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8년 7월 10일,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와 그의 팀은 밤을 지새웠습니다. 거대한 냉각 장치 앞에서, 그들은 헬륨 가스를 단계적으로 압축하고 팽창시키고 냉각시키며 온도를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수소, 공기, 산소, 질소 — 이미 모든 기체가 인간의 손으로 액화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단 하나, 헬륨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온도에서만 액화되는, 마지막 미정복 기체.
오전 6시 드디어 헬륨이 액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도계는 영하 269도, 즉 절대 영도인 영하 273도에서 불과 4도 위를 가리켰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차가운 곳이 레이던의 그 실험실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를링 오너스는 이 극저온 환경을 이용해 금속의 전기 저항을 측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11년, 믿기 어려운 발견을 했습니다. 수은의 온도를 영하 269도 근처로 낮추자 전기 저항이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초전도 현상의 발견이었습니다.
📜 파트 1. 냉각 경쟁 — 극저온을 향한 도전
19세기 후반, 유럽의 물리학자들과 공학자들 사이에서 기체 액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습니다.
기체를 액화하면 많은 이점이 있었습니다. 저장과 운반이 쉬워지고, 저온 환경을 만들 수 있어 물질의 새로운 성질을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극저온에서 물질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아직 거의 알려진 것이 없었습니다.
1877년 스위스 라울 피크테와 프랑스 루이 카이예테가 산소를 액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883년 폴란드 카롤 올스제프스키와 지그문트 브라운이 질소를 액화했습니다. 1898년 영국 제임스 듀어가 수소를 액화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헬륨뿐이었습니다.
헬륨은 특히 까다로웠습니다. 헬륨의 끓는점은 영하 269도, 절대 영도에서 4도 위밖에 안 됩니다. 이 온도를 달성하려면 기존보다 훨씬 정밀하고 강력한 냉각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헬륨이 까다로운 이유는 그 화학적 성질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헬륨은 비활성 기체로, 다른 원소와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주기율표 18족의 제일 위, 가장 가볍고 가장 안정된 비활성 기체. 그 안정성 때문에 극도로 낮은 온도에서만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분자 간 인력이 너무 약해서, 조금이라도 열 에너지가 있으면 기체로 유지됩니다.
당시 물리학자들이 헬륨 액화를 시도하려면, 먼저 헬륨 가스를 충분히 확보해야 했습니다. 헬륨은 지구 대기 중에 약 0.0005%밖에 없습니다. 주된 공급원은 방사성 광물이었습니다. 우라늄과 토륨이 붕괴할 때 알파 입자, 즉 헬륨 핵을 방출합니다. 이 알파 입자가 전자 두 개를 포획하면 헬륨 원자가 됩니다. 방사성 광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내뿜은 헬륨이 지각 속에 갇혀 있다가 천연가스와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카메를링 오너스는 수십 킬로그램의 헬륨 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수년을 보냈습니다.
카메를링 오너스의 집착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는 1853년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태어났습니다. 레이던 대학교 교수가 된 그는 극저온 물리학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레이던 대학교에 냉각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저온 실험 장비를 갖춘 곳이었습니다. 오너스는 이것을 혼자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수십 명의 숙련된 기술자, 조수, 학생들을 훈련시켜 정밀한 실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연구소는 단순한 실험실이 아니라 잘 짜인 기계였습니다.
오너스는 연구소 운영에 있어서도 독특했습니다. 그는 지역 직업학교의 학생들을 연구소 기술 인력으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레이던 아이들'이라고 불렸고, 정밀 측정과 냉각 장치 운영에 능숙한 전문 기술자로 성장했습니다. 오너스는 실험의 성공이 탁월한 개인 한 명이 아니라 잘 훈련된 팀에서 나온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판 데르 발스의 기체 방정식을 이론적 안내자로 삼았습니다. 판 데르 발스의 방정식으로 헬륨이 액화되는 조건을 계산하고, 그 조건을 달성하기 위한 장치를 설계했습니다. 판 데르 발스는 19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였습니다. 두 네덜란드인의 이론과 실험이 맞물린 것입니다.
1908년 7월 10일의 그 역사적인 실험. 그날 오너스의 팀은 아침부터 밤까지 냉각 장치를 운전했습니다. 헬륨 가스를 압축하고, 팽창시키고, 냉각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기체는 단계적으로 더 차가운 냉각제를 통과했습니다. 먼저 공기로, 다음은 액체 산소로, 다음은 액체 수소로 예비 냉각한 헬륨 가스를 마지막 단계에서 팽창시켰습니다.
오전 6시경, 작은 유리 용기 안에 액체 헬륨이 고였습니다. 약 60cc. 아주 작은 양이었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액체였습니다.
1908년, 그는 마침내 해냈습니다.
📜 파트 2. 초전도 현상 — 저항이 사라지다
헬륨 액화에 성공한 카메를링 오너스는 이 극저온 환경을 이용해 금속들의 전기적 성질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금속의 전기 저항이 온도가 낮아질수록 어떻게 변하는지를 놓고 논쟁 중이었습니다. 두 가지 가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온도가 낮아질수록 저항이 계속 줄어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어느 온도 이하에서는 전자들이 얼어붙어 저항이 무한대로 커진다는 것.
당시 물리학이 원자와 전자에 대해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직 불완전했습니다. 전자가 발견된 것은 1897년이었고, 금속 내에서 전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이론적 이해는 초보 수준이었습니다. 드루데 모형이 금속의 전기 전도를 설명하려 했지만, 극저온에서의 거동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카메를링 오너스는 수은을 선택했습니다. 수은은 불순물 없이 순수하게 만들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불순물이 있으면 측정이 복잡해집니다. 불순물이 저항에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수은의 또 다른 장점은 상온에서 이미 액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수은을 매우 가는 유리 모세관에 채울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가는 관에 채운 수은은 균일한 샘플이 됩니다. 이것이 측정의 재현성을 높였습니다.
1911년, 그는 수은의 온도를 낮추면서 전기 저항을 측정했습니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저항은 예상대로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약 4.2K, 즉 영하 269도 근처에 이르자 갑자기 — 저항이 완전히 0이 되었습니다.
측정 장치의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수은 속을 흐르는 전류는 저항 없이 흘렀습니다. 에너지 손실 없이 영원히 흐를 수 있었습니다.
오너스의 실험실 노트에는 이 순간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언가 전례 없는 현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즉각 알아챘습니다. 그는 처음에 이 현상을 supraconductivity, 즉 초전도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용어가 나중에 superconductivity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것이 초전도였습니다.
초전도의 의미
전기 저항이 0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의미를 가집니다.
일반적인 도체에서 전류는 저항을 만나면 에너지를 열로 잃습니다. 구리 전선도 전류를 흘리면 조금씩 뜨거워집니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도시로 전달될 때, 송전선의 저항 때문에 상당한 에너지가 열로 사라집니다. 저항이 0이라면 에너지 손실이 전혀 없습니다. 한 번 흐르기 시작한 전류는 이론적으로 영원히 흐릅니다.
이 사실은 1961년 실험으로 극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이 초전도 링에 전류를 흘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전원을 끊었습니다. 2년이 지나 측정해봤더니 전류가 여전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측정 가능한 변화가 없었습니다.
또한 초전도체는 내부에 자기장을 완전히 밀어내는 마이스너 효과를 보입니다. 이것이 자기부상의 원리입니다.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올려놓으면 자석이 공중에 떠오릅니다. 이 효과는 1933년 발터 마이스너와 로베르트 옥센펠트가 발견했습니다. 초전도가 단순히 저항 0인 도체가 아니라 자기장을 능동적으로 밀어내는 전혀 새로운 상태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오늘날 MRI 기계의 강력한 자석, 입자 가속기의 편향 자석, 자기부상 열차 — 이 모든 것이 카메를링 오너스가 1911년에 발견한 초전도 현상을 이용합니다.
MRI 장치 하나에는 강도 1.5~3테슬라의 자기장을 만드는 초전도 코일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지구 자기장의 약 10만 배에 달하는 강도입니다. 이런 강한 자기장을 일반 전자석으로 만들려면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고, 자석 자체가 과열됩니다. 초전도 코일은 액체 헬륨으로 냉각되어 저항 없이 큰 전류를 흘리고, 강한 자기장을 유지합니다.
세계 최대 입자 가속기인 CERN의 LHC — 대형 강입자 충돌기 — 는 약 2만 개의 초전도 자석을 사용합니다. 이 자석들로 양성자 빔을 광속의 99.9999991%까지 가속하고 충돌시킵니다. 이것이 없다면 힉스 보손의 발견도 없었을 것입니다.
초전도의 이해 — 왜 저항이 0이 되는가
카메를링 오너스가 초전도를 발견했을 때, 그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초전도의 미시적 메커니즘은 1957년에야 설명되었습니다. BCS 이론 — 존 바딘, 레온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 세 사람이 제안한 이론입니다. 세 사람은 197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BCS 이론에 따르면, 극저온에서 전자들은 쌍을 이룹니다. 쿠퍼 쌍이라고 불리는 이 전자 쌍은 하나의 준입자로 행동하며, 양자역학적으로 보손의 성질을 가지게 됩니다. 보손은 같은 양자 상태를 여러 개가 동시에 점유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쿠퍼 쌍이 동일한 양자 상태로 응축되면서 거시적인 양자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응축된 상태에서는 결정 격자의 진동이 전자 흐름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저항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이 거시적 스케일에서 직접 나타나는 드문 예입니다. 초전도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양자 물체입니다.
📜 파트 3. 1913년 노벨 물리학상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은 카메를링 오너스에게 수여되었습니다.
"저온에서 물질의 성질에 관한 연구, 특히 액체 헬륨 생성에 대하여"
수상 당시 그는 60세였습니다. 그는 1926년 7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레이던 연구소는 그가 사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극저온 물리학의 세계적 중심지로 남았습니다. 카메를링 오너스가 구축한 인프라와 훈련 방식이 그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오너스의 노벨상 수상 강연은 이 분야의 중요성을 웅변합니다. 그는 강연에서 극저온 물리학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물질의 근본 성질을 이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온도가 낮아질수록 열운동이 줄어들고, 물질의 양자적 성질이 전면에 드러납니다. 극저온은 양자 세계를 여는 창문이었습니다.
카메를링 오너스는 자신이 발견한 초전도 현상의 전모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은 40년 후에야 완전히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열어놓은 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00년 동안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레이던의 유산
카메를링 오너스 이후 레이던 연구소에서는 계속해서 중요한 물리학 연구들이 이루어졌습니다.
1933년, 레이던의 발터 마이스너는 마이스너 효과를 발견했습니다. 이 발견으로 초전도체가 단순히 저항 없는 도체가 아니라 자기장을 완전히 밀어내는 새로운 물질 상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레이던 연구소의 극저온 기술은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습니다. 오너스의 제자들과 연구소를 방문한 외국 과학자들이 각자 자국으로 돌아가 극저온 실험실을 세웠습니다. 극저온 물리학이 세계적 연구 분야로 확산된 것입니다.
초전도의 현대적 활용
카메를링 오너스 이후 1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초전도 현상은 여전히 물리학의 핵심 연구 주제입니다.
현재까지 초전도가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BCS 이론으로 1957년에야 설명되었습니다. 바딘, 쿠퍼, 슈리퍼 — 세 사람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그 이론입니다.
1986년, 베드노르츠와 뮐러가 약 35K의 고온에서 초전도를 보이는 구리 산화물 세라믹 소재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고온 초전도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듬해 두 사람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 후 100K이 넘는 온도에서 초전도를 보이는 물질들이 연달아 발견되었습니다. 액체 헬륨이 아닌 액체 질소로 냉각할 수 있는 온도입니다. 액체 질소는 액체 헬륨보다 훨씬 저렴하고 다루기 쉽습니다.
고온 초전도체의 발견으로 초전도의 응용 가능성이 크게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고온 초전도의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BCS 이론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이것이 현대 물리학의 가장 흥미로운 미해결 문제 중 하나입니다.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가 일어나는 고온 초전도체를 찾는 연구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상온 초전도체가 실현된다면 에너지 손실 없는 송전선, 혁명적인 컴퓨터, 소형 자기부상 교통수단이 가능해집니다.
📜 파트 4. 초전도와 양자 컴퓨터 — 미래를 여는 문
카메를링 오너스가 1911년에 발견한 초전도 현상은 현재 가장 주목받는 기술 중 하나인 양자 컴퓨터의 핵심 원리가 되었습니다.
고전 컴퓨터는 0과 1로 이루어진 비트를 사용합니다.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를 사용합니다. 큐비트는 0과 1이 동시에 중첩될 수 있으며, 여러 큐비트가 얽힘 상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양자 중첩과 얽힘을 이용해 고전 컴퓨터가 수천 년 걸릴 계산을 수분 내에 할 수 있습니다.
구글, IBM, 인텔 등 세계 주요 기술 기업들이 개발하는 초전도 방식 양자 컴퓨터는, 초전도 회로를 큐비트로 사용합니다. 이 초전도 회로는 절대 영도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 — 약 15 밀리켈빈, 즉 절대 영도보다 0.015도 위 — 에서 작동합니다. 우주 공간의 온도인 2.7K보다도 훨씬 차가운 환경입니다.
2019년 구글은 자사의 초전도 양자 컴퓨터 '시카모어'가 고전 컴퓨터로 1만 년 걸릴 계산을 200초 만에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양자 우월성의 첫 번째 시연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 카메를링 오너스의 1908년 헬륨 액화와 1911년 초전도 발견이 있습니다.
초전도 자기부상 — 달리는 양자 현상
또 하나의 극적인 응용은 자기부상 열차입니다.
일본의 마글레브 열차는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자기부상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초전도 코일에 흐르는 전류가 강한 자기장을 만들고, 이 자기장이 열차를 선로 위에 띄웁니다. 바퀴와 레일의 마찰이 없으니 이론적으로 속도의 한계가 매우 높습니다.
2015년, 일본 마글레브 시험 열차는 시속 603km의 세계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기록은 바퀴 달린 탈것의 기록을 훨씬 넘어섭니다.
그 빠른 열차가 달리는 원리의 출발점도 레이던의 냉각 연구소에 있습니다.
📜 파트 5. 마무리 — 절대 영도 직전의 세계
온도를 절대 영도 직전까지 낮추는 것.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도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극단에 접근하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영도는 이론적으로 달성할 수 없습니다. 열역학 제3법칙에 의해 절대 영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근처에 다가갈수록, 자연은 놀라운 새 얼굴을 보여줍니다. 저항이 사라지고, 자기장이 밀려나고, 물질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절대 영도에 가까워질수록 물질은 점점 더 '양자적'이 됩니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양자 현상들이 거시적 규모로 드러납니다. 초전도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액체 헬륨 자체도 절대 영도 근처에서 초유체 현상을 보입니다. 점성이 완전히 0이 되어 컵 벽을 타고 스스로 흘러오르는 기묘한 유체가 됩니다.
카메를링 오너스는 그 극단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 문 뒤에서 초전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견은 오늘날 병원과 연구소와 가속기 안에서, 그리고 양자 컴퓨터의 극저온 냉각기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소 창문으로 네덜란드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던 1908년 7월 10일 오전 6시. 그 순간이 현대 문명의 한 갈래를 열었습니다.
측정, 정밀함,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 카메를링 오너스는 이 세 가지로 우주의 극단에 닿았습니다.
📜 파트 6. 헬륨의 세계 — 초유체와 그 신비
카메를링 오너스가 헬륨을 액화한 것은 단지 초전도 연구를 위한 준비 단계가 아니었습니다. 액체 헬륨 자체가 극도로 흥미로운 물질이었습니다.
액체 헬륨을 더 냉각하면 약 2.17K — 람다 포인트라고 불리는 이 온도 — 에서 갑자기 성질이 바뀝니다. 그 아래 온도에서 헬륨은 초유체 상태가 됩니다.
초유체란 점성이 완전히 0인 액체입니다. 점성이 없다는 것은 마찰 없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초유체 헬륨은 컵에 담으면 컵 벽을 타고 스스로 올라가 밖으로 흘러나옵니다. 아주 작은 구멍이라도 있으면 막힘 없이 통과합니다. 용기에 담으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입니다.
이 현상도 양자역학으로 설명됩니다. 극저온에서 헬륨 원자들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상태로 들어가면서, 모든 원자가 동일한 양자 상태를 점유하게 됩니다. 이 응축 상태에서 헬륨은 거시적 양자 물체로 행동합니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아인슈타인은 1924~1925년에 인도의 물리학자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와의 협력으로, 특정 조건에서 입자들이 최저 에너지 상태로 한꺼번에 응축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것이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것이 실현되기 어려운 이론적 예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995년, 코넬과 위먼이 루비듐 원자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을 실현했습니다. 이들은 200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실험에서도 극저온 기술이 핵심입니다. 루비듐 원자를 나노켈빈 — 절대 영도보다 10억분의 1도 위 — 수준으로 냉각해야 합니다. 카메를링 오너스가 1908년에 열어놓은 극저온 기술의 길이, 1995년의 실험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헬륨-3과 초유체
또 하나의 흥미로운 현상은 헬륨-3의 초유체성입니다.
일반 헬륨은 헬륨-4(양성자 2, 중성자 2)입니다. 헬륨-3은 양성자 2, 중성자 1로 이루어진 동위원소입니다. 헬륨-4는 보손 입자이지만, 헬륨-3은 페르미온 입자입니다.
페르미온은 보손과 다른 규칙을 따릅니다. 같은 양자 상태를 두 개가 동시에 점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헬륨-3은 헬륨-4보다 훨씬 낮은 온도, 약 0.0025K에서야 초유체가 됩니다. 헬륨-3 원자들이 쿠퍼 쌍처럼 쌍을 이뤄 보손처럼 행동하게 되어 초유체가 됩니다.
헬륨-3의 초유체성은 1972년 더글러스 오셔로프, 데이비드 리, 로버트 리처드슨이 발견해 199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헬륨 액화라는 하나의 기술이 물리학의 여러 핵심 발견들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오너스의 유산 — 인물과 숫자
카메를링 오너스의 이름은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레이던 대학교의 카메를링 오너스 연구소. 그가 세운 냉각 연구소의 후신으로, 지금도 극저온 물리학과 초전도 연구의 세계적 중심지입니다.
초전도의 임계 온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K(켈빈)이 사용되는데, 켈빈은 오너스와 같은 시대의 물리학자 켈빈 경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오너스 자신의 이름을 딴 물리량은 없지만, 그가 사용하고 발전시킨 냉각 기술과 측정 방법은 물리학의 어어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절대 영도를 향해 다가갈수록, 자연은 점점 더 순수한 양자적 얼굴을 드러냅니다. 카메를링 오너스는 그 여정의 첫 번째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헬륨 액화, 초전도,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발견된 수많은 양자 현상들. 모두 그가 1908년 7월 10일 열어젖힌 문 뒤에 있었습니다.
극저온 물리학은 오늘날에도 최첨단 연구의 전선에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의 큐비트는 15 밀리켈빈에서 작동합니다. 중성 원자 트랩 실험에서는 나노켈빈 수준의 냉각이 이루어집니다. 레이저 냉각과 증발 냉각 기술을 조합해 원자를 절대 영도에서 100 나노켈빈 이내로 냉각합니다.
이 극한의 냉각 경쟁은 카메를링 오너스가 1908년 헬륨을 4.2K로 냉각하는 데 성공했을 때 시작된 경주의 연장선입니다. 그 경주의 목적지는 여전히 같습니다. 절대 영도에 더 가깝게, 그리고 그 극한에서 자연이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추위를 향한 집착이 세상을 가장 뜨겁게 바꾸었습니다. 카메를링 오너스의 역설적인 유산이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