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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5_[NEW] 노벨생리의학상

[1977 노벨생리의학상] 앤드루 V. 섈리, 로제 기유맹, 로절린 얄로 : 뇌가 몸에게 보내는 편지 — 시상하부 호르몬과 측정의 혁명

by 어셈블러 2026.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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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두 가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나로 묶었습니다.

한 이야기는 두 명의 라이벌 과학자가 수십 년간 수십만 마리의 동물 뇌를 갈아서, 겨우 몇 밀리그램의 물질을 얻어내며 벌인 집요한 경쟁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물리학자 출신의 여성 과학자가 혈액 속에 존재하는 극미량의 물질을 측정하는 혁명적인 방법을 고안한 이야기입니다.

앤드루 V. 섈리, 로제 기유맹, 로절린 얄로 — 이 세 사람의 연구는 뇌가 어떻게 신체 기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지를 밝혔고, 그 명령을 피코그램 단위까지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도구를 인류에게 선물했습니다.


 

🕰️ 마스터 샘과 그 주인을 찾아서

 

20세기 초까지 의학계는 호르몬의 존재는 알았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는 거의 몰랐습니다.

뇌하수체(pituitary gland)는 '마스터 샘(master gland)'이라 불렸습니다. 갑상선, 부신, 생식선 등 주요 내분비선들의 활동을 지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들이 이 기관들을 자극하거나 억제하는 것은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뇌하수체 자체는 누가 지휘하는가?

1950년대에 이르러, 과학자들은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가 뇌하수체를 조절한다고 추측하기 시작했습니다. 뇌와 내분비계 사이의 경계, 즉 신경내분비 접점이 시상하부에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상하부가 정확히 어떤 신호를 뇌하수체에 보내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신호 물질을 찾아내는 것은 당시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이 물질들은 극히 미량으로 존재했으며, 분리와 정제를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동물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혈액 속에 극미량으로 존재하는 이런 물질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 자체가 없었습니다.

두 개의 산이 동시에 앞을 막고 있었습니다. 물질을 찾는 것과, 찾은 물질을 측정하는 것. 각각의 산을 넘은 과학자들이 1977년 노벨상을 나눠 가졌습니다.


 

🖊️ 라이벌, 물리학자, 그리고 세 인생의 교차

 

앤드루 V. 섈리(Andrew V. Schally)는 1926년 폴란드 빌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치 독일의 점령을 피해 어린 시절 유럽을 전전하다, 결국 캐나다와 미국에 정착했습니다. 맥길 대학교에서 생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57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재향군인병원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방출 인자를 찾아내는 것이 그의 평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의 팀은 수십만 마리의 돼지와 양의 뇌를 수집하고, 시상하부 조직에서 극미량의 물질을 추출하고 정제하는 작업을 수년간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은 수백 킬로그램의 뇌 조직에서 겨우 몇 밀리그램의 물질을 얻어내는 고된 싸움이었습니다.

로제 기유맹(Roger Guillemin)은 1924년 프랑스 디종에서 태어났습니다. 리옹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53년 미국 텍사스 베일러 의과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한 그도, 섈리와 정확히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실제로 잠시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이후 각자의 팀을 이끌며 수십 년간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학회에서 서로의 데이터를 숨겼고, 누가 먼저 발표하는지를 놓고 숨막히는 레이스가 펼쳐졌습니다. 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 중 한 쌍이었습니다.

로절린 얄로(Rosalyn Yalow)는 1921년 미국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났습니다. 헌터 칼리지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핵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는, 여성 물리학자로서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박사 과정 당시 물리학부 사무원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고, 자신의 분야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없이 차별을 겪었습니다.

1947년 브롱스 재향군인병원에서 연구를 시작한 그녀는 그곳에서 내과 의사이자 연구자인 솔로몬 버슨(Solomon Berson)을 만났습니다. 물리학자와 의사의 만남, 그 파트너십에서 방사면역측정법이 탄생했습니다.


 

🔬 TRH와 LHRH, 그리고 피코그램을 재는 방법

 

섈리와 기유맹의 경쟁이 최초의 결실을 맺은 것은 1969년이었습니다.

두 팀은 거의 동시에, 그리고 독립적으로, 시상하부에서 갑상선 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TRH, Thyrotropin-Releasing Hormone)의 화학 구조를 밝혀냈습니다. 섈리 팀이 1969년 10월에, 기유맹 팀이 불과 몇 주 뒤인 11월에 거의 동시에 발표했습니다.

TRH는 세 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트리펩타이드였습니다. 수십만 마리의 동물 뇌를 갈아서 얻어낸 물질이 고작 세 개의 아미노산 사슬이었다는 것은 허탈하면서도 경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 단순한 구조가 갑상선 기능 전체를 조절하는 시작점이었습니다.

이어서 황체형성 호르몬 방출 호르몬(LHRH, 또는 GnRH)의 구조도 1971년에 밝혀졌습니다. 열 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이 데카펩타이드는 생식 기능을 조절하는 핵심 신호물질이었습니다.

이 발견들은 신경내분비학(neuroendocrinology)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습니다. 뇌가 호르몬을 통해 신체를 조절한다는 것을 분자 수준에서 처음으로 증명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얄로와 버슨은 다른 방향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 말, 그들은 혈액 속 인슐린 농도를 측정하려고 시도했습니다. 문제는 인슐린이 혈액 안에 너무 적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측정 방법으로는 도저히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얄로의 해법은 물리학에서 왔습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원하는 물질에 딱지를 붙이고, 그 딱지의 방사능을 재는 방법이었습니다.

방사면역측정법(RIA, Radioimmunoassay)의 원리는 경쟁 결합을 이용합니다. 방사성 동위원소로 표지된 인슐린과 환자 혈액 속의 비표지 인슐린이 같은 항체를 놓고 경쟁하게 됩니다. 환자 혈액의 인슐린이 많을수록 항체에 결합하는 표지 인슐린은 줄어들고, 검출되는 방사능이 감소합니다. 이 관계를 표준 곡선과 비교하면 혈액 속 인슐린 농도를 피코그램(10⁻¹²g)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측정의 혁명이었습니다. 갑상선 호르몬, 성장 호르몬, 성호르몬, 각종 펩타이드 호르몬 — 혈액 속의 거의 모든 미량 물질을 정확하게 잴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경쟁의 끝과 비운의 동반자

 

섈리와 기유맹의 경쟁은 과학계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두 팀은 서로의 연구실 소식을 예의 주시했습니다. 학회에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데이터를 들을까봐 경계했고, 자신들의 결과가 먼저 알려질까봐 조심했습니다. 이 경쟁은 때로 비생산적인 긴장감을 만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팀 모두를 더 빠르고 엄밀하게 만드는 자극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발견이 다른 팀에 의해 독립적으로 검증된다는 것은, 그 발견의 신뢰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두 라이벌 모두를 수상자로 선정함으로써, 경쟁이 어떻게 과학에 이로운 결과를 낼 수 있는지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얄로의 수상에는 가슴 아린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방사면역측정법은 얄로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 버슨과의 20년 가까운 협력의 산물이었습니다. 버슨은 의학적 통찰로, 얄로는 물리학적 기법으로 서로를 보완했습니다. 그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RIA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버슨은 1972년, 노벨상 수상 5년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벨상은 생존자에게만 수여됩니다.

얄로는 스톡홀름 시상식에서 버슨의 이름을 여러 번 불렀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었지만, 그것이 두 사람의 공동 작품임을 그녀는 끝까지 증언했습니다.


 

📱 호르몬 검사의 일상화 — 임신 진단 키트에서 종양 표지자까지

 

앤드루 V. 섈리, 로제 기유맹, 로절린 얄로의 연구는 오늘날 병원과 일상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임신 진단 키트는 방사면역측정법의 원리를 응용한 것입니다. hCG(인간 융모성 생식샘 자극 호르몬)라는 임신 호르몬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항체를 이용하여, 소변 속 미량의 hCG를 검출합니다. 방사성 동위원소 대신 색깔 변화를 유발하는 효소를 사용한다는 점만 다릅니다.

오늘날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갑상선 기능 검사, 생식 호르몬 검사, 당뇨 관련 호르몬 검사, 성장 호르몬 검사 — 이 모든 것들이 얄로의 RIA에서 발전한 면역측정법을 기반으로 합니다. 암 진단에 사용되는 종양 표지자(CEA, PSA 등) 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 항원 검사 키트 역시 이 원리의 응용입니다. 팬데믹 동안 수십억 번 수행된 그 검사는, 70년 전 한 물리학자가 인슐린을 재는 문제를 풀면서 만든 방법론의 후손입니다.

섈리와 기유맹이 발견한 시상하부 호르몬들은 의학적으로도 직접 활용됩니다. LHRH 유사체는 자궁내막증, 전립선암 치료, 시험관 아기 시술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TRH 자체 또는 그 유사체는 갑상선 기능 검사와 우울증 치료 연구에 사용됩니다.


 

📝 보이지 않는 신호와 그것을 읽는 용기

 

섈리와 기유맹의 이야기는 인내의 극한을 보여줍니다.

수십 년간, 수십만 마리의 동물 뇌를 처리하면서, 그들은 결코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물질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수년간의 실패와 경쟁 속에서 흔들리지 않았기에, 마침내 TRH와 LHRH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얄로의 이야기는 다른 차원의 용기를 보여줍니다. 당시 여성 과학자가 걸어가야 했던 길에는 차별과 편견이 곳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리학과 의학이라는 두 분야를 가로지르며, 당시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법을 창안했습니다. 경계를 무시했기에, 경계 너머의 발견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버슨의 이야기는 과학에서 협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노벨상이라는 명예가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지만, 수억 명의 정확한 진단을 가능하게 한 도구 속에 그의 이름은 영원히 녹아 있습니다.

뇌가 몸에게 보내는 편지 — 그 편지의 언어를 해독하고, 그 편지를 읽는 방법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국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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