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10_New Novel/315_[NEW] 노벨생리의학상

[1979 노벨생리의학상] 앨런 M. 코맥, 고드프리 N. 하운스필드 : 몸속을 살아서 들여다보다 — CT 스캔, 의학 영상의 혁명

by 어셈블러 2026. 7. 4.
728x90
반응형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한 사람은 남아프리카의 물리학 교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전자 엔지니어였습니다. 한 사람은 수학적 이론을 종이 위에 풀었고, 다른 한 사람은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독립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같았습니다. X선 데이터를 컴퓨터로 처리하면 인체 내부의 단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1979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 두 사람, 앨런 M. 코맥과 고드프리 N. 하운스필드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세상에 선물한 CT 스캔은, 인류가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몸속을 칼을 대지 않고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한 기술이었습니다.


 

🕰️ X선의 시대, 그러나 여전히 안개 속의 몸속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이래, 의학 진단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뼈 골절, 폐렴, 폐결핵 — X선 사진으로 이 질환들을 훨씬 쉽게 진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까지도 기존 X선 촬영에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X선 사진은 몸의 모든 구조가 한 장의 필름 위에 겹쳐서 그림자처럼 투영됩니다. 밀도가 높은 뼈는 선명하게 나오지만, 연조직인 뇌, 간, 근육은 서로 구별하기 어렵게 뭉개져 보였습니다. 뇌 안에 종양이 있는지, 어디에 얼마나 큰지를 X선 사진으로 알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뇌종양이 의심되는 환자를 진단하려면 침습적인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두개골에 구멍을 뚫거나, 뇌척수액을 공기로 대체하는 고통스러운 검사를 해야 했습니다. 내부 출혈, 장기 손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습니다.

의사들은 보이지 않는 곳을 보고 싶었습니다. 칼을 대지 않고, 고통 없이, 정확하게.


 

🖊️ 물리학자와 엔지니어 — 전혀 다른 두 출발점

 

앨런 M. 코맥(Allan M. Cormack)은 192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케이프타운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핵물리학 연구를 했습니다. 이후 미국 터프츠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 케이프타운의 한 병원에서 방사선 물리학 자문을 맡게 된 코맥은 방사선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종양에 방사선을 정확하게 조사하려면, 방사선이 통과하는 조직의 밀도 분포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수학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X선을 쏘아 얻은 투과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처리하면, 물체 내부의 밀도 분포를 재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코맥은 이 문제를 오스트리아 수학자 요한 라돈(Johann Radon)이 1917년에 발표한 라돈 변환(Radon Transform) 개념과 연결하여 해결책을 도출했습니다.

그는 1963년과 1964년에 이 수학적 원리를 담은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반응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논문에는 스위스의 결정학 연구소에서 편지 한 통이 왔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컴퓨터 기술의 한계로 이 이론을 실용화하기 어려웠고, 의학계의 관심도 없었습니다.

고드프리 N. 하운스필드(Godfrey N. Hounsfield)는 1919년 영국 노팅엄셔의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정규 대학 교육 대신 독학으로 기초를 쌓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에서 레이더 기술자로 복무하며 전자공학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패러데이 하우스 전기공학대학을 졸업하고 EMI(Electric and Musical Industries) 회사에 입사한 그는, 레이더와 컴퓨터 기술을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EMI는 당시 비틀즈의 앨범을 내던 레코드 회사로도 유명했는데, 하운스필드는 그 연구 부문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하운스필드는 이미지 재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코맥의 논문을 알지 못한 채, 그는 독자적으로 같은 아이디어를 구상했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X선 데이터를 수집하고 컴퓨터로 처리하면 단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론가가 아닌 엔지니어였던 하운스필드는 즉시 기계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처음에는 방사성 아메리슘(⁲⁴¹Am) 선원을 사용하다가 X선으로 바꾸고, 컴퓨터 처리 알고리즘을 다듬으며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초기 장비는 한 장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데 수 시간이 걸렸지만, 나아가는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1971년, 하운스필드의 시제품은 세계 최초로 임상 CT 촬영에 성공했습니다. 뇌낭종 환자의 두개골을 촬영하여 뇌 단면 이미지를 얻어낸 것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처음 그 이미지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 X선 그림자에서 단면 이미지로 — CT의 원리

 

CT의 원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찍은 수천 장의 X선 그림자를 컴퓨터로 처리하여, 그 그림자들이 만들어낸 물체의 내부 구조를 역으로 계산해낸다.

코맥이 수학적으로 증명한 핵심은, X선 투과 데이터가 일종의 선 적분(line integral)이며 이것을 역변환하면 내부 밀도 분포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운스필드가 개발한 실용적인 알고리즘은 필터링된 역투영(Filtered Back Projection)이었습니다. 각 각도에서 얻은 투영 데이터를 다시 이미지 평면에 역투영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흐릿함을 수학적 필터로 제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실제 CT 촬영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X선 발생기와 검출기가 환자 주위를 회전하면서 수백 개의 각도에서 투과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컴퓨터는 이 데이터를 처리하여 각 지점의 X선 흡수 계수를 계산합니다. 이 값들이 밝기 값으로 변환되어 단면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기존 X선 사진이 모든 구조의 겹쳐진 그림자라면, CT는 특정 높이에서 몸을 수평으로 잘랐을 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뼈와 연조직은 물론, 각 조직 사이의 미세한 밀도 차이까지 구별해냅니다.

하운스필드는 이 흡수 계수를 표준화하기 위해 단위를 도입했습니다. 물의 흡수 계수를 0으로, 공기를 -1000으로 정한 이 스케일은 하운스필드 단위(HU, Hounsfield Units)라 불리며 지금도 전 세계 CT 장비에서 사용됩니다.


 

🎬 비틀즈가 만든 뇌 사진

 

CT 개발의 역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운스필드가 근무한 EMI는 당시 비틀즈를 비롯한 대형 음악 아티스트들의 앨범 판매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EMI 경영진은 이 수익의 일부를 하운스필드의 CT 연구에 투자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매우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였지만, EMI는 도박을 택했습니다. 일부 저널리스트들은 "비틀즈가 CT 스캐너를 만들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코맥의 경우는 더욱 극적입니다. 그는 1963년과 1964년 논문을 발표했을 때 아무런 반향이 없었고, 그 후 수년간 자신의 연구가 실용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운스필드가 CT 스캐너를 개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후에야, 코맥의 이론이 같은 원리였음이 알려졌습니다. 1979년 노벨위원회는 이 두 사람의 독립적인 기여를 함께 인정했습니다.

초기 CT 장비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느렸습니다. 하운스필드의 첫 번째 임상 장비는 뇌 한 단면을 촬영하는 데 4.5분, 그 데이터를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데 20분이 걸렸습니다. 오늘날의 CT는 1초 이내에 수백 개의 단면을 촬영합니다.


 

📱 응급실의 필수품에서 고고학 도구까지

 

앨런 M. 코맥과 고드프리 N. 하운스필드가 개척한 CT 기술은 오늘날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의료 기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응급실에서 CT는 생명을 구하는 도구입니다. 교통사고 환자가 실려 오면 수 분 안에 뇌출혈, 내부 장기 손상, 골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진단을 위해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CT 덕분에 불필요한 수술이 줄었고, 즉각적인 치료 결정이 가능해졌습니다.

암 진단에서 CT는 종양의 위치, 크기, 인접 구조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폐암, 간암, 췌장암 등의 조기 발견, 병기 결정, 치료 반응 평가에 CT가 광범위하게 활용됩니다.

의료 외에도 CT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고고학에서는 미라를 해체하지 않고도 내부 구조를 분석합니다. 산업계에서는 항공 부품의 내부 결함을 비파괴적으로 검사합니다. 식품 산업에서는 포장된 제품의 내용물 상태를 확인합니다.

CT 이후에 등장한 MRI(자기공명영상),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등의 기술도 모두 CT가 열어놓은 단층 영상 재구성이라는 개념 위에 서 있습니다. CT의 수학적 원리는 천문학에서 전파망원경의 이미지 재구성에도, 지진파 분석을 통한 지구 내부 구조 파악에도 응용됩니다.


 

📝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인간의 의지

 

코맥과 하운스필드의 이야기는 과학 발전의 두 가지 방식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코맥은 추상적인 수학 문제를 풀었습니다. 실용적 목적이 아니라, 이론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서. 그 논문이 아무 반향도 없이 묻혔을 때도, 그는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운스필드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의사들이 칼을 대지 않고 몸속을 볼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기술로 풀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는 코맥의 이론을 몰랐지만, 같은 답에 독립적으로 도달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수렴은, 어떤 중요한 발견이 시대적으로 무르익었을 때 서로 다른 경로가 같은 답을 향해 동시에 수렴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실은 하나이고, 그 진실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개이며, 그 길들은 언젠가 만납니다.

그리고 코맥의 수학이 없었다면 하운스필드의 기계는 이론적 기반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고, 하운스필드의 기계가 없었다면 코맥의 이론은 영원히 종이 위에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론과 실용의 만남, 그것이 CT를 세상에 가져다준 힘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 그것이 뢴트겐의 X선 발견으로 시작되어, 코맥의 수학을 거쳐, 하운스필드의 기계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