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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5_노벨화학상

[2011 노벨화학상] 단 셰흐트만 : 불가능한 구조를 발견하다, '준결정'의 탄생

by 어셈블러 2025.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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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에 없는 물질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자연계의 고체 물질이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배웠습니다.

  1. 결정 (Crystal):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완벽하게 배열된 것. (다이아몬드, 소금)
  2. 비결정 (Amorphous): 원자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 (유리)

그리고 결정학에는 절대 깨질 수 없는 수학적 법칙이 있었습니다. "결정은 2번, 3번, 4번, 6번 대칭만 가능하다. 5번 대칭(오각형)은 불가능하다."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 타일로는 바닥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지만, 정오각형 타일로는 틈이 생겨서 바닥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수백 년 동안 과학자들에게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1982년 4월 8일 아침, 미국의 한 실험실에서 이 진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물질이 발견되었습니다. 전자 현미경 화면에는 분명히 '10각형(5번 대칭의 두 배)' 모양의 완벽한 별 모양 패턴이 찍혀 있었습니다.

"이런 물질은 존재할 수 없다. 이건 기계 고장이거나, 내가 미친 것이다."

오늘 소개할 201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전 세계 과학계의 비웃음과 왕따를 견뎌내며 자신의 발견이 옳음을 증명해 낸 뚝심의 과학자입니다.

결정도 아니고 비결정도 아닌 제3의 고체, '준결정(Quasicrystal)' 을 발견한 이스라엘의 과학자 단 셰흐트만(Dan Shechtman).

이슬람 사원의 타일 무늬 속에 숨어 있던 우주의 기하학이 어떻게 최첨단 신소재로 다시 태어났는지, 그 30년간의 투쟁기를 소개합니다.

 

📜 1982년 4월 8일의 충격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교수였던 단 셰흐트만은 안식년을 맞아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에 와 있었습니다. 그는 알루미늄과 망간을 섞은 합금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그는 합금을 급속 냉각시킨 뒤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회절 패턴을 목격합니다.

점들이 10각형 모양으로 배열된, 명백한 '5중 대칭(5-fold symmetry)' 이었습니다.

셰흐트만은 혼잣말을 했습니다. "생물체 같은 건가? (Eyn chaya kazo)" (히브리어로 '이런 동물은 없다'는 뜻의 관용구)

그는 복도를 지나가던 동료들을 붙잡고 보여주었지만,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단, 자네 교과서 다시 읽어야겠어. 결정학 기초도 모르나? 오각형 결정은 없어."

연구소장은 그에게 "자네는 우리 그룹의 수치야"라며 모욕을 주었고, 결국 그를 연구팀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는 논문을 써서 저널에 보냈지만, "흥미롭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습니다.

 

🧐 펜로즈 타일과 우주의 질서

 

셰흐트만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준주기성(Quasi-periodicity)' 이라는, 당시 과학계에는 없던 개념이었습니다.

보통의 결정은 똑같은 모양이 주기적으로 반복됩니다(Periodicity). 하지만 준결정은 규칙적이지만 반복되지 않는(Aperiodic but Ordered) 기묘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고안한 '펜로즈 타일(Penrose Tiling)' 과 똑같았습니다. 두 가지 모양의 마름모 타일만 있으면, 겹치지 않고 무한히 뻗어 나가면서도 결코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지 않는 바닥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패턴은 전체적으로 보면 5각형 대칭을 이룹니다.

셰흐트만의 발견은 "자연계가 수학적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펜로즈 타일 구조를 실제로 만들어냈다" 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 폴링과의 전쟁 : "준결정은 없다, 준과학자만 있을 뿐"

 

셰흐트만의 가장 큰 적은 당대 최고의 화학자이자 노벨상 2관왕인 라이너스 폴링(1954년 수상자)이었습니다.

폴링은 죽을 때까지 셰흐트만을 공격했습니다. "준결정(Quasicrystal) 같은 건 없다. 단지 준과학자(Quasi-scientist)들만 있을 뿐이다." 폴링은 그 현상이 '쌍정(Twinning)'이라는, 결정이 겹쳐서 생긴 착시 현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거장의 공격에 셰흐트만은 학계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셰흐트만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를 보세요. 내 실험 결과는 완벽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크고 완벽한 준결정들이 발견되었고, 엑스선 회절 분석을 통해 폴링의 주장이 틀렸음이 증명되었습니다. 1992년, 국제결정학연합(IUCr)은 마침내 '결정(Crystal)'의 정의를 바꿨습니다.

  • 과거: 원자가 3차원적으로 주기적인 배열을 하는 고체.
  • 현재: 뚜렷한 회절 패턴을 갖는 고체. (주기성이 없어도 됨!)

셰흐트만은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든 것입니다.

 

🏆 노벨상 : 왕따에서 영웅으로

 

2011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단 셰흐트만에게 노벨 화학상을 단독 수여합니다. 수상 이유는 "준결정의 발견" 이었습니다.

발견 후 무려 29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동안 그를 비웃었던 동료들은 침묵했고, 셰흐트만은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그의 발견은 고체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했습니다.

 

📚 TMI : 이슬람 예술과 프라이팬

 

1. 1,000년 전의 준결정

놀랍게도 준결정 패턴은 1,000년 전 이슬람 예술가들이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이나 이란의 모스크 벽면에 있는 '기리(Girih) 문양' 은 완벽한 5중 대칭의 준결정 패턴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수학적 직관으로 우주의 비밀을 장식에 새겨 넣었던 것입니다.

2. 준결정 프라이팬?

준결정은 독특한 성질을 가집니다. 금속임에도 전기가 잘 안 통하고, 열을 잘 전달하지 않으며, 표면이 아주 매끄럽고 단단해서 흠집이 잘 안 납니다. 이 성질을 이용해 코팅 프라이팬, 단열재, 수술용 칼, 면도날 등 다양한 응용 제품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3. 한국과의 인연

단 셰흐트만 교수는 한국을 자주 방문하며 한국 과학계와 인연이 깊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내기도 했으며, 한국의 교육열과 과학 기술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친한파 과학자입니다.

 

🌏 맺음말 : 믿음이 아닌 데이터를 믿어라

 

단 셰흐트만의 이야기는 "권위보다 진실이 강하다" 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입니다.

노벨상 2관왕인 거장(폴링)이 틀렸다고 말할 때, 모든 동료가 비웃으며 등을 돌릴 때, 셰흐트만을 지탱해 준 것은 오직 현미경 화면 속에 찍힌 '있는 그대로의 자연' 이었습니다.

"내가 본 것이 진실이다." 그의 용기 덕분에 우리는 질서와 무질서 사이, 결정과 비결정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아름다운 세계, '준결정' 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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