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8년,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는 동물의 부신에서 강력한 항산화 물질을 분리해냈습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일단 헥수론산이라는 이름을 붙여두었습니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는 월터 노먼 호어스가 탄수화물 분자들이 어떤 모양으로 고리를 이루는지를 정밀하게 밝혀내고 있었습니다. 설탕과 전분, 셀룰로오스 속에 숨어 있던 화학적 진실을 하나씩 밝혀가던 그에게, 어느 날 센트죄르지의 신비로운 물질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파울 카러가 당근의 노란색을 만드는 베타카로틴의 구조를 해독하고, 그것이 체내에서 비타민 A로 변환된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연구 흐름이 하나의 큰 강으로 합쳐지는 곳에 1937년 노벨화학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호어스와 카러 두 사람이었고, 그들이 함께 풀어낸 것은 비타민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생명의 화학이었습니다.
📜 월터 노먼 호어스 — 영국 목수의 아들, 탄수화물 화학의 거장이 되다
월터 노먼 호어스는 1883년 3월 19일, 영국 랭커셔 주 초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목수 일을 하는 평범한 노동자였고,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호어스는 학업보다 아버지의 일을 돕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정규 교육의 기회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역의 리놀륨 공장에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적 갈망은 쉽게 꺼지지 않았습니다. 독학으로 공부하며 자격을 갖춰나간 그는 결국 맨체스터 대학교에 입학하여 화학을 공부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뒤늦은 출발이었지만, 일단 시작하자 그의 재능은 폭발적으로 발휘되었습니다.
괴팅겐에서의 비약
맨체스터에서 학사 학위를 마친 호어스는 독일 괴팅겐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당시 괴팅겐은 세계 화학 연구의 중심지 중 하나였고, 오토 발라흐라는 저명한 유기 화학자가 있었습니다.
발라흐 밑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호어스는 영국으로 돌아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더럼 대학교를 거쳐 버밍엄 대학교에 정착했습니다. 버밍엄에서 그는 자신의 일생 연구 주제인 탄수화물 화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 탄수화물의 언어를 해독하다 — 호어스 투영식의 탄생
탄수화물은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입니다. 설탕, 전분, 셀룰로오스 — 이것들이 모두 탄수화물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어떤 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는 20세기 초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환형 구조의 발견
당시 화학자들은 포도당 같은 단당류가 직선형 구조를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선형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있었습니다. 포도당을 물에 녹이면 서서히 광학 회전값이 변하는 현상이 있었는데, 직선형 분자로는 이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호어스는 이 수수께끼에 도전했습니다. 그는 정밀한 실험과 분석을 통해 포도당이 실제로는 6원자 고리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포도당 분자 속의 산소 원자가 탄소 체인의 양쪽을 연결해 고리를 형성하는 구조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피라노오스 형태입니다. 알파형과 베타형이 서로 평형을 이루며 전환되는 현상, 즉 변광회전이 이 고리 구조로 설명되었습니다.
호어스 투영식
분자의 3차원 고리 구조를 2차원 종이에 어떻게 표현할까요? 호어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창적인 표기법을 고안했습니다. 당 분자의 고리를 평면으로 나타내고, 고리 평면 위쪽과 아래쪽에 수소와 수산기를 배치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호어스 투영식입니다. 이 표기법은 오늘날 전 세계 화학 교과서에서 당류 구조를 표현하는 표준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호어스의 이름은 이렇게 화학의 언어 속에 영원히 새겨졌습니다.
이당류와 다당류 구조 해명
호어스의 연구는 단당류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설탕(자당), 맥아당, 젖당 등 이당류의 구조를 밝혀냈고, 더 나아가 전분과 셀룰로오스 같은 다당류의 분자 구조를 해명했습니다.
특히 셀룰로오스가 베타-글루코오스의 1-4 결합으로 이루어진 직선형 고분자라는 것, 그리고 전분의 아밀로오스 성분은 알파-글루코오스의 1-4 결합으로, 아밀로펙틴은 1-4 결합과 1-6 결합이 혼재하는 가지형 구조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같은 포도당으로 이루어진 전분과 셀룰로오스가 왜 이렇게 다른 성질을 가지는지 — 전분은 소화가 되고 셀룰로오스는 소화가 안 되는지 — 가 바로 알파 결합과 베타 결합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호어스가 밝혀낸 것입니다.
💡 비타민 C의 화학적 정체 — 헥수론산에서 아스코르브산으로
탄수화물 연구의 대가가 된 호어스에게 새로운 도전이 찾아온 것은 1930년대 초였습니다.
헝가리 출신 생화학자 알베르트 센트죄르지가 고양이의 부신과 파프리카에서 분리한 신비로운 항산화 물질 — 그가 헥수론산이라고 부른 그것이 바로 비타민 C인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구조 해명과 합성
호어스는 센트죄르지의 물질을 분석하여 그것이 6탄소 화합물이며 강한 환원력을 가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정밀한 구조 분석을 통해 이 물질의 정확한 분자 구조를 밝혀냈습니다.
더 나아가 1933년, 호어스와 그의 팀은 이 물질을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비타민이 인공적으로 합성된 순간이었습니다.
호어스는 이 물질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습니다. 괴혈병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아스코르브산이라고. 아스코르브는 괴혈병을 뜻하는 스코르버스에 '반대'를 의미하는 접두사 a를 붙인 것입니다.
비타민 C, 즉 아스코르브산의 분자식은 C₆H₈O₆입니다.
비타민 C가 인류에게 가져온 것
괴혈병은 수백 년 동안 장거리 항해를 하는 선원들의 공포였습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 없이 수개월을 바다 위에서 지내다 보면 잇몸이 붓고 이가 빠지며 결국 사망에 이르는 이 병의 원인이 비타민 C 결핍임을 이미 18세기부터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화학적 정체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습니다.
호어스의 연구로 비타민 C의 정확한 구조가 밝혀지고 합성이 가능해지자, 대량 생산의 길이 열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약국에서 사는 비타민 C 알약들은 호어스의 연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파울 카러 — 모스크바 태생의 스위스 화학자, 비타민을 그리다
1937년 노벨화학상의 또 다른 수상자인 파울 카러는 1889년 4월 2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스위스인 아버지를 둔 그는 어린 시절 스위스로 돌아와 취리히에서 자랐습니다.
카러는 취리히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했고, 1911년 알프레드 베르너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베르너는 1913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착물 화학의 선구자였습니다.
박사 학위 후 카러는 잠시 파울 에를리히의 연구소에서 일했는데, 에를리히는 화학 물질을 이용한 세균 치료라는 혁명적 개념을 개척한 화학 요법의 아버지였습니다. 이 경험은 카러에게 화학과 생물학의 경계에서 연구하는 시각을 심어주었습니다.
1919년, 카러는 취리히 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임명되어 평생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 카로티노이드의 비밀을 풀다 — 색깔 속의 화학
당근은 왜 주황색일까요? 토마토는 왜 빨간색이고, 시금치는 왜 초록색일까요?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의 답을 화학적으로 밝혀낸 것이 바로 파울 카러였습니다.
카로티노이드란
카로티노이드는 자연계에서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을 만드는 색소 분자들의 총칭입니다. 당근의 베타카로틴, 토마토의 라이코펜, 새우의 빨간색을 만드는 아스타잔틴 등이 모두 카로티노이드입니다.
이 물질들은 19세기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 정확한 화학 구조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습니다. 카로티노이드는 매우 불안정하여 분리와 분석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카러의 구조 해명
카러는 정밀한 분석 기술을 이용해 1930년 베타카로틴의 화학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냈습니다. 베타카로틴은 40개의 탄소 원자와 56개의 수소 원자로 이루어진 긴 사슬 구조(C₄₀H₅₆)를 가지고 있으며, 양쪽 끝에 6원자 고리가 달린 형태였습니다.
이 긴 사슬 구조에는 교대로 배열된 단결합과 이중결합이 있는데, 이 공액 구조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여 주황색으로 보이게 합니다. 색깔의 화학적 비밀이 밝혀진 순간이었습니다.
비타민 A와의 연결
카러의 더 중요한 발견은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A의 관계였습니다.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이 생기고 성장이 저해된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비타민 A가 정확히 어떤 물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카러는 1931년 비타민 A의 화학 구조를 밝혀냈습니다. 그것은 베타카로틴 분자가 정확히 절반으로 쪼개진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우리 몸 속에서 베타카로틴이 중간에서 쪼개져서 비타민 A 두 분자가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당근을 먹으면 그 속의 베타카로틴이 체내에서 비타민 A로 변환되는 이 과정의 화학적 기초를 카러가 밝혀낸 것입니다.
리보플라빈과 비타민 B2
카러의 연구는 카로티노이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란색 색소인 플라빈 화합물들의 구조도 연구했고, 그 중에서 비타민 B₂(리보플라빈)의 화학 구조를 밝혀 실험실에서 합성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리보플라빈은 세포 호흡에 필수적인 보조효소(FAD, FMN)의 구성 성분으로, 에너지 대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 1937년 노벨화학상 — 비타민 화학의 완성
1937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월터 노먼 호어스와 파울 카러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호어스에게는 탄수화물 구조 연구와 비타민 C 합성이, 카러에게는 카로티노이드와 플라빈, 그리고 비타민 A와 B₂ 연구가 수상 이유였습니다.
호어스에게: "탄수화물과 비타민 C에 관한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카러에게: "카로티노이드, 플라빈, 비타민 A와 B₂에 관한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이 두 수상은 1930년대 화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던 비타민 연구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
비타민 연구의 황금기
1930년대는 비타민 연구의 전성기였습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비타민 연구가 1930년대에 이르러 폭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10년 사이에 주요 비타민들의 구조가 하나씩 밝혀지고 합성되었습니다.
이 연구들이 가져온 실용적인 가치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괴혈병, 각기병, 구루병, 야맹증 같은 결핍 질환들의 화학적 원인이 밝혀지고, 예방과 치료가 가능해졌습니다.
✍️ 두 거장의 후반생
호어스는 1937년 노벨상 수상 후에도 왕성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영국 정부를 위해 페니실린 생산 관련 연구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50년 3월 19일, 공교롭게도 자신의 67번째 생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카러는 취리히 대학교에서 1959년까지 교수직을 유지했고, 생애 말년까지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1971년 6월 18일,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비타민 화학이 바꾼 세상
호어스와 카러가 개척한 비타민 화학이 현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보면, 그 스케일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됩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매일 수억 개의 비타민 보충제가 소비됩니다. 비타민 C, 비타민 A, 비타민 B군 — 이것들을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것은 호어스와 카러, 그리고 그 동시대 과학자들이 화학 구조를 밝혀내고 합성법을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의 아동 영양 결핍 문제 해결에도 비타민 화학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타민 A 결핍은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아동에게 실명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데, 비타민 A 보충 프로그램이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화학적 토대를, 영국 목수의 아들 호어스와 러시아 태생의 스위스 화학자 카러가 함께 닦은 것입니다.
당근의 주황색, 시금치의 초록색, 레몬의 새콤한 맛 속에 담긴 화학적 진실을 밝혀낸 두 사람. 그들의 연구는 눈에 보이는 자연의 색깔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구조를 읽어낸 놀라운 지적 모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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