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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5_노벨화학상

[2004 노벨화학상] 아론 치에하노베르, 아브람 헤르슈코, 어윈 로즈 : 단백질에게 '죽음의 키스'를, 유비퀴틴의 발견

by 어셈블러 2025.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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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제거되어야 한다" 죽음의 표식

 

우리는 삶의 시작, 즉 탄생에 환호합니다. 생물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DNA가 어떻게 복제되고, RNA가 어떻게 단백질을 만들어내는지(합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노벨상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죽음' 은 외면받았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단백질이 어떻게 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세포 안에는 '리소좀(Lysosome)' 이라는 쓰레기통이 있어서, 늙은 단백질은 거기 들어가서 녹아 없어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말, 이상한 사실이 밝혀집니다. 리소좀은 에너지가 없어도 작동하는데, 세포 안에서 단백질이 분해될 때 '에너지(ATP)' 가 소모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건물을 짓는 데는 에너지가 들지만, 부수는 데는 그냥 두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굳이 비싼 에너지를 써가며 단백질을 없애는 거지?"

오늘 소개할 200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이 의문을 파고들어, 세포가 단백질을 파괴하는 과정이 만드는 것만큼이나 정교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세 명의 과학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제지간인 아브람 헤르슈코(Avram Hershko)아론 치에하노베르(Aaron Ciechanover). 그리고 이들을 도운 미국의 생화학자 어윈 로즈(Irwin Rose).

이들은 세포가 없애버리고 싶은 불량 단백질에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 라 불리는 딱지를 붙인다는 소름 끼치도록 정교한 시스템을 발견했습니다.

 

📜 에너지의 역설 : 부수는데 왜 힘이 들까?

 

1970년대 후반,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의 아브람 헤르슈코 교수는 단백질 분해 과정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시 학계의 정설은 "단백질 분해는 리소좀에서 일어난다"였습니다. 리소좀은 강력한 위산 같은 효소를 가지고 있어서, 뭐든지 집어삼키고 녹여버립니다. 여기엔 에너지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헤르슈코는 적혈구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리소좀이 없는데도 단백질이 사라지는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ATP(에너지)' 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제자인 아론 치에하노베르와 함께 안식년을 맞아 미국 필라델피아의 어윈 로즈 박사 연구실로 떠납니다. 로즈 박사는 당시 드물게 단백질 분해를 연구하던 전문가였습니다.

세 사람은 토끼의 적혈구 추출액을 가지고 씨름했습니다. 그들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 액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 APF-1: 분자량이 아주 작은 단백질 (약 8,500 Da)
  2. 나머지: 효소들이 섞여 있는 액체

신기하게도 이 둘이 섞여 있어야만 단백질이 분해되었습니다. 특히 저 작은 단백질(APF-1)의 역할이 묘했습니다. 이 녀석은 분해할 단백질에 '달라붙기만' 할 뿐, 직접 자르지는 않았습니다.

 

🧐 유비퀴틴 : "나 여기 있어요, 죽여주세요"

 

그들은 이 작은 단백질 APF-1의 정체를 추적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단백질은 박테리아부터 인간까지 거의 모든 생물체에, 거의 똑같은 구조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유비퀴틴(Ubiquitin)' 이 되었습니다. 라틴어로 '어디에나 있다(Ubiquitous)'는 뜻입니다.

세 과학자는 유비퀴틴이 하는 일을 밝혀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딱지 붙이기(Tagging)' 였습니다.

[ 죽음의 공정 ]

  1. 세포 안에 불량품이나 수명이 다한 단백질이 생깁니다.
  2. 효소들(E1, E2, E3)이 작동하여 이 단백질에 유비퀴틴을 꼬리표처럼 붙입니다.
  3.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유비퀴틴이 줄줄이 사탕처럼 여러 개 붙습니다 (폴리유비퀴틴). 이것이 바로 '죽음의 키스' 입니다.
  4. 유비퀴틴 꼬리표를 달고 있는 단백질은 세포 내의 분쇄기인 '프로테아좀(Proteasome)' 으로 끌려갑니다.
  5. 프로테아좀은 꼬리표(유비퀴틴)는 떼어내 재활용하고, 단백질만 쏙 집어넣어 아미노산 단위로 잘게 다져버립니다.

"유비퀴틴은 사형 선고장이다. 이 딱지가 붙은 단백질은 예외 없이 분쇄기로 끌려가 처형당한다."

왜 에너지가 필요했는지도 밝혀졌습니다. 멀쩡한 단백질을 실수로 죽이면 안 되기 때문에, 세포는 에너지를 써가며 아주 신중하고 정확하게 딱지를 붙였던 것입니다.

 

⚡️ 쓰레기 처리가 생명을 좌우한다

 

이들의 발견으로 생물학자들의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단백질 분해는 단순히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품질 관리(Quality Control)' 이자 '시스템 제어' 였습니다.

  1. 세포 주기 조절: 세포가 분열하려면 특정 단백질(사이클린)이 생겨야 하지만, 분열이 끝나면 즉시 사라져야 합니다. 유비퀴틴이 이들을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세포 분열이 멈추지 않아 '암(Cancer)' 이 됩니다.
  2. 면역 반응: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죽이려면 신호 물질이 나와야 하는데, 이 신호 조절기(IκB)를 유비퀴틴이 적절히 부숴줘야 면역이 작동합니다.
  3. 식물의 번식: 식물이 수정을 할 때도 자가수분을 막기 위해 특정 단백질을 유비퀴틴으로 제거합니다.

만약 이 쓰레기 처리 시스템이 고장 나면? 쓰레기 단백질이 뇌세포에 쌓이면 알츠하이머 치매파킨슨병이 되고, 반대로 너무 많이 부수면 자궁경부암이나 낭포성 섬유증 같은 병이 생깁니다.

 

🏆 노벨상 : "우리는 쓰레기통을 연구했습니다"

 

2004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아론 치에하노베르, 아브람 헤르슈코, 어윈 로즈에게 노벨 화학상을 수여합니다. 수상 이유는 "유비퀴틴 매개 단백질 분해의 발견" 이었습니다.

이들의 발견은 현대 의학의 가장 뜨거운 분야인 '표적 단백질 분해(TPD)' 기술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기존 약물은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유비퀴틴 시스템을 이용해 질병 원인 단백질을 아예 '분해해서 없애버리는' 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 TMI : 안식년의 기적

 

1. 휴가가 만든 노벨상

헤르슈코와 치에하노베르는 이스라엘에서 연구하다가, 안식년(Sabbatical)을 맞아 미국 필라델피아의 로즈 박사 연구실로 갔습니다. 그 짧은 여름방학 동안 세 사람이 집중적으로 토론하고 실험한 결과가 노벨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휴식이 아니라 몰입의 시간이 기적을 만든 셈입니다.

2.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벨케이드'

이들이 밝혀낸 원리를 이용해 만든 최초의 항암제가 '벨케이드(Bortezomib)' 입니다. 이 약은 암세포의 프로테아좀(분쇄기) 구멍을 틀어막습니다. 그러면 암세포 안에 쓰레기 단백질이 가득 차서, 암세포가 스스로 터져 죽게 만듭니다. 수많은 혈액암 환자를 살린 명약입니다.

3. 유비퀴틴의 이름값

'유비퀴틴'이라는 이름은 정말 잘 지은 이름입니다. 실제로 이 단백질은 진핵생물이라면 곰팡이든 사람이든 아미노산 서열이 거의 똑같을 정도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생명이 진화하는 동안 "이 시스템만큼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라고 합의한 것처럼 말이죠.

 

🌏 맺음말 : 잘 버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2004년 노벨상 수상자들은 우리에게 "생명은 생성만큼이나 소멸이 중요하다" 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필요 없어진 것, 고장 난 것, 낡은 것을 제때 정확하게 버리는 능력. 그 능력이 있어야만 세포는 항상 신선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속에서 1초에도 수백만 번씩 일어나는 '죽음의 키스'와 '분쇄'의 과정. 그것은 파괴가 아니라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가장 치열하고 정교한 노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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