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8년 12월, 스톡홀름.
아돌프 오토 라인홀트 빈다우스가 노벨화학상 시상대에 오를 때, 과학계는 이미 그가 이룬 업적의 깊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전년도 수상자 하인리히 빌란트가 담즙산의 구조를 연구했다면, 빈다우스는 그와 짝을 이루듯 스테롤의 구조를 파고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연구를 의식하며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결국 스테로이드 화학이라는 거대한 영토를 함께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빈다우스의 연구에는 더욱 극적인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테롤 구조를 연구하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를 발견했습니다 — 콜레스테롤이 햇빛을 받으면 비타민 D로 변환된다는 것. 뼈를 굳히고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 D가 우리 피부 속 콜레스테롤에서 탄생한다는 이 사실은, 당시 화학계를 놀라게 한 발견이었습니다.
🏆 수상 이유 — 스테롤과 비타민 연구
"for the services rendered through his research into the constitution of the sterols and their connection with the vitamins"
스테롤의 구조 및 비타민과의 연관성 연구 — 이 수상 이유는 빈다우스의 두 가지 핵심 공헌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콜레스테롤을 비롯한 여러 스테롤의 화학 구조를 해명하는 데 기여한 것, 둘째는 스테롤과 비타민 D 사이의 연결 — 콜레스테롤의 전구체인 에르고스테롤이 자외선을 받으면 비타민 D로 전환된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이 두 업적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스테롤의 구조를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비타민 D와의 연결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구조화학의 정밀성이 생물학적 중요성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사례였습니다.
📜 베를린의 화학자 — 빈다우스의 생애
아돌프 오토 라인홀트 빈다우스는 1876년 12월 25일(크리스마스!),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베를린의 직물 제조업자였습니다. 어린 빈다우스는 처음에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청소년 시절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면서 화학을 배웠고, 점점 화학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1895년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곧 화학으로 전향했습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에밀 피셔의 강의를 들으면서 화학 연구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189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15년 인스브루크 대학교를 거쳐, 1915년 괴팅겐 대학교 화학 교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괴팅겐에서 1944년까지 연구하며 스테롤과 비타민 화학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미다졸에서 스테롤로
빈다우스의 초기 연구는 이미다졸 화합물(히스티딘의 고리 부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연구로 처음 화학계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1900년대 초반 그는 콜레스테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이 주제가 그의 평생 연구 과제가 되었습니다.
⚗️ 콜레스테롤과 스테롤 연구 — 복잡한 퍼즐
콜레스테롤은 1784년에 처음 담석에서 분리된 이후 100년 이상 화학자들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까지도 콜레스테롤의 정확한 구조는 수수께끼였습니다.
콜레스테롤의 분자식은 C₂₇H₄₆O. 탄소 27개, 수소 46개, 산소 1개로 이루어진 이 분자의 정확한 3차원 구조를 밝히는 것은 당시 유기화학의 가장 어려운 도전 중 하나였습니다.
체계적인 구조 분석
빈다우스는 화학 반응을 이용한 구조 분석에 체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다양한 시약으로 콜레스테롤을 처리하여 여러 유도체를 만들고, 그 유도체들의 성질을 분석했습니다. 산화 분해 반응으로 분자를 더 작은 조각들로 자르고, 그 조각들의 구조를 파악하여 원래 분자의 구조를 재구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빈다우스는 콜레스테롤과 담즙산(빌란트가 연구한)이 같은 스테로이드 고리 골격을 공유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즉 두 사람의 연구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빈다우스는 에르고스테롤이라는 식물성 스테롤의 구조도 분석했습니다. 에르고스테롤은 효모와 곰팡이에 풍부한 스테롤로, 콜레스테롤과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르고스테롤과 비타민 D의 연결 — 역사적 발견
1920년대 초반, 영국의 에드워드 멜란비가 구루병(rickets, 뼈가 약해지고 변형되는 질병)이 식이 결핍으로 인한 것임을 동물 실험으로 밝혔습니다. 1922년 엘머 맥컬럼은 이 항구루병 인자를 비타민 D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햇빛을 받으면 구루병이 예방된다는 것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햇빛과 비타민 D는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요?
빈다우스는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연구했습니다. 그는 에르고스테롤을 자외선에 노출시키면 항구루병 효과가 있는 물질이 생성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927~1928년 사이에 빈다우스는 자외선 조사를 받은 에르고스테롤로부터 비타민 D₂(에르고칼시페롤)가 생성됨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피부 속의 7-데하이드로콜레스테롤(콜레스테롤의 전구체 중 하나)이 햇빛의 자외선에 의해 비타민 D₃(콜레칼시페롤)로 변환된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스테롤 구조 → 자외선 → 비타민 D 이 연결은 다음과 같은 화학적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집니다.
에르고스테롤이나 7-데하이드로콜레스테롤은 B고리에 공액 이중 결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외선이 이 이중 결합에 흡수되면 B고리가 열리는 광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이것이 비타민 D의 전구체로 변환됩니다. 이후 열이온화 반응을 통해 최종적으로 비타민 D가 완성됩니다.
이 발견은 피부가 왜 햇빛을 쬐어야 하는지, 왜 북위도 지방 사람들이 비타민 D 결핍에 걸리기 쉬운지를 화학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 비타민 D의 의미 — 뼈, 면역, 그리고 그 이상
빈다우스가 밝혀낸 비타민 D의 화학적 본질은 현대 의학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칼슘 흡수와 뼈 건강
비타민 D의 가장 잘 알려진 기능은 칼슘 흡수 촉진입니다.
비타민 D₃는 간과 신장에서 순차적으로 수산화되어 칼시트리올(1,25-디하이드록시비타민 D₃)이라는 활성형으로 변환됩니다. 칼시트리올은 소장에서 칼슘 흡수 단백질의 합성을 촉진하고, 신장에서 칼슘 재흡수를 증가시킵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칼슘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뼈가 약해집니다. 어린이에서는 구루병으로, 성인에서는 골연화증으로 나타납니다.
면역 기능
최근 연구들은 비타민 D가 면역 기능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면역 세포들에 비타민 D 수용체가 있으며, 비타민 D는 면역 반응을 조절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간 동안, 비타민 D 결핍이 COVID-19 중증화와 관련이 있다는 여러 연구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암 예방 가능성
역학 연구들은 비타민 D 수준이 낮은 집단에서 일부 암(대장암, 유방암 등)의 발생률이 높다는 상관관계를 보고합니다. 비타민 D가 세포 증식과 분화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 기전으로 제시됩니다.
🌍 빈다우스의 후반 생애
노벨상을 받은 후에도 빈다우스는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의 연구 방향은 비타민 D 외에도 식물 성분들의 화학 구조로 확장되었습니다.
1944년 괴팅겐 대학교에서 퇴임한 후에도 계속 연구에 관여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혼란이 독일 과학계에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을 지켜보면서, 빈다우스는 만년을 보냈습니다.
1959년 6월 9일, 빈다우스는 괴팅겐에서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테로이드 화학의 위대한 계보
빈다우스와 빌란트의 스테롤 연구는, 이후 다음과 같은 중요한 발전들로 이어졌습니다.
아돌프 부테난트는 성호르몬(에스트론, 안드로스테론, 프로게스테론)을 분리하고 구조를 밝혀 1939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타데우스 라이히슈타인은 부신 피질 호르몬을 합성하여 195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러셀 마커는 식물 사포닌에서 프로게스테론을 대량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현대 경구 피임약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 모든 발전의 출발점에 빈다우스와 빌란트의 스테롤 연구가 있었습니다.
콜레스테롤 한 분자 속에 담긴 네 개의 고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수십 년을 바친 화학자들의 집요함 — 그 집요함이 결국 비타민, 호르몬, 의약품의 세계로 이어지는 거대한 지도를 완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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