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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5_노벨화학상

[1951 노벨화학상] 에드윈 맥밀런 & 글렌 시보그 : 우라늄의 벽을 넘다, '초우라늄 원소'와 새로운 주기율표

by 어셈블러 2025.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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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끝은 어디인가?

 

오랫동안 화학자들은 '우라늄(Uranium, 원자번호 92번)' 이 우주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라고 믿었습니다. 주기율표는 1번 수소에서 시작해 92번 우라늄에서 끝나는, 닫힌 세계였습니다.

"92번보다 더 무거운 원소는 없을까?" "신이 만들지 않았다면, 인간이 만들 수는 없을까?"

이 금단의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거대한 기계인 '사이클로트론(입자 가속기)' 을 이용해 우라늄에 중성자를 대포처럼 쏘아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라늄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1938년 오토 한이 발견했듯이, 우라늄은 중성자를 맞으면 반으로 쪼개져 버리기(핵분열) 일쑤였습니다. 새로운 원소가 생기는 게 아니라, 부서진 조각들만 나왔죠.

그런데 그 부서진 조각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끈질기게 살아남아 92번의 벽을 넘어선 '93번''94번' 원소를 찾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195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자연계에 없던 원소를 연금술처럼 창조해 낸 현대의 마법사들입니다.

우라늄 너머의 첫 번째 발자국, 93번 넵튬을 발견한 미국의 물리학자 에드윈 맥밀런(Edwin M. McMillan). 그리고 그 바통을 이어받아 94번 플루토늄을 발견하고 주기율표를 뜯어고친 화학자 글렌 시보그(Glenn T. Seaborg).

이들이 열어젖힌 '초우라늄(Transuranium)' 의 시대는 인류에게 원자력이라는 거대한 에너지와, 100개가 넘는 원소들로 채워진 새로운 주기율표를 선물했습니다.

 

📜 에드윈 맥밀런 : 사라지지 않는 물질, '93번'을 찾다

 

이야기의 시작은 1940년 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C Berkeley)입니다. 이곳에는 어니스트 로렌스(193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만든 거대한 입자 가속기가 있었습니다.

물리학자 에드윈 맥밀런은 이 가속기로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상식대로라면 우라늄은 쪼개져서 가벼운 원소(바륨 등)가 되어 멀리 튀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맥밀런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파편은 멀리 튀어 나갔지만, 어떤 방사성 물질 하나가 우라늄 표적 깊숙이 박혀서 도망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녀석은 튀어 나간 게 아니야. 우라늄이 중성자를 꿀꺽 삼키고 무거워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은 거야!"

맥밀런은 화학자 필립 아벨슨과 함께 이 물질을 분석했습니다. 이 물질은 우라늄(92번)보다 양성자가 하나 더 많은, 원자번호 93번의 성질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태양계의 행성 이름을 따서 92번 우라늄(Uranus, 천왕성) 다음인 이 원소를 '넵튬(Neptunium, 해왕성)'이라고 부르겠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견된 '인공 원소' 였습니다. 자연이 그어놓은 92번의 한계선이 인간의 손에 의해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 글렌 시보그 : 주기율표를 다시 그리다

 

맥밀런은 93번을 발견한 직후,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연구(레이더 개발)를 위해 MIT로 급히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떠나면서 동료인 젊은 화학자 글렌 시보그에게 연구를 넘겼습니다.

"글렌, 93번이 붕괴하면 분명 94번이 나올 거야. 자네가 찾아보게."

시보그는 맥밀런의 예언대로 1941년, 94번 원소인 '플루토늄(Plutonium)' 을 발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1941년 포스트에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시보그의 진짜 위대한 업적은 원소 발견 그 자체보다, '주기율표를 재정립' 한 데에 있습니다.

 

🧩 악티늄족(Actinide Series)의 제안

 

당시 주기율표는 지금과 모양이 달랐습니다. 과학자들은 93번, 94번 원소를 전이 금속(Transitional metal) 더미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 했습니다. 넵튬은 레늄 밑에, 플루토늄은 오스뮴 밑에 두는 식이었죠. 하지만 화학적 성질이 영 맞지 않았습니다.

시보그는 과감한 가설을 세웁니다.

"이 녀석들은 전이 금속이 아니다. 란타넘족(희토류)처럼 별도의 그룹으로 묶어서 주기율표 아래쪽에 따로 빼내야 한다!"

그는 89번 악티늄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줄, 즉 '악티늄족(Actinide series)' 을 제안했습니다.

당시 원로 화학자들은 "멀쩡한 주기율표를 망치려 드느냐"며 펄쩍 뛰었습니다. 동료들은 "글렌, 그 논문 내면 자네 과학 인생 끝날 거야"라며 말렸습니다. 하지만 시보그는 "내 과학 인생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 잃을 게 없다"며 배짱 좋게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결과는 시보그의 승리였습니다. 그가 제안한 대로 원소를 배열하자, 모든 화학적 성질이 퍼즐처럼 딱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는 주기율표의 그 독특한 모양(밑에 두 줄이 따로 있는 형태)은 시보그의 통찰력 덕분에 완성된 것입니다.

 

⚡️ 새로운 원소의 홍수

 

시보그의 '악티늄족 이론'은 보물지도가 되었습니다. "이 이론대로라면 95번, 96번도 존재할 것이고, 그 성질은 이럴 것이다"라는 예측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시보그와 연구팀은 이 지도를 따라 미지의 원소들을 낚시하듯 건져 올렸습니다.

  • 95번 아메리슘 (Americium): 미국(America)의 이름을 따서.
  • 96번 퀴륨 (Curium): 퀴리 부부를 기리며.
  • 97번 버클륨 (Berkelium): 버클리 대학을 기리며.
  • 98번 캘리포늄 (Californium): 캘리포니아주를 기리며.

그는 무려 10개의 초우라늄 원소를 발견했고, 인류의 물질 목록을 풍성하게 채웠습니다.

 

🏆 노벨상 : 연금술사의 영광

 

1951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에드윈 맥밀런과 글렌 시보그에게 노벨 화학상을 수여합니다. 수상 이유는 "초우라늄 원소의 화학적 발견" 이었습니다.

이들의 수상은 단순히 새로운 물질을 찾았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1. 물질의 확장: 우주의 물질이 92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노력하면 더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2. 원자력 시대: 플루토늄의 발견은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이라는 거대한 에너지원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3. 의학적 활용: 훗날 발견된 초우라늄 원소들(아메리슘 등)은 화재 경보기나 암 치료 등 다양한 곳에 쓰이게 되었습니다.

 

📚 TMI : 노벨상 수상자의 유머

 

1. 금을 만든 과학자?

시보그는 1980년, 실제로 납(Bi)을 원자로에 넣어 금(Au) 으로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중세 연금술사들의 꿈을 진짜로 실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들어가는 비용이 금값보다 훨씬 비싸서 "과학적 호기심 충족용"으로만 남았습니다.

2. 시보그의 키

글렌 시보그는 키가 무려 190cm가 넘는 장신이었습니다. 그는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6세에게 노벨상을 받을 때, 왕보다 키가 커서 허리를 굽히느라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는 나중에 스웨덴 왕실 만찬에서 "왕보다 키가 커서 죄송합니다"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3. 살아있는 전설

시보그는 106번 원소 '시보늄(Sg)' 에 자신의 이름이 붙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보통 원소 이름은 죽은 위인의 이름을 따는데,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은 그가 역사상 최초였습니다. 그는 "노벨상보다 이게 더 좋다"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고 합니다.

 

🌏 맺음말 : 지도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에드윈 맥밀런과 글렌 시보그는 '여기가 끝이다' 라고 여겨지던 경계선(우라늄)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 선을 넘어,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대륙(초우라늄 세계)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들이 찾아낸 넵튬과 플루토늄은 주기율표의 빈칸을 채우는 것을 넘어, 인류에게 '물질을 창조하는 권능'을 쥐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연이 준 92가지 원소에 만족하지 않고, 118번 오가네손까지 이르는 거대한 주기율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확장의 역사는 1940년 버클리의 실험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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