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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3_[NEW] 노벨화학상

[1922 노벨화학상] 프랜시스 W. 애스턴 : 질량분광기로 원소의 숨겨진 얼굴들을 찾아내다

by 어셈블러 2026.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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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2월, 스톡홀름.

프랜시스 윌리엄 애스턴은 노벨화학상 시상대에 오르며 스스로도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가 한 일은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 원자의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계로 자연에 존재하는 수십 가지 원소들을 분석했더니, 세상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로웠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산소 원자에도 세 가지 다른 질량의 원자들이 섞여 있었고, 수소는 두 가지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위원소였습니다.

애스턴은 소디가 방사성 원소에서 이론적으로 제안한 동위원소의 존재를, 일반 원소들에서 실험적으로 직접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수 법칙 이라는 또 하나의 근본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원소의 숨겨진 얼굴들을 드러내는 도구, 질량분광기 — 이 기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는, 한 과학자의 집요한 정밀성의 추구이기도 했습니다.


 

🏆 수상 이유 — 질량분광기와 동위원소

 

 

 

"for his discovery, by means of his mass spectrograph, of isotopes, in a large number of non-radioactive elements, and for his enunciation of the whole-number rule"

 

 

노벨위원회는 두 가지를 명시했습니다. 첫째는 질량분광기를 이용한 비방사성 원소의 동위원소 발견, 둘째는 정수 법칙의 공표.

왜 '비방사성 원소'를 특별히 언급했을까요? 소디는 방사성 원소에서 동위원소를 발견했지만, 방사성이 아닌 일반 원소들도 동위원소를 가진다는 것은 아직 실험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애스턴은 네온, 염소, 황, 수소 등 일반 원소들을 분석하여 이 원소들도 동위원소를 가진다는 것을 직접 관측으로 증명했습니다.

정수 법칙이란 무엇인가 — 각 동위원소의 질량은 수소 원자 질량(양성자 질량)의 거의 정확한 정수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탄소-12는 수소의 12배, 산소-16은 16배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원자핵이 정수 개의 기본 입자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 버밍엄의 화학자 — 애스턴의 생애

 

프랜시스 윌리엄 애스턴은 1877년 9월 1일, 영국 버밍엄 근교의 할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윌리엄 애스턴은 금속 거래상이었고, 어머니 패니 샬럿 홀링스는 교사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집안은 안정된 중산층이었으며, 아이들의 교육을 중시했습니다.

애스턴은 어릴 때부터 기계 장치와 실험을 좋아했습니다. 집 뒤쪽에 간이 실험실을 만들어 혼자 화학 실험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 손재주와 기계에 대한 감각이 훗날 정밀한 질량분광기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1893년 메이슨 칼리지 (후에 버밍엄 대학교)에 입학하여 화학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잠시 맥주 양조 회사에서 발효 화학자로 일했지만, 과학 연구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1903년, 버밍엄 대학교 물리학과의 존 포인팅 교수 지도 아래 전기 방전 연구로 돌아왔고, 190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의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톰슨의 연구실에서

 

케임브리지에서 애스턴은 전자를 발견한 J.J. 톰슨의 연구실에 합류했습니다. 톰슨은 당시 음극선관 실험을 통해 원자보다 작은 입자를 탐구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양극선(Positive rays, 또는 채널 방사선) 실험 — 자기장과 전기장을 이용해 이온화된 기체를 분리하는 실험 — 에서 톰슨은 네온 기체를 분석했을 때 두 가지 다른 질량의 신호가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원자량 20, 다른 하나는 22에 해당하는 신호였습니다.

이것은 네온에 두 가지 동위원소(Ne-20, Ne-22)가 섞여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지만, 당시 톰슨의 장치로는 그것을 확실하게 분리해서 보여주기 어려웠습니다. 이 미완의 관찰이 애스턴에게 명확한 목표를 주었습니다 — 더 정밀하고 분해능이 높은 장치를 만들어 이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것.


 

⚡ 질량분광기의 탄생 — 정밀성의 예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애스턴은 곧바로 새로운 장치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군용 항공기의 직물 코팅 연구에 동원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구를 재개하는 순간이 그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질량분광기의 작동 원리

 

애스턴이 1919년 완성한 질량분광기 (mass spectrograph)는 다음과 같이 작동합니다.

  1. 분석하려는 원소를 기체 상태로 만들고, 전자 충격이나 화학 이온화로 이온화합니다.
  2. 이온화된 원자(이온)를 전기장으로 가속합니다.
  3. 가속된 이온을 자기장 속으로 통과시킵니다. 자기장 안에서 이온은 질량과 전하에 따라 다른 곡률로 휩니다. 가벼운 이온은 많이 휘고, 무거운 이온은 적게 휩니다.
  4. 사진 건판(또는 현대에는 검출기)에 이온이 도달하는 위치를 기록합니다. 서로 다른 질량의 이온은 서로 다른 위치에 선(스펙트럼)을 남깁니다.

톰슨의 기존 장치와 애스턴의 장치의 결정적인 차이는 분해능 이었습니다. 애스턴은 자기장과 전기장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질량이 조금 다른 이온들도 명확히 분리할 수 있는 더 높은 분해능을 달성했습니다.

 

네온의 비밀이 풀리다

 

1919년, 애스턴은 자신이 만든 질량분광기로 네온 기체를 분석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네온에는 두 가지 동위원소가 존재합니다. Ne-20(질량수 20, 자연 존재비 90.5%)과 Ne-22(질량수 22, 자연 존재비 9.3%)입니다. 그래서 네온의 평균 원자량이 20.18이었던 것입니다 — 두 동위원소의 존재비 가중 평균입니다.

이 발견은 소디의 동위원소 이론을 비방사성 원소에 대해 처음으로 직접 실험적으로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애스턴은 이후 체계적으로 수십 가지 원소를 분석했습니다. 염소(Cl-35, Cl-37), 황(S-32, S-33, S-34, S-36), 아르곤, 크립톤, 제논 등 많은 원소들이 동위원소 혼합물임이 밝혀졌습니다.

 

정수 법칙 — 원자핵의 비밀을 암시하다

 

각 동위원소의 질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면서, 애스턴은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동위원소의 질량은 수소 원자 질량의 거의 정확한 정수배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수 법칙 (whole-number rule)입니다.

이 법칙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모든 원자핵이 정수 개의 기본 입자(양성자와, 당시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것은 원자핵의 구조에 대한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물론 더 정밀하게 측정하면 정확히 정수는 아닙니다. 이 미묘한 차이 — 질량 결손 — 는 핵결합 에너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핵을 구성하는 입자들이 결합하면서 일부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됩니다(E=mc²). 이 현상을 발견한 것도 애스턴의 정밀한 측정 덕분이었습니다.

핵의 결합 에너지를 원자 질량으로부터 계산하는 것은 핵물리학의 핵심 개념으로, 원자로와 핵무기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세 세대의 질량분광기

 

애스턴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19년 첫 번째 질량분광기를 완성한 이후, 그는 계속해서 더 정밀한 버전을 개발했습니다.

 

제2세대 질량분광기 (1927)

 

1927년에 완성된 두 번째 질량분광기는 분해능을 10배 향상시켰습니다. 이 기계로 애스턴은 더 많은 원소들을 분석하고, 동위원소 질량을 더욱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200개 이상의 자연 동위원소를 발견하고 측정했습니다.

 

제3세대 질량분광기 (1937)

 

1937년에는 더욱 개량된 세 번째 버전을 완성했습니다. 이 기계의 분해능은 첫 번째 기계에 비해 수십 배 향상된 것이었습니다.

매우 정밀한 질량 측정이 가능해지면서, 애스턴은 정수 법칙에서의 미세한 편차 — 질량 결손 — 를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데이터는 핵결합 에너지를 계산하는 데 사용되었고, 핵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노벨상 이후에도 계속된 연구

 

애스턴은 노벨상을 받은 후에도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연구원으로 계속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질량분광학 분야에서 그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활동적인 연구자였습니다.

그는 1945년 11월 20일, 케임브리지에서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해였습니다.


 

🧐 예리한 눈의 남자 — 인간 애스턴

 

프랜시스 애스턴은 연구 외에도 다양한 취미를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스키와 골프, 자전거 여행을 즐겼으며, 특히 일식과 월식 관측을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일본, 캐나다, 노르웨이 등을 방문하여 개기일식을 직접 관찰했습니다. 그의 일식 사진들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로서의 탁월한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악기 연주에도 능했습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음악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연구 스타일에서 그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장치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는 것을 즐겼으며, 그 기계적 감각과 손재주는 질량분광기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내 손으로 만든 것만큼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태도로 실험 장비 제작에 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연구와 취미 활동에 매진했으며,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의 연구원으로 수십 년을 보내며 그곳을 자신의 집으로 여겼습니다.


 

💡 질량분광기가 바꿔놓은 세계

 

애스턴의 질량분광기는 그 자체가 분석 도구로 계속 발전하면서, 현대 과학과 산업의 핵심 장비가 되었습니다.

 

현대의 질량분석기 (Mass Spectrometer)

 

오늘날의 질량분석기는 애스턴의 원리에서 출발했지만, 훨씬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사중극자 질량분석기, 비행 시간 질량분석기, 푸리에 변환 이온 사이클로트론 공명 분석기 등 다양한 방식이 개발되었고, 이들은 의학, 환경 분석, 식품 안전, 법의학, 우주 탐사 등 수많은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의약품과 단백질 분석

 

현대 생명과학에서 질량분석기는 필수 장비입니다. 복잡한 단백질의 분자량과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하고, 의약품의 대사 경로를 추적하고, 호르몬의 미량을 측정하는 데 사용됩니다.

2002년 노벨화학상의 절반은 존 펜과 다나카 고이치에게 수여되었는데, 그들이 개발한 것도 단백질 같은 큰 생체 분자를 질량분석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애스턴의 유산이 100년 후에도 노벨상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핵무기와 핵에너지

 

동위원소 분리는 원자폭탄과 원자로의 핵심 기술입니다. 우라늄-235(핵분열 가능)와 우라늄-238(핵분열 어려움)을 분리하는 것이 핵무기 개발의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애스턴의 질량분광기는 동위원소 분리의 원리적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는 전자기 동위원소 분리기(칼루트론)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애스턴의 질량분광기를 대형화한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원리입니다.

 

지구와 우주의 역사를 읽다

 

동위원소 비율 측정은 지구와 우주의 역사를 읽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산소-18/산소-16 비율은 과거의 해수 온도 변화를 기록하고 있어, 고대 기후 변화를 재구성하는 데 사용됩니다. 납 동위원소 비율은 암석의 나이를 측정하는 방사성 연대 측정에 사용됩니다. 탄소-13/탄소-12 비율은 생명체의 광합성 경로와 탄소 순환을 추적하는 데 활용됩니다.

운석의 동위원소 조성 분석은 태양계 형성의 역사와 지구에 생명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연구하는 데 사용됩니다.

프랜시스 W. 애스턴 — 그가 집요하게 만들어낸 정밀 도구는, 세상을 이루는 원자들의 다양성을 드러내고, 우주의 역사를 읽는 창문이 되었습니다. 원소의 숨겨진 얼굴들을 찾아내는 여정이 얼마나 넓은 세계로 이어질 것인지를 그 자신도 다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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