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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1_[NEW] 노벨물리학상

[1912 노벨물리학상] 구스타프 달렌 : 두 눈을 잃은 채 노벨상 시상식장에 가지 못했지만, 그의 발명이 수천 명의 선원을 구했다

by 어셈블러 2026.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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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12월 10일, 스톡홀름 노벨상 시상식.

그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시상식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구스타프 달렌. 스웨덴의 발명가이자 엔지니어. 그는 그해 9월 가스 실린더 폭발 사고로 두 눈을 모두 잃었습니다.

실명 상태에서 노벨상 소식을 들은 달렌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시상식장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가 발명한 것의 의미는 충분히 컸습니다. 자동 가스 축전기와 함께 사용하는 빛에 반응하는 자동 조절 장치 — 이것이 외딴 해안의 등대와 항로 표지등에 설치되어, 선박들이 안개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게 했습니다. 수천 명의 선원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 파트 1. 달렌이라는 사람 — 실용주의 발명가

 

닐스 구스타프 달렌은 1869년 스웨덴 서부 스텐세텔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뛰어나 기계를 만지고 개량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낙농업을 하려다가, 기계에 대한 관심을 억누를 수 없어 스물네 살에 공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스웨덴 왕립 공과대학교, 스위스 취리히 공과대학교를 거쳐 뛰어난 엔지니어가 되었습니다.

1901년, 그는 스웨덴의 가스 기구 회사인 AGA에 합류했습니다. AGA는 아세틸렌 가스 관련 장치들을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달렌의 목표는 아세틸렌 가스를 이용한 등대와 항로 표지등을 실용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등대는 석유나 가스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했기에 사람이 상주해야 했습니다. 외딴 암초나 해안에 등대를 세우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달렌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당시 등대가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곳이었는지를 상상해봐야 합니다. 폭풍이 치는 외딴 암초 위의 등대. 거기서 혼자 등잔을 관리하며 몇 달씩 지내야 하는 등대지기. 물자 보급이 끊기면 굶주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달렌이 해결하려 한 것은 단순히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두 가지 핵심 발명

 

달렌의 첫 번째 핵심 발명은 아가마시나였습니다. 아세틸렌 가스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아세틸렌은 압축하면 폭발 위험이 있었습니다. 달렌은 다공질 물질인 아세톤을 채운 실린더에 아세틸렌을 용해시켜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아세틸렌 가스 저장 방식의 기원입니다.

두 번째는 솔벤트 장치였습니다. 빛에 반응하는 자동 조절 장치. 낮에는 주변이 밝으면 가스 공급을 차단하고, 밤이 되어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가스를 공급해 등대 불을 켜는 것입니다. 이 장치 덕분에 등대에 상주하는 사람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또한 그는 깜빡이는 패턴 장치도 개발했습니다. 각 등대마다 서로 다른 깜빡임 패턴을 내도록 해서 선원들이 어느 등대인지 식별할 수 있게 했습니다.

솔벤트 장치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네 개의 금속 막대가 있는데, 하나는 검은색으로 칠해져 빛을 흡수하고 나머지 셋은 반사형입니다. 낮에는 검은 막대가 더 많은 열을 받아 늘어나고, 그 움직임이 가스 밸브를 닫습니다. 밤이 되면 검은 막대가 식어 수축하고 밸브가 열립니다. 열팽창이라는 간단한 물리 현상을 이용한 기발한 장치였습니다.


 

📜 파트 2. 폭발 사고와 실명

 

1912년 9월 27일.

달렌은 동료들과 함께 아세틸렌 실린더를 테스트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실린더가 폭발했습니다.

폭발의 충격으로 달렌은 얼굴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양쪽 눈 모두 기능을 잃었습니다. 달렌은 43세에 완전히 시력을 잃었습니다.

불과 3개월 뒤, 노벨위원회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191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렌은 병원 침대에서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상 연설은 스웨덴 대표가 대신 읽었습니다. 시상식 참석은 불가능했습니다.

이 장면을 생각해봅니다. 평생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며 발명을 해온 엔지니어가 시력을 잃은 것입니다. 발명가에게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의 방식 전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설계도를 볼 수 없고, 도면을 그릴 수 없고, 완성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달렌이 실명 후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시력을 잃고 더 열심히 일했다

 

놀라운 것은 실명 이후의 달렌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회복 기간을 거친 후, AGA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시각 장애인 상태에서 계속 발명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손끝의 감각, 청각, 그리고 놀라운 공간적 기억력으로 그는 엔지니어링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AGA의 기술 이사를 맡았고, 그 이후로도 수십 개의 특허를 더 등록했습니다.

부인이 처음에 그가 실명 후 우울증에 빠질 것을 걱정했지만, 달렌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기차게 일했다고 전해집니다.

달렌이 실명 후에 개발한 발명 중에는 AGA 쿠커도 있습니다. 가정용 조리 및 난방 장치로, 달렌이 자신이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아내가 조리할 때의 불편함을 관찰하고 설계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볼 수 없는 사람이 보는 사람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장치를 만든 것입니다.

AGA 쿠커는 오늘날도 영국과 스웨덴에서 인기 있는 고급 조리 기기입니다. 달렌의 발명이 1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부엌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 파트 3. 1912년 노벨 물리학상 — 논란

 

달렌의 노벨 물리학상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노벨상 수상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의 발명은 분명히 실용적으로 중요했습니다. 자동화된 등대 시스템은 수많은 선박 사고를 예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물리학의 기초 연구 공헌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해 다른 유력 수상 후보들에는 헨리 푸앵카레, 마리 퀴리, 어니스트 러더퍼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현대 물리학의 근본을 바꾼 연구를 했습니다.

왜 달렌이 수상했는가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있습니다. 한 가지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당시 노벨위원회가 실용적 발명에도 가치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노벨상을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알프레드 노벨 자신이 발명가였고, 그의 유언에는 인류에 가장 많은 혜택을 준 것에 상을 준다고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물론, 달렌이 폭발 사고로 두 눈을 잃은 직후였다는 점도 위원회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노벨의 유언과 물리학상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은 물리학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에게"

 

 

발견과 함께 발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달렌의 수상이 유언의 문구에는 맞았습니다. 하지만 물리학 공동체가 노벨 물리학상에 기대하는 것 — 자연의 심층 원리를 밝히는 발견 — 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 논란은 노벨상이 무엇을 위한 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순수 과학의 상인가, 인류에게 이로운 것에 대한 상인가? 달렌의 수상은 이 긴장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사례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왜 그해 받지 못했는가

 

1912년은 아인슈타인이 이미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 7년이 지난 해였습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의 이론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노벨상은 달렌에게 갔을까요?

노벨위원회는 이론 물리학에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특히 실험으로 확인되지 않은 이론에는 신중했습니다. 상대성이론은 1912년 당시 아직 실험적으로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1919년 일식 관측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이 확인된 뒤에야 아인슈타인은 노벨상 후보로 진지하게 거론되기 시작했고, 1921년에 광전 효과 — 비교적 실용적이고 실험적으로 확실한 발견 — 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912년에 달렌이 아인슈타인 대신 노벨상을 받은 것은 당시 노벨위원회의 평가 기준을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론보다는 검증된 실용적 발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 파트 4. 자동 등대의 세계 — 바다를 바꾼 발명

 

달렌의 자동 등대 시스템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이해하려면, 그 이전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등대지기의 삶

 

등대지기는 역사상 가장 고독한 직업 중 하나였습니다. 외딴 암초나 곶에 세워진 등대에서, 물자 보급은 몇 주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했습니다. 폭풍이 치면 몇 달간 배가 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등대불을 끄지 않는 것이 최우선 임무였습니다. 불이 꺼지면 항로를 잃은 배가 암초에 부딪혀 침몰할 수 있었습니다. 병이 나도, 폭풍이 와도, 식량이 떨어져도 — 등대불만은 꺼뜨릴 수 없었습니다.

이 가혹한 환경 때문에 많은 외딴 암초와 위험한 항로에는 등대를 세우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사람이 상주할 수 없는 곳에는 등대를 세울 수 없었으니까요.

달렌의 자동 등대 시스템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사람 없이도 밤이면 자동으로 켜지고, 낮이면 꺼지며, 각 등대마다 고유한 패턴으로 깜빡이는 등대. 가스 실린더만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면 되는 장치.

이것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외딴 암초에도 등대를 세울 수 있게 했습니다. 이전에는 표시할 수 없었던 위험 지점들이 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항로가 더 안전해졌습니다.

 

달렌의 시스템이 퍼져나가다

 

달렌의 자동 등대 시스템은 스웨덴에서 시작해 빠르게 세계로 퍼졌습니다. 북유럽의 험한 해안선, 영국의 안개 짙은 해협, 북아메리카의 긴 해안선 — 달렌의 장치들이 설치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외딴 암초와 위험한 해안에 자동 등대가 세워지면서, 선박 사고 통계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달렌의 특허 하나가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각지 해안에서 밤마다 깜빡이는 등대들. 그것들이 모두 달렌의 원리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전기와 전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정교한 시스템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자동 등대라는 개념, 즉 사람 없이 스스로 켜지고 꺼지는 항로 표지라는 개념은 달렌이 처음 실용화했습니다.


 

📜 파트 5. 빛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빛을 만든다는 것

 

달렌의 이야기에서 가장 묘한 부분은 아이러니입니다.

그는 자동으로 빛을 켜고 끄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치를 완성한 뒤 자신은 빛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실명한 뒤에도 그는 계속 발명을 했습니다. 볼 수 없는 손으로 도면을 만지고, 볼 수 없는 귀로 기계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만든 것들은 그가 볼 수 없는 밤의 바다를 밝혔습니다.

이 아이러니는 단순한 감동적 서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집요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멈춥니다. 달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시각 대신 촉각과 청각과 기억으로, 그는 계속 발명했습니다.

달렌의 이야기는 또한 무엇이 과학적 기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교과서에 이름이 남는 발견이어야 과학적 기여인가, 아니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도 과학적 기여인가?

달렌의 솔벤트 장치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용한 열팽창 원리는 고등학교 물리학에서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원리를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정확하게 적용한 사람이 달렌이었습니다.

 

달렌이 남긴 질문

 

달렌의 노벨상은 지금도 물리학상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수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수상이었다는 시각도 있고, 노벨의 원래 의도에 가장 충실한 수상이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달렌의 발명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발명 중 상당 부분을, 그는 두 눈을 잃은 채로 계속 개선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달렌의 이야기는 기억할 가치가 있습니다.


 

📜 파트 6. 마무리 — 실명한 발명가, 어둠 속의 등대

 

달렌은 1937년 6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을 때까지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것들은 그가 볼 수 없는 밤의 바다를 밝혔습니다.

자동 점등되는 등대. 위험한 암초를 알리는 부표. 선원들이 항로를 잃지 않도록 해주는 깜빡이는 빛. 달렌이 눈을 잃기 전에 만들었고, 눈을 잃은 후에도 계속 개량한 그 장치들이 세계 각지의 해안에서 오늘도 작동합니다.

아이러니합니다. 빛을 볼 수 없게 된 사람이, 빛을 만드는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노벨상의 의미를 생각할 때, 달렌의 이야기는 복잡한 질문을 던집니다. 과학의 가치는 기초 이론에만 있는가, 아니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실용적 발명에도 있는가?

달렌의 답은 그의 삶으로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는 두 눈을 잃고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일이 어둠 속의 선원들에게 빛을 주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볼 수 없게 된 후에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순수한 형태의 발명 정신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볼 수 없는 곳의 사람들을 위해 빛을 만드는 것.

 

 

"나는 눈이 없어도 일할 수 있다. 내 손이 기억하고, 내 귀가 듣고, 내 머리가 그린다."

 

 

달렌이 남긴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삶이 보여준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세계 각지의 어두운 해안에서 밤마다 깜빡이는 불빛들. 그 불빛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배들이 안전하게 항구로 들어옵니다. 그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달렌의 이름을 모르지만,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것은 달렌이 두 눈을 잃은 채로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파트 7. 아세틸렌의 물리학 — 달렌 발명의 과학적 기반

 

달렌의 발명이 단순한 공학적 트릭이 아니라, 물리학과 화학의 원리를 정교하게 응용한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세틸렌과 폭발의 물리학

 

아세틸렌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연료 기체입니다. 같은 부피의 연료 중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는 것 중 하나입니다. 등대 연료로 이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불안정성이었습니다. 아세틸렌은 순수한 상태로 1기압 이상으로 압축하면 폭발 위험이 있습니다. 분자 자체가 불안정해서 충격이나 열에 의해 연쇄 분해 반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렌이 해결한 것이 이 문제였습니다. 아세틸렌을 아세톤에 용해시키면 안정화됩니다. 그리고 다공질 물질 — 규조토나 석면 같은 것 — 로 가득 찬 실린더에 이 아세톤-아세틸렌 용액을 흡수시킵니다. 다공질 구조가 아세틸렌의 연쇄 분해 반응을 물리적으로 차단합니다.

이것이 아가마시나 방식의 핵심입니다. 물리적 구조로 화학적 불안정성을 통제하는 것. 오늘날 모든 아세틸렌 실린더가 이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솔벤트 장치의 열역학

 

솔벤트 장치의 원리는 열팽창입니다. 고체 물질은 온도가 올라가면 팽창하고, 내려가면 수축합니다. 이 성질을 이용합니다.

검은 막대는 빛 에너지를 흡수해 더 뜨거워집니다. 밝은 막대는 빛을 반사해 덜 뜨거워집니다. 같은 햇빛을 받아도 두 막대의 온도가 다릅니다. 그 온도 차이가 팽창량의 차이를 만들고, 그 팽창량의 차이가 밸브를 열고 닫는 것입니다.

이 메커니즘은 외부 전원도, 전자 회로도, 배터리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태양빛과 금속의 열팽창이라는 자연 현상만으로 작동합니다. 이것이 달렌 장치의 진정한 우아함입니다.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

 

깜빡이는 패턴의 정보 이론

 

달렌이 개발한 등대의 깜빡임 패턴은 일종의 코드입니다. 각 등대마다 고유한 패턴 — 예를 들어 2초 켜짐 1초 꺼짐, 또는 1초 켜짐 3초 꺼짐 등 — 을 가집니다.

이것은 원시적인 디지털 코딩입니다. 켜짐과 꺼짐의 패턴이 특정 등대의 신원을 인코딩합니다. 선원들은 그 패턴을 보고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정보를 이진 신호의 패턴으로 인코딩한다는 아이디어 — 이것은 나중에 디지털 통신의 기본 원리가 됩니다. 달렌의 깜빡이는 등대는 그 가장 단순한 형태였습니다.

 

발명가의 몸과 발명

 

달렌이 실명 후에도 발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발명이 손과 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순수 수학 이론과 달리, 달렌의 발명은 물질을 만지고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를 듣고 진동을 느끼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력을 잃은 그에게는 촉각과 청각이 더욱 예민해졌다고 합니다. 기계 부품의 질감과 무게, 작동 소리의 미세한 차이, 진동의 패턴 — 이것들로 그는 발명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판단했습니다.

발명가란 결국 자연과 직접 대화하는 사람입니다. 그 대화의 언어가 눈이 아니어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달렌이 보여주었습니다.


 

📜 파트 8. AGA라는 회사와 달렌의 유산

 

달렌이 합류한 AGA — 아크티에볼라게트 가스아쿠물라토르 — 는 달렌의 발명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달렌의 자동 등대 시스템은 전 세계 해운국들이 채택했습니다. 스웨덴 해안에서 시작된 달렌의 기술은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의 해안으로 퍼져나갔습니다. AGA는 달렌의 기술을 바탕으로 가스 기술 분야의 선도 기업이 되었습니다.

달렌이 실명 후에도 AGA의 기술 책임자로 계속 근무했다는 것은 회사가 그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줍니다. 시각 장애인 기술 책임자가 회사를 이끄는 것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대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달렌의 이 삶은 장애가 있는 사람도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초기 사례였습니다. 시대를 앞선 이야기였습니다.

 

달렌의 AGA 쿠커

 

달렌이 실명 후 개발한 발명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AGA 쿠커입니다.

이 조리 기기는 무거운 주철로 만들어진 대형 오븐으로, 한 번 달구면 지속적으로 열을 유지합니다. 별도의 불을 켜고 끄는 것 없이 항상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달렌이 아세틸렌 가스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방출하는 원리를 조리 기기에 응용한 것이었습니다.

AGA 쿠커는 영국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냉습한 영국의 주방에서 항상 따뜻하게 유지되는 이 오븐은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AGA 쿠커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지금도 영국의 많은 가정에서 AGA 쿠커를 사용합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본 설계가 거의 바뀌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발명품입니다. 달렌이 두 눈을 잃은 뒤 만든 이 쿠커가 지금도 수많은 가정의 부엌에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등대의 현대적 변화

 

달렌의 시대 이후 등대 기술은 계속 발전했습니다. 전기가 보급되면서 가스 등대는 전기 등대로 교체되었습니다. 솔벤트 장치는 광전지 센서와 전자 제어 회로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나 달렌이 도입한 핵심 아이디어 — 자동 점등, 고유한 깜빡임 패턴으로 등대 식별 — 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자동화 등대가 달렌의 방식과 다른 것은 가스 대신 전기를 쓴다는 것뿐입니다.

오늘날에는 GPS와 레이더 기술의 발전으로 등대의 역할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등대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GPS 신호가 끊기거나 레이더가 고장 났을 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항법 보조물은 여전히 등대입니다. 그 등대가 자동으로 켜지고 꺼진다는 기본 원리는 달렌이 만들었습니다.

 

달렌의 노벨상이 던진 질문의 현재적 의미

 

달렌의 노벨 물리학상은 지금도 노벨상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수상 중 하나로 거론됩니다. 하지만 그 논란 속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달렌은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자동 등대가 없었다면 사라졌을 생명들이 살아남았습니다. 과학적 기여의 가치를 논문의 질이나 이론의 깊이로만 측정한다면, 달렌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었는가로 측정한다면, 달렌은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에 남긴 말 — 인류에 가장 많은 혜택을 준 사람 — 은 이 두 기준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달렌의 수상은 그 질문을 역사 속에 남겨두었습니다.

오늘날 노벨상은 점점 기초 이론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1912년 달렌의 수상 같은 경우는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노벨의 본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 여전히 열린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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