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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5_[NEW] 노벨생리의학상

[1973 노벨생리의학상] 카를 폰 프리슈, 콘라트 로렌츠, 니콜라스 틴베르헨 : 본능이란 무엇인가 — 동물행동학, 생명 행동의 법칙을 밝히다

by 어셈블러 2026.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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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스톡홀름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생리의학상이 의사나 생화학자가 아닌, 꿀벌을 쫓아다닌 교수와 오리와 함께 살았던 학자, 그리고 갈매기를 관찰하며 평생을 보낸 연구자에게 돌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카를 폰 프리슈, 콘라트 로렌츠, 니콜라스 틴베르헨 — 세 사람은 각각 꿀벌, 오리, 갈매기라는 서로 다른 동물을 연구했지만, 한 가지 공통된 질문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동물의 행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타고난 것인가, 배운 것인가? 그리고 그 행동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가?

그 질문의 답은 동물학의 경계를 훌쩍 넘어,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 행동주의가 지배하던 시대, 본능은 부정당했다

 

20세기 초반의 심리학계는 행동주의의 시대였습니다.

존 왓슨, 이반 파블로프, 그리고 훗날의 B. F. 스키너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과학자들은 생물의 모든 행동이 환경과의 상호작용, 즉 조건화와 보상을 통해 형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타고난 본능이란 없거나 있더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게 주류 입장이었습니다. 동물은 빈 석판(blank slate)이며, 삶의 경험이 그 위에 행동을 써 내려간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동물을 직접 관찰하는 연구자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었습니다.

꿀벌은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방식으로 먹이의 방향을 동료에게 전달했습니다. 갓 태어난 오리 새끼는 어미를 본 적도 없이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따라다녔습니다. 갈매기는 자신의 진짜 알보다 훨씬 큰 가짜 알을 더 열심히 품으려 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학습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미 생물의 형태가 자연선택의 산물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행동은 어떨까? 행동 역시 진화의 산물이고,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전되어 온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을 붙잡고 수십 년을 파고든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 세 거장의 여정 — 각자의 방식으로 본능을 추적하다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는 18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의사인 아버지를 둔 집안이었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빈 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며 물고기의 색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뮌헨 대학교에서 교수가 되어 꿀벌 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물음이었습니다. 꿀벌은 과연 색을 구별하는가? 당시 많은 과학자들은 곤충이 색각을 가지지 못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프리슈는 꿀벌이 특정 색깔의 먹이 접시에서만 먹이를 찾는 것을 관찰하며 그 믿음을 뒤집었습니다. 색을 구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더 큰 질문이 남았습니다. 꿀벌은 어떻게 먹이가 있는 장소를 동료에게 알리는가?

그 답을 찾는 데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1903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알텐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를 아버지로 두었고, 그 역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집 정원에서 새와 물고기를 키우며 행동을 관찰하는 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의학 학위를 받은 뒤에도 동물학과 비교심리학으로 방향을 틀어, 오리와 거위를 곁에 두고 그들의 행동을 기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관찰은 우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갓 부화한 거위 새끼들이 어미 대신 자신을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알에서 나온 직후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그 현상을, 로렌츠는 각인(Imprinting)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니콜라스 틴베르헨(Nikolaas Tinbergen)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얀 틴베르헨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레이던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갈매기 군락지에서 철새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연구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가시고기의 구애 행동, 갈매기의 알 굴리기 반응, 어린 새끼들이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며 쪼는 행동 —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연구 대상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저항하다 수용소에 억류되는 고난을 겪은 뒤에도 그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전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동물행동학을 본격적인 과학 분야로 확립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 춤으로 말하는 꿀벌, 각인하는 오리, 네 가지 질문의 갈매기

 

이 세 과학자의 발견을 따라가다 보면, 동물 행동의 복잡성과 정교함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프리슈가 해독한 것은 꿀벌의 언어였습니다. 먹이를 발견한 꿀벌이 벌집으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그 위치를 전달하는 방식은 두 종류의 춤이었습니다.

먹이가 가까운 경우, 꿀벌은 원을 그리며 춤을 춥니다. 방향은 알려주지 않지만, 근처에 먹이가 있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먹이가 멀리 있을 때는 8자 모양의 꼬리 흔들기 춤이 등장합니다. 8자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직선 구간에서 꿀벌은 격렬하게 꼬리를 흔드는데, 이 직선이 향하는 방향이 태양을 기준으로 먹이가 있는 방향을 알려줍니다. 직선 구간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거리를 나타냅니다. 꿀벌은 빛의 편광을 감지하고 태양의 위치를 내부 시계로 보정하면서, 매우 정확한 방위 정보를 동료에게 전달합니다.

처음 발표되었을 때, 많은 과학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곤충이 이처럼 정교한 상징적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복 실험으로 입증되면서, 프리슈의 발견은 동물 의사소통 연구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로렌츠가 주목한 것은 각인 현상의 놀라운 특성이었습니다. 오리나 거위 새끼는 부화 직후 수 시간이라는 좁은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 안에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각인합니다. 그 대상이 로렌츠 자신이건, 움직이는 나무 상자이건 상관없었습니다. 한번 각인되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 현상은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로렌츠는 각인을 비롯하여, 특정 자극이 주어졌을 때 동물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행동을 자동적으로 실행하는 패턴을 고정 행동 양식(Fixed Action Patterns)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행동을 유발하는 특정 자극을 열쇠 자극(Releaser)이라 명명했습니다. 공격성, 구애 행동, 새끼 돌보기 등 많은 행동들이 이 틀로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틴베르헨의 가장 큰 공헌은 동물 행동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동물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네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첫째는 원인입니다. 이 행동을 지금 유발한 신경·호르몬·환경적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둘째는 발달입니다. 이 행동은 개체의 생애 동안 어떻게 발달하는가? 셋째는 기능입니다. 이 행동이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어떤 이점을 주는가? 넷째는 진화입니다. 이 행동은 종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진화해왔는가?

이 네 가지 질문은 틴베르헨의 네 가지 질문(Tinbergen's Four Questions)으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행동 연구의 기본 틀로 사용됩니다.

틴베르헨은 또한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 개념을 발견했습니다. 갈매기는 자신의 알보다 훨씬 크고 색깔이 선명한 가짜 알을 더 열심히 품으려 했습니다. 실제보다 과장된 자극에 동물이 더 강하게 반응하는 이 현상은, 본능 반응이 자극의 특정 속성에 연동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극적인 증거였습니다.


 

🎬 영광 뒤의 그림자 — 로렌츠와 나치, 그리고 본성 대 양육 논쟁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발표는 찬사만으로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콘라트 로렌츠의 과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된 직후 나치당에 입당했고, 나치 이데올로기와 연결되는 논문들을 발표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인종 위생'이라는 개념에 과학적 언어를 빌려준 그의 글은, 나치 정권의 인종 차별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로렌츠 자신은 전후에 과거에 대한 반성을 표명했지만, 그의 이름은 과학적 업적의 위대함과 과학자의 윤리적 책임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상징하는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노벨 위원회가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내부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적 논쟁도 격렬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동물행동학자들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본능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고정 행동 양식이라는 개념이 정말 경험적으로 입증되는가? 관찰 중심의 방법론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엄밀한가?

행동주의자들은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의 반복 실험을 신뢰했고, 동물행동학자들은 자연 서식지에서의 관찰을 중시했습니다. 두 진영은 방법론뿐 아니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점에서도 충돌했습니다.

또 하나의 논란은 노벨상 수여 분야 자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동물 행동 연구가 생리의학 분야에 속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이들의 연구가 신경계, 내분비계와 행동의 연관성을 밝히고 인간 행동 이해의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생리의학 분야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처럼 1973년 노벨상은 빛나는 과학적 업적과 함께,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학문 방법론의 갈등, 본성과 양육이라는 철학적 논쟁을 동시에 담은 복잡한 사건이었습니다.


 

📱 본능의 메아리 — 현대 사회 속에 살아있는 동물행동학

 

프리슈, 로렌츠, 틴베르헨의 연구는 오늘날 우리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동물 복지와 생태 보전 분야에서 이들의 연구는 필수적인 기준을 제공합니다. 동물이 어떤 본능적 행동 욕구를 가지는지 이해해야 그에 맞는 환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동물원 설계, 가축 사육 환경 기준, 반려동물 훈련 지침은 모두 동물행동학에 바탕을 둡니다. 프리슈의 꿀벌 연구는 벌 군집의 건강과 생태계 보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꿀벌 개체수 감소라는 전 지구적 위기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도 기여합니다.

발달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로렌츠의 각인 개념이 인간의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유아가 양육자와 맺는 초기 유대가 이후 사회적, 정서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데 각인 개념은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동물행동학의 아이디어는 살아 있습니다. 꿀벌의 집단 의사결정 방식은 군집 로봇 알고리즘의 영감이 되었고, 틴베르헨의 초정상 자극 개념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나 알림 시스템 최적화에 시사점을 줍니다. 스마트폰 앱의 빨간 숫자 배지, 끝없이 이어지는 소셜 미디어 피드 — 이것들은 인간의 본능적 반응 회로를 자극하도록 설계된 일종의 초정상 자극일 수 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도 동물행동학의 영향은 분명합니다. 특정 발달 시기에 특정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학습에 매우 중요하다는 결정적 시기 개념은, 언어 교육의 적절한 시기나 조기 교육의 효과를 논할 때 중요한 근거로 활용됩니다.


 

📝 본능과 인간 — 자연 속에서 나를 이해하다

 

카를 폰 프리슈, 콘라트 로렌츠, 니콜라스 틴베르헨의 동물행동학 연구는 인간에게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들이밀었습니다.

우리 역시 동물이라는 것.

우리의 언어, 감정, 사회적 행동, 양육 방식, 그리고 공격성에 이르기까지 — 인간의 많은 행동 패턴에는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흔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흔적은 문화와 교육으로 덮이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사실은 불안감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유 의지로 선택한다고 믿는 행동들 중 일부가 사실은 본능의 프로그램에 따른 반응일 수 있다는 생각은, 자아에 대한 자신감을 흔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이것은 해방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공격성, 불안, 집단에 속하려는 욕구, 새로운 것에 끌리는 성향이 진화적 맥락에서 이해될 때,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해는 판단보다 앞서야 합니다.

또한 이들의 연구는 관찰의 가치를 일깨웁니다. 실험실 안의 통제된 실험이 아니라, 무릎에 흙을 묻혀가며 자연 속에서 동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 거기서도 위대한 과학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세 사람은 증명했습니다.

로렌츠의 논란 많은 과거는 그 모든 찬사에 무거운 질문을 덧붙입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발견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 탁월한 과학적 통찰이 윤리적 실패를 면죄해줄 수 있는가?

그 답은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물음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동물행동학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꿀벌의 춤이나 오리의 각인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인간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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