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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6_노벨평화상

[2023 노벨평화상] 나르게스 모하마디 : 감옥에서 울려 퍼진 "여성, 생명, 자유"

by 어셈블러 2025.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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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사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시상식. 단상 중앙에는 황금색 메달과 증서가 놓여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받아야 할 주인공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의자 위에는 수상자의 사진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뿐입니다.

그 시각, 수상자인 나르게스 모하마디 (Narges Mohammadi)는 화려한 조명이 비추는 시상식장이 아닌, 이란의 악명 높은 에빈(Evin) 교도소의 차가운 독방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노벨 평화상 역사상 구금 상태에서 상을 받은 다섯 번째 인물입니다. (독일의 카를 폰 오시에츠키, 미얀마의 아웅산수지, 중국의 류샤오보, 벨라루스의 알레스 비알리아츠키에 이은 기록입니다.)

철창 너머에서조차 멈추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는 전 세계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성, 생명, 자유 (Woman, Life, Freedom)!"

오늘의 포스트는 감옥이라는 물리적 속박조차 가둘 수 없었던, 한 여성의 불타오르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수상 이유 : 억압에 맞선 자유의 함성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나르게스 모하마디를 2023년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녀의 투쟁이 단순히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이란, 더 나아가 전 세계 여성들의 자유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란의 여성 억압에 맞서 싸우고, 모든 사람의 인권과 자유를 증진하기 위한 그녀의 투쟁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For her fight against the oppression of women in Iran and her fight to promote human rights and freedom for all."

베릿 라이스 안데르센 노벨 위원회 위원장은 선정 이유를 발표하며 이례적으로 이란어(페르시아어)로 "잔, 젠데기, 아자디 (Zan, Zendegi, Azadi)"라고 외쳤습니다. 이는 '여성, 생명, 자유'라는 뜻으로, 2022년 이란을 뒤흔든 히잡 시위의 슬로건이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그녀가 치른 대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녀의 용감한 투쟁은 엄청난 개인적 비용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란 정권은 그녀를 13번 체포하고, 5번 유죄 판결을 내렸으며, 총 31년의 징역형154대의 태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닙니다. 한 인간이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깊이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 물리학도에서 인권의 투사로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처음부터 투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2년 이란 잔잔(Zanjan)에서 태어난 그녀는 본래 물리학을 공부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 산악 동아리의 여학생, 불합리에 눈뜨다

이맘 호메이니 국제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시절, 그녀는 산악 동아리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등반에 제한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실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녀는 학교 신문에 여성 권리에 대한 글을 기고하며 학생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졸업 후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녀는 이란의 개혁파 신문들에 칼럼을 쓰며 저널리스트로서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그러다 2003년, 그녀의 인생을 바꿀 멘토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200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시린 에바디 (Shirin Ebadi) 변호사입니다.

모하마디는 에바디가 이끄는 '인권수호자센터(DHRC)'에 합류하여 부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사형 제도 반대 운동, 정치범 가족 지원, 그리고 여성에 대한 제도적 차별 철폐를 위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 "백색 고문"을 견뎌내다

이란 정권에게 눈엣가시가 된 그녀는 2011년부터 본격적인 수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겪은 가장 끔찍한 고통은 이른바 '백색 고문' (White Torture)이라 불리는 감각 박탈 고문이었습니다.

창문 하나 없는 하얀 방, 하얀 벽, 하얀 조명, 하얀 옷. 모든 외부 자극이 차단된 독방에 갇혀 있으면 인간의 정신은 서서히 무너져 내립니다. 그녀는 이 끔찍한 고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벽을 두드리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훗날 자신이 겪은, 그리고 동료 여성 수감자들이 겪은 이 끔찍한 고문의 실태를 기록하여 《화이트 고문》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기자였고, 기록자였습니다.

 

⚡️ "여성, 생명, 자유" : 감옥에서 쏘아 올린 불꽃

 

2022년 9월, 이란 전역이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 (Mahsa Amini)가 의문사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 감옥 안에서 시위를 주동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란 전역에서는 히잡을 불태우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에빈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모하마디는 바깥세상의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감옥 안뜰에서 히잡을 벗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녀는 교도소 전화기를 통해 밖으로 메시지를 내보냈고, 이는 BBC나 CNN 같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정권이 우리를 죽일 수는 있어도, 우리의 꿈까지 죽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자유를 외칠 것입니다."

교도소 측은 그녀의 전화 사용권을 박탈하고, 가족 면회를 금지하고, 지병인 심장병 약을 주지 않는 등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죄수복을 입은 채 춤을 추고 노래하는 영상을 몰래 찍어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 쌍둥이 아이들과의 이별

모하마디의 투쟁에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가족사입니다. 그녀의 남편인 타기 라흐마니 역시 유명한 정치 운동가로, 14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모하마디에게는 쌍둥이 남매 알리(Ali)와 키아나(Kiana)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그녀가 체포되면서 생이별을 해야 했고, 아이들은 결국 아빠를 따라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모하마디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지 벌써 수년이 흘렀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알리, 키아나. 엄마는 너희를 떠난 것이 아니란다. 엄마는 너희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곳이 되게 하려고, 너희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는 거야. 부디 엄마를 용서해다오."

 

🏆 빈 의자의 시상식 : 아이들이 대신 전한 목소리

 

2023년 12월 10일 오슬로. 모하마디가 없는 시상식장에는 이제 17살이 된 쌍둥이 남매 알리와 키아나가 대신 섰습니다.

 

✍️ 감옥에서 밀반출된 수상 소감

두 아이는 어머니가 감옥에서 몰래 적어 밖으로 내보낸 수상 소감을 낭독했습니다. 이 원고는 가족들의 면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방문객들을 통해 아주 작은 쪽지들에 나눠 적혀 비밀리에 밀반출된 것이었습니다.

키아나가 불어로 첫 부분을, 알리가 페르시아어로 뒷부분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나는 중동의 여성이자, 콧대 높고 반항적인 어머니로서 이 글을 씁니다. 비록 감옥의 높고 차가운 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지만, 나의 목소리와 신념은 그 벽을 넘어설 것입니다."

그녀는 연설을 통해 이란 정권의 종교적 독재와 성차별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인들에게 이란 사람들의 투쟁을 잊지 말고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란 국민들은 총알과 감옥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실과 정의는 억압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시상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기립 박수로 이 용감한 어머니와 의젓한 아이들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 TMI : 끝나지 않은 싸움과 현재 상황

 

노벨상 수상은 그녀에게 '면죄부'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시련을 가져왔습니다. 이란 정부는 노벨상 수상을 "서구의 정치적 공작"이라고 비난하며 탄압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1. 추가된 형량

수상 직후인 2024년 1월, 이란 법원은 모하마디에게 징역 15개월을 추가로 선고했습니다. 죄목은 '이슬람 체제에 대한 선전 활동'이었습니다. 그녀가 감옥 안에서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이로써 그녀의 총형량은 12년 3개월로 늘어났습니다.

 

2. 옥중 단식 투쟁

그녀는 감옥 안에서도 멈추지 않습니다. 2023년 말과 2024년 초, 그녀는 사형 집행 중단과 여성 수감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수차례 단식 투쟁을 벌였습니다. 심장 건강이 좋지 않은 그녀에게 단식은 목숨을 건 도박이지만, 그녀는 "침묵은 동의와 같다"며 숟가락을 놓았습니다.

 

3. 안젤리나 졸리와의 인터뷰

놀랍게도 그녀는 감옥에서 할리우드 배우이자 인권 운동가인 안젤리나 졸리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인터뷰는 쪽지에 적어 몰래 밖으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졸리에게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달라"고 부탁했고, 졸리는 이를 타임(TIME)지에 기고하며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 마치며 : 철창 너머의 희망

 

나르게스 모하마디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두운 독방에서 고통받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피해자'가 아닌 '승리자'로 정의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두려움은 인간을 작게 만들지만, 희망은 인간을 무한하게 만듭니다. 그들이 나를 가둘 수는 있어도, 나의 희망까지 가둘 수는 없습니다."

2023년 노벨 평화상은 단순히 한 여성에게 주어진 상이 아닙니다. 히잡을 벗어 던지고 거리로 나선 수만 명의 이란 여성들,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마흐사 아미니, 그리고 독재에 저항하는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퍼뜨리는 것. 그것이 바로 철창 속에 갇힌 그녀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응원이자, '여성, 생명, 자유'를 지키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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