 그는 "경제 성장은 언젠가 멈출 것"이라는 비관론에 맞서, 아이디어와 기술 혁신이야말로 고갈되지 않는 성장의 진정한 엔진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해낸 천재입니다.
이 두 사람의 연구는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각자의 길을 걸어왔지만, 놀랍게도 하나의 지점에서 만납니다. 바로 지속 가능한 장기 성장이라는 인류의 숙제입니다. 노드하우스가 성장의 비용 [Cost]을 파헤쳤다면, 로머는 성장의 동력 [Driver]을 규명했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경제학이 더 이상 교실 안의 낡은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과 미래를 다루는 학문임을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 '성장'은 어디서 오는가?: 솔로우의 거대한 질문
2018년의 두 수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20세기 중반의 경제학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당시 경제학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장기적인 성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였습니다.
1950년대, 이 질문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은 훗날 노벨상 수상자 [1987년]가 되는 로버트 솔로우 [Robert Solow]였습니다. 그는 '솔로우 성장 모형'이라는 아름다운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 "성장은 노동 [일하는 사람]과 자본 [기계, 공장]을 투입하면 이루어진다."
하지만 솔로우가 실제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노동과 자본만으로는 미국의 폭발적인 성장을 도저히 다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동과 자본을 제외하고도 성장을 이끄는 무언가가 남아있었습니다. 솔로우는 이것의 정체를 몰랐기에, 그저 '기술 진보'라고 이름 붙이고 솔로우 잔차 [Solow Residual]라고 불렀습니다.
이 '기술 진보'는 솔로우 모형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Exogenous] 요술 방망이와도 같았습니다. 경제학은 수십 년간 "경제 성장의 8할은 기술 진보 덕분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기술 진보가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거대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폴 로머는 바로 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요술 방망이의 정체를 파헤쳤습니다.
💡 폴 로머: 아이디어는 '공짜 점심'이 아니다 (내생적 성장이론)
폴 로머는 1980년대, "기술 진보는 공짜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이다"라고 선언하며 내생적 성장이론 [Endogenous Growth Theory]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의 천재성은 아이디어 [Idea]라는 자본이 우리가 알던 물리적 자본 [기계, 공장]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를 수학적으로 증명해낸 데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비경합재'이다
기존의 경제학은 수확 체감의 법칙 [Law of Diminishing Returns]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에 갇혀 있었습니다. 공장에 기계를 100대, 200대 계속 추가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계 한 대가 만들어내는 이익이 줄어들어 결국 성장이 멈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로머는 아이디어는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 경합재 (Rival Good): 제가 샌드위치를 먹어버리면, 다른 사람은 그 샌드위치를 먹을 수 없습니다. [물리적 자본]
- 비경합재 (Non-rival Good): 제가 '새로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라는 아이디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수백만 명의 개발자가 그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디어는 1명이 쓸 때보다 100만 명이 쓸 때 그 가치가 더 커집니다. 아이디어는 '수확 체감'이 아니라 수확 체증 [Increasing Returns]의 법칙을 따릅니다!
특허와 독점: 성장을 위한 '필요악'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아이디어를 만들까요?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로머는 여기에 '부분적 배제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만약 위대한 아이디어를 만드는 순간 모든 사람이 공짜로 쓸 수 있다면, 누가 막대한 돈과 시간을 들여 연구개발 [R&D]에 투자할까요? 아무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는 '특허'나 '저작권'이라는 제도를 통해 일정 기간 아이디어에 대한 독점적 이윤을 보장해줍니다. 이 독점은 기존 경제학에서는 시장을 왜곡하는 나쁜 것으로만 여겨졌지만, 로머는 이것이 혁신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임을 증명했습니다.
결국, 폴 로머는 '기술 진보'가 더 이상 하늘만 바라보는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R&D 투자, 교육 [인적 자본], 그리고 특허 제도라는 경제 시스템 안의 내생적 활동임을 밝혔습니다. 그의 이론 덕분에 "왜 어떤 나라는 계속 혁신하고, 어떤 나라는 뒤처지는가?"에 대한 명쾌한 정책적 해답 [R&D에 투자하라!]을 얻게 되었습니다.
🌍 윌리엄 노드하우스: '기후 재앙'에 가격표를 붙이다
폴 로머가 성장의 엔진을 연구할 때,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그 엔진이 내뿜는 매연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노드하우스는 1970년대 중반, 오일 쇼크가 터졌을 때부터 "우리가 지금 쓰는 화석 연료가 언젠가 지구의 기온을 치명적으로 올려놓을 것"이라고 경고한, 경제학계의 최초의 기후 예언자였습니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그건 환경 과학자들이나 할 일"이라며 그의 연구를 무시했습니다. 경제 성장은 '좋은 것'이고, 환경오염은 그저 '사소한 부작용' 정도로 취급받던 시절이었습니다.
'DICE' 모형: 경제와 기후의 연결고리
노드하우스는 경제학과 기후 과학이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DICE 모형 [Dynamic Integrated Climate-Economy model]입니다.
이 통합 평가 모델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시도했습니다.
- 경제 활동 → 기후 변화: 우리가 GDP를 성장시키기 위해 석유와 석탄을 태우면 [경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얼마나 올라가고 [과학], 그 결과 지구 평균 기온이 몇 도나 오르는가 [기후]?
- 기후 변화 → 경제 피해: 그렇게 오른 기온이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농작물을 죽이며, 태풍을 강력하게 만들어 [기후], 우리 경제에 얼마나 많은 [조 달러 단위]의 피해를 입히는가 [경제]?
그는 기후 재앙이라는 막연한 공포를, 경제학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숫자와 비용으로 번역해낸 것입니다.
인류를 구할 유일한 정책: '탄소세'
DICE 모형을 통해 노드하우스가 내린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파국이다."
시장에 그냥 내버려 두면 [자유방임], 인류는 경제 성장의 달콤함에 취해 지구를 불태우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탄소를 배출하는 공장이나 개인은, 자신이 일으키는 '지구 전체의 피해'에 대해서는 단 1원도 지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부효과의 비극]
노드하우스가 제시한 해법은 강력하고 명쾌했습니다.
"재앙을 막고 싶다면, 그 재앙에 가격을 매겨라."
이것이 바로 탄소세 [Carbon Tax]입니다. 이산화탄소 1톤을 배출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미래의 피해 비용을 세금으로 내게 하는 것입니다.
탄소세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세금을 내는 것보다 차라리 친환경 기술 [태양광, 풍력]을 개발하는 것이 더 싸다는 경제적 유인을 갖게 됩니다. 노드하우스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스스로 기후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가장 효율적인 정책을 제시한 것입니다.
🏆 거시경제학의 두 개의 거대한 빈틈을 메우다
2018년 노벨위원회가 왜 이 두 사람을 함께 호명했는지 이제 분명해집니다.
"장기 거시경제 분석에 기후 변화 [노드하우스]와 기술 혁신 [로머]을 통합한 공로"
이 둘은 장기 성장이라는 거대한 그림에서 빠져 있던 가장 중요한 두 조각을 찾아냈습니다.
- 폴 로머는 '아이디어'라는 무한한 자원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계속 성장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기후 변화'라는 유한한 지구의 한계를 통해 인류가 어떻게 성장을 통제해야 하는지 그 책임감을 부여했습니다.
로머가 성장의 가속 페달을 설명했다면, 노드하우스는 브레이크와 핸들의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이 두 사람의 연구 덕분에,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은 공허한 구호가 아닌, 엄밀한 경제학의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합니다.
🧐 '아이디어'와 '기후' TMI
- 경제학자 집안 (노드하우스):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경제학계의 '로열패밀리' 출신입니다. 그의 삼촌은 바로 현대 경제학의 교과서를 쓴 '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 [197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입니다.
- 세계은행과의 갈등 (로머): 폴 로머는 2016년 세계은행 [World Bank]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임명되었지만, 조직 내부의 관료주의와 데이터 보고 방식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다가 15개월 만에 사임했습니다. 그의 직설적이고 타협 없는 스타일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 '차터 시티'라는 급진적 실험: 로머는 성장의 '제도'와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발전이 더딘 국가의 일부 영토를 선진국의 법과 제도로 운영하는 특별 도시, 즉 '차터 시티' [Charter City]를 만들자"는 매우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 40년의 외로운 연구 (노드하우스): 노드하우스가 '탄소세'와 '기후 변화의 경제학'을 처음 주장한 것은 1970년대였습니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동료 경제학자들로부터 "경제학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비판과 무시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의 노벨상 수상은 기나긴 외로운 연구가 마침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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