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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5_노벨화학상

[1938 노벨화학상] 리하르트 쿤 : 자연의 색소와 비타민의 구조를 밝히다, 그러나 나치에 의해 거부된 영광

by 어셈블러 202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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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근은 왜 주황색이고, 비타민은 어떻게 생겼나?

 

우리가 시장에서 보는 싱싱한 당근의 주황색, 가을날 붉게 물드는 단풍, 그리고 달걀노른자의 진한 노란색. 자연은 이토록 화려한 색깔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화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색깔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영양소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20세기 초반, 과학자들은 '비타민(Vitamin)' 이라는 물질이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었습니다. "비타민 B가 부족하면 각기병에 걸린다는데, 도대체 비타민 B는 어떻게 생긴 분자야? 색깔은 있나? 무게는 얼마인가?"

오늘 소개할 193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이 보이지 않던 영양소의 얼굴을 세상에 드러낸 독일의 화학자입니다.

식물이 가진 천연 색소인 '카로티노이드(Carotenoid)' 를 분리해 내고, 우유 5톤을 끓여 '비타민 B2' 의 구조를 밝혀낸 유기화학의 대가 리하르트 쿤(Richard Kuhn).

하지만 그는 과학자로서 최고의 영광인 노벨상을 목전에 두고도, "상을 받지 마라"는 히틀러의 명령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수상을 거부해야 했던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자연의 색채 뒤에 숨겨진 화학적 질서, 그리고 광기의 시대에 휘말린 과학자의 운명을 따라가 봅니다.

 

📜 크로마토그래피의 마법 : 색소를 분리하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리하르트 쿤은 어릴 때부터 화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뮌헨 대학에서 1915년 노벨상 수상자인 리하르트 빌슈테터의 제자가 되어 효소와 당(Sugar)을 연구했습니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카로티노이드' 였습니다. 카로티노이드는 식물에 들어있는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 색소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입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당근의 색소인 '카로틴'이 단일 물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쿤은 의심했습니다. "색깔이 미묘하게 다르다. 분명 여러 가지가 섞여 있을 것이다."

그는 식물 러시아의 식물학자 미하일 츠베트가 발명했지만 잊혀 가던 기술인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 를 부활시켰습니다.

[ 쿤의 실험 ]

  1. 유리관에 석회 가루나 산화알루미늄 가루를 채운다.
  2. 당근에서 추출한 색소 용액을 위에서 붓는다.
  3. 용매를 계속 흘려보내면, 색소 성분마다 가루에 달라붙는 힘이 달라서 내려가는 속도가 달라진다.
  4. 결과적으로 색깔 띠가 무지개처럼 분리된다!

쿤은 이 방법을 통해 카로틴이 하나가 아니라 알파(α), 베타(β), 감마(γ)-카로틴이라는 세 가지 물질의 혼합물임을 밝혀냈습니다.

이것은 혁명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섞여 있는 물질을 분리하려면 끓이거나 결정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냥 관에 통과시키기만 하면 순수한 물질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우유 5,300리터의 집념 : 비타민 B2를 찾아서

 

카로티노이드를 정복한 쿤의 다음 목표는 '비타민' 이었습니다. 당시 비타민 B 복합체는 수용성이라 물에 잘 녹지만 분리하기가 극도로 어려웠습니다. 특히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비타민 B2(리보플라빈)' 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비타민 B2는 우유나 계란 흰자에 들어있는 노란색 물질입니다. 쿤은 생각했습니다. "구조를 알려면 순수한 결정을 얻어야 해. 그러려면 엄청난 양의 우유가 필요하다."

그는 무려 5,300리터의 탈지유(Skim milk) 를 공수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가마솥에 우유를 붓고 끓이고, 거르고, 농축하는 지루한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5,300리터의 우유가 다 사라지고 남은 것은, 고작 1g의 주황색 바늘 모양 결정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수한 '리보플라빈(Riboflavin)' 이었습니다.

"보라! 이것이 생장의 노란색이다. 우리는 이제 비타민을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쿤은 이 1g의 결정을 분석하여 리보플라빈의 정확한 화학 구조를 그려냈고, 더 나아가 1935년에는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이제 우유 수천 리터가 없어도 공장에서 비타민제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비타민 B6의 발견 : 퍼즐을 완성하다

 

쿤의 연구실은 비타민 공장과도 같았습니다. 그는 B2에 이어 '비타민 B6(피리독신)' 의 분리에도 도전했습니다.

비타민 B6는 피부염을 예방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1938년, 쿤은 효모 추출물에서 비타민 B6를 순수하게 분리하고 그 구조를 밝혀냈습니다.

그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비타민 B가 단일 물질이 아니라 B1, B2, B6, B12 등 다양한 물질의 집합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1937년 수상자인 파울 카러와 경쟁하며 카로티노이드가 우리 몸속에서 비타민 A로 변한다는 사실도 화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색깔 있는 것을 먹어야 건강하다"는 막연한 속설이, 쿤의 비커 속에서 완벽한 화학식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 노벨상 : 히틀러의 분노와 거부된 상

 

1938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리하르트 쿤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합니다. 수상 이유는 "카로티노이드와 비타민류에 대한 연구 공로" 였습니다.

하지만 쿤에게 날아온 것은 축전이 아니라 나치 정부의 협박장이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노벨 위원회는 나치에 저항하다 수용소에 갇힌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 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이에 격분한 히틀러는 "앞으로 모든 독일인은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 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쿤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게슈타포가 그를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스웨덴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독일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이 상을 받을 수 없음을 통보합니다."

그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였던 게르하르트 도마크(1939년)와 쿤의 동료 아돌프 부테난트(1939년 화학상) 역시 똑같이 수상을 강제로 거부당했습니다. 과학의 영광이 정치의 광기에 짓밟힌 비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 TMI : 전쟁 후의 명예 회복

 

1. 11년 만에 받은 메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가 패망한 뒤인 1949년, 리하르트 쿤은 드디어 스톡홀름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노벨 재단은 그에게 1938년에 주지 못했던 금메달과 상장을 수여했습니다. 하지만 규정상 상금은 시효가 지나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명예를 되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2. 나치 부역 논란

쿤은 나치 치하에서 연구소장직을 유지하며 전쟁 관련 연구(신경가스 등)에 협력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대인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는 전범 재판에는 회부되지 않았지만, 그의 과학적 업적과 별개로 도덕적 평가는 엇갈리는 인물입니다.

3. 현대 영양학의 아버지

그의 도덕적 논란과는 별개로, 우리가 매일 먹는 종합 비타민제나 영양 강화 식품은 쿤의 연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식품 포장지에 적힌 '리보플라빈', '피리독신' 같은 이름들이 바로 그가 세상에 알린 단어들입니다.

 

🌏 맺음말 : 색깔 속에 담긴 생명의 에너지

 

리하르트 쿤은 자연이 칠해놓은 아름다운 색깔들이 단순한 물감이 아니라, 생명을 지탱하는 정교한 화학 물질임을 밝혀냈습니다.

당근의 주황색이 우리 눈을 밝게 하고, 우유의 노란색이 우리 몸을 자라게 한다는 사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색채와 입으로 먹는 영양소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발견은 생화학의 가장 아름다운 장 중 하나입니다.

비록 시대의 어둠이 그의 영광을 잠시 가렸을지라도, 그가 밝혀낸 비타민의 빛은 여전히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등불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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