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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1_[NEW] 노벨물리학상

[1939 노벨물리학상] 어니스트 올랜도 로렌스 :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원형 기계를 발명했다 — 사이클로트론이 열어젖힌 핵물리학과 의학의 세계

by 어셈블러 2026.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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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봄, 버클리.

어니스트 로렌스는 물리학 논문을 읽다가 생각에 잠겼습니다. 유럽의 물리학자들이 입자를 직선으로 가속하는 기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입자를 충분히 빠르게 하려면 기계가 엄청나게 길어져야 했습니다.

원이라면 어떨까?

입자를 원 궤도로 돌리면서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조금씩 가속한다면, 긴 직선 터널 없이 작은 원형 장치로도 충분히 빠른 입자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이클로트론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로렌스는 이 아이디어를 실험실로 가져갔습니다. 처음에 만든 사이클로트론의 지름은 10센티미터에 불과했습니다. 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10센티미터짜리 기계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오늘날 CERN의 대형 하드론 충돌기까지 이어졌습니다. 둘레 27킬로미터의 거대한 원형 기계로. 로렌스가 상상한 원 궤도의 원리가 90년이 지난 지금 힉스 보손을 발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 파트 1. 어니스트 로렌스 — 입자 가속기의 아버지

 

어니스트 올랜도 로렌스는 1901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의 캔턴에서 태어났습니다. 노르웨이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사우스다코타 대학교를 거쳐 미네소타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그리고 예일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습니다.

1928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27세의 젊은 교수였습니다. 버클리에서 그의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로렌스는 탁월한 물리학자인 동시에 뛰어난 조직가였습니다. 그는 개인 연구자로 실험실에 홀로 앉아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을 모으고, 자원을 동원하고, 목표를 향해 팀을 이끄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이 현대 '빅 사이언스' — 거대한 팀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대규모 과학 연구 — 의 선구자적 모습이었습니다.

1929년에 사이클로트론의 아이디어를 얻은 후, 그는 빠르게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더 크고 더 강력한 사이클로트론을 만드는 데 헌신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의 원리

 

사이클로트론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 물리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전기장은 하전 입자를 가속합니다. 전압이 걸린 두 전극 사이를 하전 입자가 통과하면 가속됩니다.

둘째, 자기장은 하전 입자를 원형 궤도로 만듭니다. 자기장과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는 하전 입자는 원형으로 돕니다. 속도가 빠를수록, 자기장이 약할수록 원의 반지름이 커집니다.

사이클로트론은 두 개의 반원형 전극 — D자 모양이라서 디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 을 마주 보게 배치합니다. 이 두 전극 사이에 교류 전기장을 걸어서, 입자가 반원을 돌아 전극 사이의 틈을 통과할 때마다 전기장으로 가속합니다.

자기장은 입자를 원형 궤도로 유지시킵니다. 입자가 빨라질수록 나선형으로 더 큰 반지름의 궤도를 그리며 바깥쪽으로 이동합니다.

로렌스의 핵심 통찰은 사이클로트론의 공진 조건이었습니다. 자기장 안에서 입자가 반원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속도와 무관하게 일정합니다. 속도가 빠르면 더 큰 반원을 돌기 때문에 시간이 같습니다. 이것이 사이클로트론이 작동할 수 있는 핵심입니다. 고정된 주파수의 교류 전기장으로 계속 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공진 조건은 광속에 가까워지면 깨집니다. 상대성이론에 따라 속도가 빠를수록 질량이 증가하고, 반원을 도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나중에 싱크로트론이 발명되었습니다. 입자가 빠르면 그에 맞게 자기장도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첫 성공부터 세계 최대까지

 

처음 10cm짜리가 성공하자 로렌스는 더 큰 것을 만들었습니다. 27cm, 69cm, 150cm. 각 단계마다 새로운 에너지 기록을 세웠습니다.

1939년에는 지름 150cm의 사이클로트론이 작동했고, 이것은 양성자를 최대 8MeV까지 가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에너지는 알파 입자나 양성자를 사용한 핵 반응 실험에 충분히 유용한 것이었습니다.

전쟁 후 로렌스는 더 큰 계획을 세웠습니다. 184인치 사이클로트론, 그리고 베바트론 — 양성자를 수 GeV까지 가속하는 기계. 베바트론에서 반양성자가 발견되었습니다. 디랙이 예언한 양성자의 반물질 파트너.

이 모든 것이 10cm짜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파트 2. 의료 응용 — 방사성 동위원소와 암 치료

 

로렌스의 사이클로트론은 순수 물리학 연구 도구였지만, 의료적 응용이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으로 가속된 입자를 안정한 원소에 충격시키면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페르미의 중성자 실험과 비슷하지만, 사이클로트론은 훨씬 다양한 에너지와 입자 종류로 실험할 수 있었습니다.

로렌스는 방사성 탄소-11, 방사성 질소-13, 방사성 산소-15, 방사성 인-32 등을 대량으로 생산했습니다. 이것들은 의학 연구와 치료에 즉각 사용되었습니다.

로렌스의 형 존 로렌스는 의사였습니다. 형제가 협력해서 방사성 동위원소의 의료 응용을 개척했습니다. 형 존이 의학적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동생 어니스트가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었습니다.

방사성 인-32가 암세포에 더 많이 흡수된다는 것을 이용해 백혈병 치료에 처음으로 응용했습니다. 방사성 나트륨을 이용해 혈액 순환을 추적했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로 갑상선 기능을 연구했습니다.

이것이 핵의학의 시작이었습니다.

 

PET 스캔의 씨앗

 

오늘날 PET 스캔에서 사용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들은 사이클로트론으로 만듭니다. 탄소-11, 질소-13, 산소-15, 플루오린-18 같은 양전자 방출 동위원소들이 PET 스캔의 핵심입니다.

전 세계 수백 개 병원에 소형 사이클로트론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사이클로트론들이 매일 방사성 의약품을 만들어 암 진단에 사용합니다.

로렌스의 사이클로트론이 없었다면 현대 핵의학이 없었을 것입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암 환자가 PET 스캔으로 진단받는데, 그 기계들의 심장에 사이클로트론의 원리가 있습니다.

 

방사선 치료

 

암 치료에서 사이클로트론으로 만든 방사선 빔을 직접 사용하기도 합니다.

양성자 치료는 사이클로트론이나 싱크로트론으로 가속한 양성자를 종양에 정밀하게 쏘는 치료입니다. 양성자는 조직을 통과하면서 에너지를 조금씩 잃다가 특정 깊이에서 브래그 피크라고 하는 에너지 집중 구간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이것을 종양이 있는 깊이에 맞추면 주변 정상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종양만 집중적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중이온 치료는 탄소 이온 같은 무거운 이온을 가속해서 쏘는 것입니다. 더 강력한 생물학적 효과를 가져서 방사선 내성이 강한 암에도 효과적입니다.

이 모든 치료법의 핵심 장치가 사이클로트론 또는 그 발전형입니다.


 

📜 파트 3. 1939년 노벨상 — 전쟁 직전의 수상

 

1939년 노벨 물리학상은 어니스트 로렌스에게 수여되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의 발명과 개발, 그리고 이를 이용한 연구 결과에 대하여"

 

 

수상이 발표된 1939년 9월, 불과 그 달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시상식은 12월에 열렸지만 전쟁의 분위기로 인해 이전과 다른 단출한 분위기였습니다. 유럽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유럽 물리학자들이 망명해 있거나 전쟁 연구에 동원되어 있었습니다.

로렌스는 이 노벨상이 사이클로트론의 가능성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노벨상 이후 사이클로트론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늘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와 우라늄 분리

 

전쟁 중 로렌스는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우라늄 원자폭탄을 만들려면 천연 우라늄에서 핵분열이 잘 일어나는 우라늄-235를 분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천연 우라늄에서 U-235는 0.7%에 불과하고, 나머지 99.3%는 핵분열이 일어나지 않는 U-238입니다. 두 동위원소는 화학적 성질이 같아서 화학적으로 분리할 수 없습니다.

로렌스는 전자기 분리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우라늄을 기화시켜 이온화한 후 자기장 속에서 편향시키는 것입니다. U-235와 U-238은 질량이 조금 다르므로 자기장에서 다른 반지름의 궤도를 그립니다. 이것을 이용해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칼루트론이라는 장치가 개발되었습니다.

이 방법은 매우 비효율적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Y-12 플랜트가 건설되었습니다. 수천 개의 칼루트론이 설치되어 우라늄-235를 하루하루 분리했습니다. 이렇게 모은 우라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 폭탄에 들어갔습니다.

로렌스의 전자기 분리기 기술이 세계 최초의 핵폭탄 재료를 만든 것입니다.

로렌스는 1958년 5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핵실험 금지 조약 협상에 과학 자문으로 참여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제네바에서 숨졌습니다.


 

📜 파트 4. 사이클로트론의 유산 — LHC까지

 

로렌스의 작은 10cm 사이클로트론에서 시작된 입자 가속기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1950년대 싱크로트론이 발명되었습니다. 상대론적 속도에서 사이클로트론의 공진 조건이 깨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자가 빨라질수록 자기장 세기도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코스모트론, 베바트론, AGS, 그리고 CERN의 여러 가속기들이 싱크로트론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세계 최대의 입자 가속기인 CERN의 LHC는 둘레 27킬로미터의 원형 가속기입니다. 양성자를 빛의 속도의 99.9999999%까지 가속합니다. 에너지는 최대 13.6 TeV. 로렌스의 첫 사이클로트론이 약 0.0000008 MeV를 달성한 것과 비교하면 억의 억 배나 높은 에너지입니다.

LHC에서 2012년 힉스 보손이 발견되었습니다. 48년 전 피터 힉스가 이론으로 예언한 입자. 물질에 질량을 부여하는 메커니즘의 핵심 입자. 이것이 로렌스가 시작한 원형 가속기 기술의 최대 성과입니다.

 

의료용 사이클로트론의 세계

 

오늘날 전 세계에 약 1,800개의 의료용 사이클로트론이 있습니다. 이 작은 사이클로트론들이 매일 수백만 명의 환자를 위한 방사성 의약품을 만듭니다.

현대의 의료용 사이클로트론은 크기가 작고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병원 지하에 설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방사성 의약품은 반감기가 짧아서 즉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만드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PET 스캔용 플루오린-18은 반감기가 110분입니다. 만든 지 몇 시간 안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을 병원 인근에서 만드는 것이 의료용 사이클로트론의 핵심 역할입니다.

로렌스가 1930년대 의사인 형과 협력해서 개척한 의료 응용이, 지금 이렇게 광범위하게 퍼진 것입니다.


 

📜 파트 5. 사이클로트론이 바꾼 핵물리학 연구의 방식

 

사이클로트론이 등장하기 전, 핵물리학 실험은 자연 방사선에 의존했습니다. 라듐에서 나오는 알파 입자, 방사성 원소에서 나오는 베타선과 감마선. 이것들을 타겟에 쏘아서 핵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이 방법의 문제는 에너지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 방사선은 정해진 에너지를 가집니다. 더 높은 에너지의 반응을 보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은 이것을 바꾸었습니다. 원하는 에너지로 원하는 입자를 원하는 타겟에 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핵물리학 실험이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연구 방법론의 혁명이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으로 코크로프트와 월턴이 최초의 인공 핵 변환을 했고, 페르미의 중성자 실험과 함께 핵물리학이 체계적인 과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속기 없이는 불가능했을 발견들이 이어졌습니다. 파이온, 뮤온, 기타 중간자들. 반양성자, 반중성자. 카이론, 오메가 마이너스. 표준 모형의 입자들이 하나씩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힉스 보손까지.

가속기물리학이라는 분야 전체가 로렌스의 10cm 사이클로트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파트 6.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로렌스는 버클리 대학교에 방사선 연구소 — 지금의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 를 설립하고, 점점 커지는 사이클로트론들을 차례로 만들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물리학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곳입니다. 여러 초우라늄 원소들이 합성되었고, 반양성자가 발견되었습니다. 글렌 시보그가 원자 번호 94번부터 102번까지의 원소들을 합성한 곳도 여기입니다.

로렌스의 사후에도 이 연구소는 계속 세계 최첨단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과학, 빛을 이용한 물질 분석, 컴퓨팅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합니다.

원소 주기율표 103번 원소가 그의 이름을 딴 로렌슘입니다.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서 1961년 합성된 것입니다.


 

📜 파트 7. 마무리 — 원 위를 도는 아이디어

 

어니스트 로렌스의 아이디어는 단순했습니다. 입자를 원 위에서 돌리면서 조금씩 가속하면 된다는 것.

단순한 아이디어가 10cm에서 시작해 27km에 이르렀습니다. 물리학 연구의 도구에서 시작해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 장비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기본 구성 요소를 이해하는 것과, 그 이해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같은 기계에서 나왔습니다. 힉스 보손을 발견하는 것과 PET 스캔으로 암을 조기 진단하는 것이 모두 로렌스의 원 궤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은 지금도 전 세계 병원과 연구소에서 돌고 있습니다. 그 원리는 1929년 버클리의 젊은 교수가 논문을 읽다가 떠올린 직관 그대로입니다.

로렌스의 아이디어가 돌고 있습니다. 멈추지 않고.


 

📜 파트 8. 1939년의 세계 — 전쟁과 과학의 교차점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렌스가 노벨상을 받은 바로 그해였습니다.

전쟁의 시작은 물리학 연구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군사 연구로 동원되었습니다. 레이더 개발, 핵무기 가능성 검토, 폭발물 연구. 평화적 목적으로 시작한 기초 연구가 전쟁 기술로 전환되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같은 해 핵분열이 발견되었습니다. 1938년 12월 독일의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핵분열을 발견했고, 1939년 1월 마이트너와 프리쉬가 이것을 이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핵분열에서 방출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즉시 논의되었습니다.

레오 실라르드는 핵 연쇄 반응의 개념을 이미 1933년에 구상했었습니다. 1939년 핵분열 발견 소식을 듣고 즉시 연쇄 반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미국이 핵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것이 맨해튼 프로젝트의 씨앗이었습니다.

로렌스의 사이클로트론이 이 시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핵무기 연구에 필요한 우라늄 동위원소 분리에 전자기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로렌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의 사이클로트론 기술이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핵심 방법 중 하나가 된 것입니다.

 

1939년 핵물리학의 지형도

 

1939년 핵물리학은 몇 가지 핵심 질문을 놓고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핵분열의 메커니즘. 왜 우라늄 핵이 중성자를 흡수하면 두 개로 쪼개지는가? 닐스 보어와 존 아치볼드 휠러가 1939년 핵분열의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핵을 물방울에 비유한 액적 모형. 이것이 핵분열을 이해하는 기본 모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쇄 반응의 가능성. 핵분열에서 방출된 중성자가 다른 우라늄 핵을 분열시켜 더 많은 중성자를 만드는 과정. 실라르드가 1933년 구상한 것. 이것이 원자로와 핵폭탄의 원리입니다.

임계 질량. 연쇄 반응이 스스로 지속되기 위한 최소 물질량. 1940년 프리쉬와 페이얼스가 우라늄-235의 임계 질량을 계산해서 핵폭탄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이 모든 논의가 1939년에 시작되었습니다. 로렌스가 노벨상을 받은 바로 그해에.

 

사이클로트론의 평화와 전쟁

 

로렌스의 사이클로트론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의료의 얼굴입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들어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 사이클로트론이 만든 방사성 인-32가 백혈병 치료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PET 스캔의 기반이 된 것도 사이클로트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쟁의 얼굴입니다. 우라늄 동위원소 분리. 히로시마 원폭의 재료가 된 우라늄-235를 분리하는 데 로렌스가 개발한 칼루트론 기술이 사용되었습니다.

같은 기계가, 같은 원리가 생명을 구하는 데도, 생명을 빼앗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기술의 이중성입니다. 기술은 중립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인간의 선택입니다.

로렌스는 전쟁 후 핵 시대의 도전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핵무기 통제와 군비 제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1958년 핵실험 금지 조약 협상에 과학 자문으로 참여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이 핵무기를 제한하려는 협상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사이클로트론이 열어준 소립자의 세계

 

사이클로트론의 가장 근본적인 유산은 소립자물리학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자연 방사선에 의존하던 물리학 실험에서 인공 가속기로 이동하면서, 물리학자들은 원하는 에너지의 입자를 원하는 타겟에 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소립자물리학을 체계적인 과학으로 만든 도구적 혁명이었습니다.

로렌스의 베바트론에서 반양성자가 발견되었습니다. 기존 가속기로는 너무 높은 에너지가 필요했지만, 베바트론이 그 에너지를 달성했습니다. 디랙의 반물질 이론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더 큰 가속기들이 케이온, 파이온, 시그마 입자, 카이 입자, 오메가 마이너스, 참 쿼크, 바텀 쿼크, 탑 쿼크, W와 Z 보손, 힉스 보손 — 표준 모형의 입자들을 하나씩 발견해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로렌스의 10센티미터짜리 사이클로트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29년 봄 버클리의 한 연구실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지금 CERN에서 지름 27킬로미터의 가속기로 이어졌습니다. 원의 크기가 달라졌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입자를 원 위에서 돌리면서 가속한다는 것.


 

📜 파트 9. 가속기의 미래 — 더 작고 더 강력하게

 

로렌스가 시작한 가속기 기술은 두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더 크게, 다른 하나는 더 작게.

더 크게는 LHC 이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CERN은 FCC, 미래 원형 충돌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둘레 100킬로미터의 가속기로 LHC보다 7배 높은 에너지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중국도 자체 대형 가속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더 작게는 의료와 산업 응용을 위한 것입니다. 현재 의료용 사이클로트론이 냉장고 크기로 작아졌습니다. 레이저 플라즈마 가속기는 수십 센티미터 크기로 기존 가속기와 비슷한 에너지를 달성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이저 플라즈마 가속기는 강력한 레이저 펄스가 플라즈마 속에서 파를 만들고, 이 파의 전기장이 입자를 가속합니다. 기존 가속기보다 수천 배 강한 가속 전기장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실용화되면 병원 안에서 환자 치료용 가속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로렌스가 1929년 10센티미터짜리 기계로 시작한 것이 이렇게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핵심 아이디어 — 전자기장으로 입자를 가속한다 — 는 같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 계속 혁신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렇게 하나의 씨앗에서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갑니다.


 

📜 파트 10. 빅 사이언스의 탄생 — 로렌스가 바꾼 과학의 방식

 

로렌스가 버클리에서 이끈 방사선 연구소는 현대 과학 연구 방식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물리학 연구는 대부분 소규모였습니다. 한 명 또는 소수의 연구자가 실험실에서 독립적으로 연구하는 방식. 러더퍼드의 실험실, 보어의 연구소도 이런 방식이었습니다.

로렌스는 달랐습니다. 그는 수십, 수백 명이 협력하는 대규모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사이클로트론이 커질수록 더 많은 기술자, 의사, 화학자, 물리학자가 필요했습니다. 로렌스는 이들을 조직하고 이끄는 것에 탁월했습니다.

이것이 빅 사이언스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날 CERN의 LHC 프로젝트는 50개 이상의 나라에서 수천 명의 과학자가 참여합니다. 한 가속기 실험에 수십 개 나라의 기관이 참여합니다. 이 방식의 원형이 로렌스의 버클리였습니다.

빅 사이언스는 개인의 천재성보다 집단 지성을 활용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혼자서는 LHC를 만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천 명이 협력하면 가능합니다. 로렌스가 증명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이클로트론이 점점 커진 것은 단순한 규모의 확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자체를 바꾼 혁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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