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10_New Novel/313_[NEW] 노벨화학상

[1938 노벨화학상] 리하르트 쿤 : 나치의 명령을 거부한 과학자, 카로티노이드와 비타민 연구의 거장

by 어셈블러 2026. 5. 12.
728x90
반응형

1938년 10월,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노벨화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수상자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리하르트 쿤이었고, 수상 이유는 카로티노이드와 비타민 연구였습니다.

그러나 쿤은 그 영광을 직접 받을 수 없었습니다.

베를린의 나치 정부는 쿤에게 노벨상을 수락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1935년, 히틀러 정권은 반나치 운동가 카를 폰 오시에츠키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 것에 격분하여, 독일 시민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하는 법령을 만들어두었습니다. 쿤은 이 법령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상금도, 메달도, 증서도 받지 못했습니다.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1938년의 노벨화학상 시상식은 수상자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쿤은 뒤늦게 메달과 증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상금은 이미 재단으로 귀속된 후였습니다. 역사는 종종 이렇게 가장 뛰어난 업적에 가장 기구한 운명을 얹어놓습니다.


 

📜 빈의 천재 소년, 유기화학의 길을 걷다

 

리하르트 쿤은 1900년 12월 3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리하르트 클레멘스 쿤은 엔지니어였고, 어머니 안젤리카 로돌파는 교사였습니다.

어린 쿤은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주변을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발군의 재능을 보였고, 빈의 학교에서 항상 최상위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뮌헨에서 화학을 정복하다

 

1919년, 19살의 쿤은 뮌헨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당대 유기화학의 거장 리하르트 빌슈테터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빌슈테터는 이미 191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인물로, 엽록소와 색소 화학의 선구자였습니다.

쿤의 재능은 빠르게 빛을 발했습니다. 1922년, 불과 22세의 나이로 효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최우수 성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쿤은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취리히)에서 강사로 일하며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1929년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교수로 임명되었고, 동시에 카이저 빌헬름 의학연구소의 화학부장을 맡았습니다.

하이델베르크와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 이 두 자리는 쿤이 평생 연구를 수행한 거점이 되었습니다.


 

⚗️ 카로티노이드 연구 — 색깔 분자의 화학을 다시 쓰다

 

쿤의 핵심 연구 영역 중 하나는 카로티노이드 화학이었습니다.

 

알파, 베타, 감마 카로틴의 분리

 

당근의 색소인 카로틴은 실제로 하나의 화합물이 아니라 여러 이성질체의 혼합물입니다. 이것들을 서로 분리하는 것은 당시 화학자들이 씨름하던 어려운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쿤은 1931년 세계 최초로 알파카로틴, 베타카로틴, 감마카로틴을 서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흡착 크로마토그래피라는 기법을 발전시켰는데, 서로 다른 분자들이 흡착제에 달라붙는 정도의 차이를 이용해 분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분리 기술의 발전은 이후 생화학 연구 전반에 걸쳐 중요한 방법론이 되었습니다.

 

카로티노이드의 입체 화학

 

쿤의 더 깊이 있는 공헌은 카로티노이드 분자의 정밀한 화학 구조를 밝혀낸 것이었습니다. 카로티노이드는 긴 탄소 사슬에 교대로 단결합과 이중결합이 배열된 폴리엔 구조를 가집니다.

이 긴 공액 구조에서 이중결합이 각기 시스 배열인지 트랜스 배열인지에 따라 분자의 색깔과 성질이 달라집니다. 쿤은 이 입체 화학적 세부 사항들을 하나씩 밝혀냈고, 이를 통해 카로티노이드가 왜 그런 색깔을 띠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계의 카로티노이드 분포 연구

 

쿤은 또한 자연계에서 카로티노이드가 어디에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광범위하게 조사했습니다. 식물의 잎, 꽃, 열매, 동물의 피부와 깃털 — 자연계의 색깔을 만드는 이 분자들의 지도를 그린 것입니다.

이 연구는 생태학과 생물학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왜 어떤 식물은 붉은 열매를 맺는지, 왜 어떤 동물은 화려한 색깔을 갖는지 — 이 모든 것의 화학적 기초가 쿤의 연구로 더 명확해졌습니다.


 

🔬 비타민 B군의 화학적 정복

 

쿤의 또 다른 주요 연구 영역은 비타민 B군이었습니다. 특히 리보플라빈(비타민 B₂)과 피리독신(비타민 B₆)의 연구에서 중요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리보플라빈 합성

 

리보플라빈은 노란색의 형광 색소로, 당시 노란색 효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중요한 보조효소의 핵심 성분이었습니다. 이 물질이 세포의 에너지 대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정확한 화학 구조는 불명확했습니다.

쿤은 1935년 리보플라빈의 완전한 화학 구조를 밝혀냈고, 이를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이 업적은 파울 카러의 연구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으로, 두 연구 그룹이 경쟁적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쿤이 카러보다 며칠 앞서 발표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피리독신과 비타민 B₆

 

1938년, 쿤과 그의 팀은 피리독신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비타민의 구조를 밝혀내고 합성에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비타민 B₆였습니다.

비타민 B₆는 아미노산 대사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부족하면 피부염, 신경 이상, 빈혈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복용하는 비타민 B₆ 보충제는 쿤이 밝혀낸 합성법에 기반한 것입니다.


 

⚡ 나치즘과 과학 — 쿤의 선택

 

1938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쿤은 그러나 이 영예를 자유롭게 누릴 수 없었습니다. 나치 정권의 금지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쿤이 처한 상황은 복잡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지만 독일에서 연구하고 있었고, 1938년 3월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 사실상 독일 시민이 된 상태였습니다.

 

거절한 메달, 거절하지 못한 연구

 

나치 정권의 명령에 따라 쿤은 노벨상 수락을 거부했습니다. 혹은 더 정확히는, 수락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쿤의 상황은 같은 해 노벨생리의학상을 거부해야 했던 게르하르트 도마크, 이듬해인 1939년에 같은 처지에 놓인 아돌프 부테난트와 동일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쿤은 뒤늦게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상금은 되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노벨 재단의 규정에 따르면 상금은 일정 기간 내에 수령하지 않으면 재단에 귀속됩니다.

 

전쟁 중의 연구

 

전쟁 기간 동안 쿤의 연구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 그가 나치 독일의 군사 프로그램과 얼마나 관련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논쟁이 있습니다.

전후 쿤은 하이델베르크로 돌아와 막스 플랑크 의학 연구소의 화학부장으로 1963년까지 재직했고, 과학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 뒤늦게 받은 영예 — 그러나 빛을 잃지 않은 업적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리하르트 쿤은 드디어 1938년 노벨화학상의 메달과 증서를 받았습니다.

 

 

"카로티노이드와 비타민에 관한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7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직접 받게 된 상이었지만, 그 업적의 가치는 조금도 바래지 않았습니다.

쿤의 연구가 화학에 미친 영향은 여러 방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카로티노이드 화학의 체계화입니다. 그는 수십 종의 카로티노이드를 분리, 정제, 구조 해명하여 이 분야에 체계적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오늘날 건강식품 시장에서 항산화제로 판매되는 베타카로틴, 루테인, 제아잔틴 등은 모두 쿤이 개척한 카로티노이드 화학의 열매입니다.

둘째, 비타민 B군의 구조 해명과 합성입니다. 리보플라빈과 피리독신의 화학적 정체를 밝혀냄으로써, 이 중요한 영양소들을 대량 생산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셋째, 크로마토그래피 기술의 발전입니다. 카로티노이드를 분리하기 위해 발전시킨 흡착 크로마토그래피 기술은 이후 생화학과 분석 화학 전반에 걸쳐 표준 기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 역사가 빚진 과학자들 — 나치 금지령의 희생자들

 

쿤 외에도 나치의 노벨상 수상 금지 명령으로 인해 제때 영예를 받지 못한 과학자들이 있었습니다.

1938년 의학상을 받은 게르하르트 도마크, 1939년 화학상을 받은 아돌프 부테난트도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전쟁이 끝난 후에야 뒤늦게 메달과 증서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들은 과학적 업적이 정치적 압력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그 압력 속에서도 과학 자체가 가진 진실의 가치는 억압될 수 없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나치가 금지한 것은 노벨상 수상이었지, 그 연구 업적 자체를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쿤의 카로티노이드 연구와 비타민 연구는 세계 과학사의 기록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 리하르트 쿤이 남긴 것

 

리하르트 쿤은 1967년 7월 31일, 67세의 나이로 하이델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삶은 뛰어난 과학적 업적과 역사의 무거운 그림자가 함께 드리워진 복잡한 이야기였습니다. 22살에 박사 학위를 받은 조기 성취자이자, 나치 독일의 연구 체계 속에서 살아야 했던 과학자이자, 수상 당시 노벨상을 받지 못했던 억울한 수상자.

하지만 과학사는 그를 기억합니다. 자연의 색깔을 화학의 언어로 번역하고,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비타민의 화학적 정체를 밝혀낸 연구자로서.

빈의 거리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은, 결국 분자 수준에서 생명의 화학을 이해하는 거대한 지적 탐험의 일부였습니다. 그 탐험의 결실은 오늘날 우리 모두의 식탁 위에, 그리고 약국의 선반 위에 놓여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