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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5_[NEW] 노벨생리의학상

[1937 노벨생리의학상]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 파프리카 속에서 찾아낸 생명의 불꽃 — 비타민C와 세포 호흡

by 어셈블러 2026.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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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헝가리 파프리카 한 봉지와 노벨상

 

1937년의 어느 저녁, 헝가리 세게드(Szeged) 대학교의 연구실에서 한 과학자가 지역 시장에서 사온 빨간 파프리카 더미를 앞에 두고 밤새 실험에 몰두했다. 그는 이미 수년째 미지의 화합물을 추적하고 있었다. 괴혈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아무도 그 정체를 밝혀내지 못한 물질이었다.

파프리카에서 그는 엄청난 양의 그 물질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실험들이 확인되었다. 이 물질이 괴혈병을 치료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는 이 물질을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 즉 비타민 C라고 명명했다.

1937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이 발견과 함께, 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특정 유기산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또 다른 발견에 대한 공로로 얼베르트 센트죄르지에게 수여되었다. 그의 이름은 헝가리어로 Albert Szent-Györgyi이며, 영어권에서는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로도 알려져 있다.


 

🕰️ 영양 결핍과 세포 호흡의 수수께끼가 공존하던 시대

 

1930년대의 세계는 두 가지 큰 의학적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비타민C와 괴혈병이었다. 오랫동안 선원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괴혈병이 레몬이나 라임 주스로 예방된다는 것은 18세기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활성 물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괴혈병을 치료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비타민의 개념이 20세기 초에 등장하면서, 괴혈병의 원인이 특정 비타민의 결핍일 것이라는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그 비타민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두 번째는 세포 호흡의 메커니즘이었다. 오토 바르부르크가 1931년 노벨상을 받으며 세포가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산화 효소의 역할을 밝혔지만, 그 과정의 중간 단계들은 여전히 불분명했다. 세포 내에서 영양소가 최종적으로 이산화탄소와 물로 산화되기까지의 화학 반응 경로, 그 경로를 연결하는 중간 물질들이 무엇인지가 생화학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였다.

얼베르트 센트죄르지는 이 두 가지 수수께끼에 모두 도전하며, 각각에서 역사적인 발견을 이루어냈다.


 

🖊️ 전쟁과 방랑, 그리고 불굴의 연구자

 

1893년 9월 16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얼베르트 센트죄르지는 유복한 지주 집안 출신이었다. 삼촌 중 두 명이 著名한 해부학자였기 때문에, 가문의 학문적 분위기가 그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는 부다페스트 대학교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참전해야 했다.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며 지친 그는 1916년 자신의 팔을 총으로 쏘아 부상자로 위장하고 전선을 탈출했다. 나중에 그는 이 행동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전쟁에 대한 혐오를 표현했다.

전쟁 후 그는 학업을 재개하고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진짜 관심은 임상 의학이 아닌 기초 생화학 연구에 있었다.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여러 유럽 대학교와 연구소를 전전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 독일의 여러 연구소, 그리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케임브리지에서 그는 부신피질 추출물을 연구하다가 강한 환원력을 가진 미지의 물질을 발견했다. 그는 이 물질이 세포 내 산화-환원 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직감했지만, 충분한 양을 얻기가 어려웠다. 그는 이 물질을 일단 헥수론산(hexuronic acid)이라고 불렀다.

1930년 센트죄르지는 헝가리 세게드 대학교의 의학화학 교수로 부임했다. 이곳에서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세게드는 헝가리 특산물인 빨간 파프리카의 주요 산지였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식사 중에 아내가 내놓은 파프리카를 먹다가 문득 이 채소가 자신이 찾는 물질을 대량으로 함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실험실에서 파프리카를 분석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파프리카에는 레몬이나 오렌지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헥수론산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오렌지의 10배가 넘는 양으로. 그는 그날 밤 파프리카로 가득 찬 연구실에서 밤새 추출 작업을 진행했다. 며칠 만에 그는 1킬로그램이 넘는 순수한 헥수론산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 비타민C의 발견과 세포 호흡의 비밀

 

센트죄르지가 파프리카에서 대량으로 얻은 헥수론산은 정말로 괴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물질이었을까? 이를 확인하는 것은 그가 직접 한 것이 아니었다. 1932년, 그의 연구실에서 연구하던 조세프 스비에르베이(Joseph L. Svierbely)와 센트죄르지는 협력하여 헥수론산이 기니피그의 괴혈병을 예방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같은 시기 미국 피츠버그 대학교의 찰스 글렌 킹(Charles Glen King) 연구팀도 레몬에서 비타민C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킹과 센트죄르지 사이의 우선권 논쟁은 학계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센트죄르지는 1928년부터 이 물질을 분리했지만, 당시 그 물질이 괴혈병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실히 확인하지 못했다. 반면 킹은 치료 효과를 먼저 발표했다. 그러나 노벨 위원회는 센트죄르지의 더 광범위한 업적, 즉 이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규명하고 세포 호흡 연구까지 이어간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센트죄르지는 헥수론산이 기존에 알려진 설탕류의 구조와 유사하지만 강한 환원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 물질의 생리적 기능이 산화-환원 반응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는 이 물질이 괴혈병에 대항한다는 의미를 담아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 a- '~없이' + scorbus '괴혈병')이라고 새로 명명했다. 오늘날 우리가 비타민C라고 부르는 그 물질이다.

아스코르브산은 여러 생화학 반응에서 환원제 역할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콜라겐 합성 과정이다. 콜라겐은 피부, 혈관, 뼈 등 결합 조직의 주요 구성 성분인데, 이 콜라겐 분자가 적절히 형성되려면 특정 아미노산 잔기가 산화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 아스코르브산이 필요하다. 괴혈병 환자들이 잇몸에서 피가 나고 치아가 빠지며 상처가 낫지 않는 것은 콜라겐이 제대로 합성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비타민C가 없으면 몸이 문자 그대로 풀어지는 것이다.

센트죄르지의 두 번째 중요한 기여는 세포 호흡 연구였다. 그는 근육 조직에서 산소 소비를 연구하면서, 특정 유기산들이 산소 소비를 크게 촉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주목한 물질들은 석신산(succinic acid), 푸마르산(fumaric acid), 말산(malic acid), 옥살아세트산(oxaloacetic acid)이었다. 이 물질들은 모두 4개의 탄소를 가진 디카르복실산, 즉 C4-디카르복실산이었다.

센트죄르지는 이 물질들이 세포 내에서 순환하며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반응에서 촉매처럼 작용한다고 제안했다.

Succinate (석신산) → Fumarate (푸마르산) → Malate (말산) → Oxaloacetate (옥살아세트산) → ...

이 C4-디카르복실산의 촉매 역할에 대한 발견은 대단히 중요한 전조였다. 이것이 바로 한스 크렙스가 1937년에 발표하고 1953년 노벨상을 받게 되는 크렙스 회로(구연산 회로)의 핵심 부분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센트죄르지는 이 순환의 일부를 먼저 발견했고, 크렙스는 그 전체 그림을 완성했다.


 

🎬 경쟁과 인정, 복잡한 과학적 공로의 귀속

 

비타민C 발견을 둘러싼 센트죄르지와 찰스 글렌 킹의 경쟁은 과학사에서 우선권 논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킹은 레몬 주스에서 비타민C 활성을 보이는 물질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1932년 4월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센트죄르지와 스비에르베이의 논문은 같은 해에 발표되었지만 킹의 발표보다 몇 주 늦었다. 센트죄르지는 킹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으며 서둘러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킹은 완전히 독립적인 연구였다고 맞섰다.

노벨 위원회는 결국 센트죄르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센트죄르지는 1928년부터 이 물질을 연구했으며, 그것의 화학적 성질을 더 깊이 규명했다. 또한 그는 비타민C의 발견 외에도, C4-디카르복실산의 촉매 역할이라는 세포 호흡에 관한 독립적인 중요한 발견도 이루어냈다. 단순히 비타민C를 분리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맥락의 생화학적 이해에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센트죄르지는 비타민C라는 이름에 대해 자조적인 일화를 남겼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이 물질의 화학적 구조가 불분명했을 때, 「이그노수스산(ignorosic acid)」 또는 「고드노우수스산(godnose acid)」이라는 임시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다(god knows)는 뜻을 담아서. 영국의 당시 지도교수 프레데릭 홉킨스가 그 이름을 학술지에 게재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오렌지 주스에서 암 치료제까지, 비타민C의 여정

 

얼베르트 센트죄르지가 파프리카에서 추출한 아스코르브산, 즉 비타민C는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영양 보충제이자 의학적 관심의 대상이다.

가장 기본적인 응용은 괴혈병 예방이다. 현대에는 선진국에서 괴혈병은 거의 사라졌지만, 식이 제한이 심한 환자나 노숙자 집단에서 여전히 드물게 발생한다. 비타민C 결핍은 피부 이상, 잇몸 출혈, 상처 치유 지연, 면역 기능 저하 등으로 나타난다.

면역 기능 지원 측면에서 비타민C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혈구, 특히 호중구와 림프구는 비타민C를 고농도로 유지하며,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울 때 이를 활용한다. 감기 예방과 치료에 비타민C가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지만, 면역 기능 유지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항산화 효과도 중요하다. 비타민C는 강력한 항산화제로서 활성산소가 세포를 손상시키는 것을 방어한다. 이는 동맥경화증, 암, 노화 등 활성산소와 관련된 다양한 병리 과정을 늦추는 데 기여한다.

흥미로운 최근 연구 분야는 고용량 비타민C의 항암 효과다. 정맥 주사로 투여하는 고용량 비타민C(일반 경구 복용량의 수십 배)가 일부 암세포에 독성을 보인다는 임상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 메커니즘은 암세포 주변의 환경에서 과산화수소를 생성하여 암세포를 손상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가설이 연구되고 있다. 아직 확립된 치료법은 아니지만, 센트죄르지가 찾아낸 물질이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로운 생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콜라겐 합성과의 관계에서, 피부 미용 분야에서도 비타민C는 핵심 성분이다. 많은 화장품과 영양 보충제가 콜라겐 생성을 돕는다는 이유로 비타민C를 강조하는데, 이는 센트죄르지의 발견에 직접적으로 기반한다.


 

📝 끝없는 질문, 경계 없는 탐구자

 

얼베르트 센트죄르지의 이야기는 과학적 발견이 얼마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파프리카라는 일상적인 식품에서 세기의 발견을 이루어낸 것이 그 상징이다. 그는 자신이 탐구하는 대상의 본질에 집중했고, 그 단서가 어디에 있든 따라갔다.

그는 또한 과학의 경계에 갇히지 않았다. 비타민C를 발견한 생화학자가 세포 호흡의 메커니즘에 기여했고, 그 동일한 과학자가 이후 노년에는 암의 전자적 특성에 관한 이론을 연구하고, 핵무기 반대 운동에 참여하며, 의식의 물리적 기반에 대한 철학적 저술을 남겼다. 얼베르트 센트죄르지는 과학의 한 분과에 갇히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탐구자였다.

그는 1937년 노벨상 수상 후에도 계속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헝가리에서 나치와 소련의 점령 모두를 겪으며 체포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기도 했다. 전쟁 후에는 결국 미국으로 이주하여 매사추세츠 주 우즈홀(Woods Hole)의 해양생물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근육의 수축 메커니즘, 암의 생화학적 특성 등에 대한 연구를 평생 이어가다가 1986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파프리카 한 봉지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현대 의학의 한 축이 된 것처럼, 모든 위대한 발견의 씨앗은 아주 작고 평범한 곳에 숨어있다. 그 씨앗을 알아볼 눈과, 그것을 끝까지 추적할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 과학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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