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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_New Novel/311_[NEW] 노벨물리학상

[1933 노벨물리학상] 에르빈 슈뢰딩거 · 폴 A.M. 디랙 : 고양이와 반물질 — 양자역학의 두 언어를 만든 두 천재

by 어셈블러 2026.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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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노벨상 시상식장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에르빈 슈뢰딩거, 46세. 오스트리아 출신의 물리학자. 파동 방정식으로 원자 속 전자의 운동을 기술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붙은 고양이 —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 — 는 양자역학의 아이러니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비유가 되었습니다.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 31세. 영국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한 디랙 방정식을 세웠습니다. 그 방정식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것 — 반물질 — 을 예언했고, 그것이 실제로 발견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물리학자였습니다. 슈뢰딩거는 사교적이고, 언어를 사랑하고, 철학을 즐겼습니다. 디랙은 극도로 과묵하고, 수식을 통해서만 소통하기를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세계를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원자 속의 전자들이 사는 양자의 세계.

그들의 업적은 별개였지만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이 원자의 파동 언어를 만들었다면, 디랙의 방정식은 그 언어를 상대성이론까지 확장하고, 그 과정에서 반물질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습니다.


 

📜 파트 1. 에르빈 슈뢰딩거 — 파동으로 원자를 기술하다

 

에르빈 루돌프 요제프 알렉산더 슈뢰딩거는 188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식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화학도 공부했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영국계와 오스트리아계의 혼혈로 여러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슈뢰딩거가 어릴 때부터 과학과 철학, 언어에 두루 뛰어났던 것은 이런 가정 환경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빈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포병 장교로 복무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물리학 논문을 썼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학계로 돌아와 주르히, 브레슬라우를 거쳐 1921년 취리히 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1921~1926년 취리히에서의 5년이 슈뢰딩거의 결정적인 시기였습니다. 그는 당시 드 브로이의 물질파 개념에 주목했습니다. 1924년 루이 드 브로이는 전자 같은 입자도 파장을 가질 수 있다는 혁명적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슈뢰딩거는 여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전자가 파동이라면, 원자 속 전자를 파동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있지 않을까?

1926년 초, 슈뢰딩거는 단 몇 달 사이에 연이어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이었습니다.

이 방정식은 전자의 파동함수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기술합니다. 그 해를 구하면 원자 속에서 전자가 어디에 존재할 확률이 높은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보어의 원자 모형이 설명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름답게 설명해냈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수소 원자에 적용하면 보어 모델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스펙트럼선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헬륨, 리튬 같은 원자들의 에너지 준위도, 화학 결합의 특성도 설명했습니다. 화학이 물리학의 언어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 가장 유명한 사고 실험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 — 관측 전에는 여러 상태의 중첩이 존재한다 — 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이러니입니다. 파동 역학을 만든 사람이, 그 이론의 표준 해석에 반대했다는 것이.

슈뢰딩거는 이 해석의 이상함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유명한 사고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193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와 방사성 물질을 넣습니다. 방사성 물질이 1시간 이내에 붕괴할 확률은 50%입니다. 붕괴하면 가이거 계수기가 감지하고, 그것이 독가스 장치를 작동시켜 고양이가 죽습니다. 붕괴하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아있습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 방사성 물질은 붕괴한 상태와 붕괴하지 않은 상태의 중첩입니다. 그렇다면 고양이도 죽어있는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의 중첩인가?

슈뢰딩거의 의도는 이 해석이 거시 세계에 적용될 때 얼마나 터무니없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죽어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고양이란 상식에 완전히 반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가장 유명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슈뢰딩거가 이론의 문제점을 드러내려고 만든 비유가, 이론의 핵심을 설명하는 데 가장 자주 인용되는 비유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은 여전히 활발히 논의됩니다. 다세계 해석, 의식의 역할, 결어긋남 이론 — 양자역학의 해석 문제는 9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열려있습니다.

 

슈뢰딩거의 생물학으로의 전환 — 생명이란 무엇인가

 

슈뢰딩거는 노년에 생물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1943년 더블린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1944년 출판한 책이 '생명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이 책에서 슈뢰딩거는 물리학의 언어로 생명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유전 정보가 어떻게 저장되고 전달되는지를 물리학과 화학의 관점에서 분석했습니다. 그는 유전 정보가 '비주기적 결정'이라는 분자 구조에 담겨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이 책이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왓슨은 이 책을 읽고 유전 물질의 구조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두 사람은 1953년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했습니다. 슈뢰딩거가 예측한 '비주기적 결정'이 바로 DNA였던 것입니다.

한 물리학자의 책이 분자생물학의 방향을 바꾼 사례입니다. 물리학과 생물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나온 결실이었습니다.


 

📜 파트 2. 폴 디랙 — 반물질을 예언한 침묵의 천재

 

폴 에이드리언 모리스 디랙은 1902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샤를 디랙은 스위스 제네바 출신으로 브리스톨에서 프랑스어 교사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영국인 플로렌스 홀턴. 아버지는 아이들이 집에서 프랑스어로만 대화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영어를 쓰고 싶으면 따로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디랙은 나중에 이것이 자신을 과묵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라고 회고했습니다. 프랑스어로 자신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예 말을 줄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디랙은 극도로 말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비공식 농담으로 '디랙'이라는 단위를 사용했습니다 — 시간당 한 마디를 1디랙이라고. 학회에서 누군가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하면 디랙은 아무 말 없이 다음 주제로 넘어갔습니다. 자신이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인지, 설명을 해달라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질문이 아니니 대답이 필요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1928년 역사적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디랙 방정식 — 상대성과 양자역학의 통합

 

슈뢰딩거 방정식은 비상대론적이었습니다. 전자가 빛의 속도에 비해 훨씬 느릴 때는 잘 맞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에는 적용할 수 없었습니다.

디랙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한 방정식을 세우려 했습니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상대성이론의 에너지-운동량 관계식은 에너지의 제곱에 비례하는데, 양자역학에서 에너지는 미분 연산자와 관련됩니다. 제곱의 제곱근을 취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까다롭습니다.

디랙은 이 제곱근을 취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행렬을 이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디랙 방정식입니다.

디랙 방정식은 여러 놀라운 결과를 자동적으로 내놓았습니다. 첫째, 전자의 스핀이 자연스럽게 등장했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에서는 스핀을 별도로 손으로 집어넣어야 했는데, 디랙 방정식에서는 방정식 자체에서 스핀이 나왔습니다. 둘째, 전자의 자기 모멘트가 올바르게 예측되었습니다. 이것이 당시 실험으로 측정된 값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정식에는 예상치 못한 해가 있었습니다. 음의 에너지를 가진 전자 상태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반물질의 예언

 

1931년 디랙은 이 음의 에너지 해를 결정적으로 해석했습니다. 그것은 전자와 같은 질량을 가지지만 반대의 전하를 가진 입자의 존재를 의미했습니다. 전자의 반물질 파트너 — 나중에 양전자라고 불리게 될 것.

이 예측은 1932년 칼 앤더슨이 우주선 실험에서 양전자를 발견하면서 완벽하게 확인되었습니다.

디랙 방정식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순수 수학적 추론으로 새로운 물질의 존재를 예측한 사례였습니다. 그것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반물질을.

더 나아가 디랙 방정식의 대칭성은, 모든 입자에 대응하는 반입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했습니다. 양성자의 반입자인 반양성자, 중성자의 반입자인 반중성자. 이것들은 나중에 모두 발견되었습니다.

디랙은 왜 우주가 물질로 가득 차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겼습니다. 방정식의 대칭성으로 보면 빅뱅에서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주에는 물질만 있고 반물질은 거의 없습니다. 이 비대칭은 현대 물리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입니다.

 

디랙의 수학 미학

 

디랙은 물리학 법칙은 수학적으로 아름다워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미학적 원칙이 그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신은 고급 수학을 사용해서 우주를 만들었다."

 

 

디랙은 수학적 아름다움 그 자체를 진리를 찾는 안내자로 삼았습니다. 방정식이 아름답지 않으면, 설령 실험 데이터와 맞더라도 근본적인 이론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방정식이 아름다우면, 실험과 아직 맞지 않더라도 올바른 방향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위험한 방법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디랙에게는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직관이 수학적 아름다움을 통해 자연의 진실을 가리킨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경우에 그것이 옳았습니다.

디랙이 말년에 후회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양자전기역학에서 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규격화라는 수학적 기교를 도입했는데, 이것이 수학적으로 아름답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실험과는 놀랍도록 잘 맞았지만, 그는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이 의심이 지금도 물리학자들이 완전한 이론을 찾는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 파트 3. 1933년 노벨상 — 양자역학의 두 언어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은 에르빈 슈뢰딩거와 폴 디랙이 공동으로 받았습니다. 1932년 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와 함께, 3년 연속으로 양자역학의 창시자들이 수상한 것입니다.

그 시상식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1932년 상이 실제로는 1933년에 수여되었기 때문에, 세 사람이 같은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양자역학을 만든 세 거장이 같은 날 스톡홀름에 서 있었습니다.

 

 

"원자 이론의 새로운 생산적 형태의 발견에 대하여"

 

 

흥미로운 사실은, 디랙이 처음에 노벨상 수상을 거절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유명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러더퍼드가 거절하면 더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설득하자 받아들였습니다.

슈뢰딩거도 나름의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그해 그는 나치 독일을 피해 이미 독일을 떠나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국적이었지만, 나치의 영향이 오스트리아에도 미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노벨상 수상이 그에게 국제적 명성과 안전을 동시에 제공했습니다.

 

두 이론의 관계 —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

 

행렬 역학과 파동 역학은 처음에는 경쟁하는 이론처럼 보였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은 추상적 수학 구조였고,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은 직관적인 파동 그림을 제공했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의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슈뢰딩거는 행렬 역학이 물리적 그림이 없는 공허한 수학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는 파동 역학이 관측 불가능한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다룬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1926년 말, 슈뢰딩거 자신과 디랙이 두 이론이 수학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두 형식은 서로 보완하며 발전했습니다. 계산하기 쉬운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물리학자들은 때로는 파동 역학을, 때로는 행렬 역학을 사용합니다.


 

📜 파트 4. 나치 치하와 망명 — 두 사람의 다른 길

 

슈뢰딩거와 디랙은 1933년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슈뢰딩거는 1933년 나치 독일의 분위기에 혐오를 느끼고 독일을 떠났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나치즘을 거부했습니다. 옥스퍼드로 갔다가 이후 그라츠, 그리고 아일랜드 더블린의 고급연구소로 옮겼습니다.

더블린에서 1939년부터 1956년까지 연구한 슈뢰딩거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환경에서 이론물리학과 철학의 경계에 있는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가 이 시기의 결실입니다. 아일랜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슈뢰딩거는 전쟁의 직접적 소용돌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1961년 빈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원한 대로 고향 빈으로 돌아와 생을 마쳤습니다.

디랙은 케임브리지에서 루카시안 교수직을 유지했습니다. 뉴턴이 한때 앉았던 자리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는 전쟁 중 영국에서 원자폭탄 프로젝트인 튜브 앨로이스에 일부 관여했지만, 주로 이론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전후 디랙은 양자전기역학의 발전을 지켜보았습니다. 파인먼, 슈윙거, 도모나가가 재규격화 기법을 완성해 양자전기역학을 역사상 가장 정밀한 이론으로 만들었습니다. 디랙은 이 발전이 놀랍도록 성공적이지만 근본적으로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디랙은 1971년 케임브리지를 떠나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1984년 8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파트 5. 슈뢰딩거 방정식과 디랙 방정식의 현대적 응용

 

두 방정식은 오늘날 세상 곳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화학과 재료과학의 기초입니다. 원자와 분자의 에너지 준위, 화학 결합의 특성, 분자의 구조 — 이 모든 것이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계산됩니다. 양자화학이라는 분야 전체가 슈뢰딩거 방정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약물 개발에서도 슈뢰딩거 방정식이 쓰입니다. 새로운 약물 분자가 표적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컴퓨터로 계산할 때, 그 바탕에 슈뢰딩거 방정식이 있습니다.

반도체의 설계도 양자역학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트랜지스터의 전자 전도 특성, 레이저 다이오드의 발광 원리, 태양전지의 광전 효과 — 이 모든 것이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계산됩니다.

디랙 방정식은 입자물리학의 토대입니다. 표준 모형은 디랙 방정식의 확장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쿼크, 렙톤 같은 기본 입자들의 행동은 모두 디랙 방정식의 원리에 따라 기술됩니다.

그리고 반물질. 디랙이 예언한 반물질은 오늘날 PET 스캐너라는 의료 기기 속에서 매일 사용됩니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방출하는 양전자가 조직 속 전자와 소멸하면서 두 개의 감마선을 방출하는데, 이것을 검출해 3차원 이미지를 만듭니다. 암 진단, 뇌 활동 연구에 필수적인 기술입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PET 스캔을 받습니다. 그들이 알든 모르든, 1931년 디랙이 방정식에서 찾아낸 음의 에너지 해가 그들의 암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 파트 6. 파동 역학과 반물질이 남긴 철학적 질문

 

슈뢰딩거와 디랙의 업적은 물리학을 바꾸었을 뿐 아니라 철학적 질문을 새롭게 제기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제기한 측정 문제는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파동함수가 실제로 무엇인지, 측정이 일어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논쟁이 계속됩니다. 코펜하겐 해석, 다세계 해석, 관계적 해석, 의식 유발 붕괴 이론 — 수십 가지 해석이 있지만 어느 것도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디랙의 반물질이 제기한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가? 빅뱅에서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만들어졌다면, 왜 지금 우주에는 물질만 있는가? 이 비대칭의 원인을 CP 위반이라는 현상에서 찾고 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CP 위반의 크기로는 관측되는 물질-반물질 비대칭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아직 이 질문의 답을 숨기고 있습니다.


 

📜 파트 7. 마무리 — 파동과 반물질의 세계

 

슈뢰딩거와 디랙은 서로 매우 달랐습니다.

슈뢰딩거는 사교적이었고, 글을 잘 썼으며, 철학적 성찰을 즐겼습니다. 그의 고양이는 일상 언어로 양자역학의 이상함을 전달하는 가장 성공적인 비유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생을 충분히 즐겼습니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고, 철학과 시를 사랑했습니다.

디랙은 침묵의 사람이었고, 수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보다 방정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정식이 반물질을 예언했습니다. 그의 삶은 수식만큼이나 간결했고, 수식만큼이나 심오했습니다.

두 사람의 언어는 달랐지만 결국 같은 진실을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얼마나 깊고 이상하고 아름다운지를.

오늘날 슈뢰딩거 방정식은 화학자들이 원자와 분자를 이해하는 기본 도구입니다. 디랙 방정식은 입자물리학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반물질은 PET 스캐너라는 의료 장비 속에서 매일 사람을 살리는 데 쓰입니다.

두 천재가 만든 수식이 오늘날 세상 곳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반도체 공장에서, 가속기에서, 컴퓨터 스크린 뒤에서. 그들이 발견한 진실은 좁은 시상식장을 넘어, 인류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 파트 8. 슈뢰딩거 방정식과 디랙 방정식이 함께 만든 세계

 

슈뢰딩거 방정식과 디랙 방정식은 별개의 이론이 아닙니다. 디랙 방정식이 슈뢰딩거 방정식의 상대론적 확장입니다. 낮은 에너지 극한에서 디랙 방정식은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환원됩니다.

두 방정식은 서로 다른 영역을 담당합니다. 화학, 원자물리학, 비상대론적 현상 — 슈뢰딩거 방정식의 영역. 고에너지 물리학, 소립자, 상대론적 현상 — 디랙 방정식의 영역.

현대 물리학은 두 방정식 모두를 필요로 합니다. 화학자들은 주로 슈뢰딩거 방정식을 사용합니다. 입자물리학자들은 디랙 방정식에서 시작한 양자 장론을 사용합니다.

 

양자화학의 혁명

 

슈뢰딩거 방정식이 화학에 가져온 변화는 근본적이었습니다.

1930년대 이전까지 화학은 경험적인 학문이었습니다. 원소들이 어떤 비율로 반응하는지, 어떤 분자가 안정한지는 실험으로 알았습니다. 왜 그런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원자와 분자의 전자 구조를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화학이 물리학의 언어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소들의 주기율표가 왜 그런 패턴을 가지는지, 공유 결합이 왜 생기는지, 분자가 왜 그런 모양인지를 계산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계산화학은 거대한 분야입니다. 약물 분자가 표적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하는지 컴퓨터로 계산해서 신약을 개발합니다. 새로운 촉매를 설계할 때 반응 경로를 계산합니다. 신소재의 특성을 합성 전에 예측합니다. 이 모든 계산의 바탕에 슈뢰딩거 방정식이 있습니다.

 

디랙 방정식과 표준 모형

 

디랙 방정식은 현대 소립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표준 모형은 자연의 근본 입자와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이론입니다. 전자, 쿼크, 뉴트리노 같은 페르미온들의 행동이 디랙 방정식에서 시작한 이론으로 기술됩니다.

표준 모형은 인류가 만든 가장 성공적인 이론 중 하나입니다. 전자의 자기 모멘트를 소수점 아래 12자리까지 예측합니다. 약한 핵력이 질량이 있는 W와 Z 보손으로 매개된다고 예측했고, 실험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힉스 보손의 존재를 예측했고, 2012년 LHC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디랙이 1928년 만든 방정식의 확장과 발전입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남긴 유산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오늘날 양자 컴퓨팅의 핵심 개념과 연결됩니다.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라는 단위를 사용합니다. 큐비트는 0이기도 하고 1이기도 한 중첩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어있기도 하고 살아있기도 한 것처럼.

이 중첩을 이용하면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양자 컴퓨터가 특정 문제에서 고전 컴퓨터보다 지수적으로 빠른 이유입니다.

슈뢰딩거가 1935년 코펜하겐 해석의 이상함을 드러내기 위해 제안한 고양이 사고 실험이, 90년 후 양자 컴퓨팅의 핵심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비유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과학 역사의 아이러니이자 경이로움입니다.

 

두 사람이 남긴 것

 

에르빈 슈뢰딩거는 파동 방정식을 만들었습니다. 원자의 전자를 파동으로 기술하는 언어. 그 언어는 화학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고, 생명의 분자 구조를 탐구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폴 디랙은 반물질을 예언했습니다. 수학의 아름다움이 자연의 진실을 가리킨다는 믿음에서. 그 예언이 병원에서 암을 진단하는 PET 스캔이 되었고,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양자역학의 두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파동의 언어와 행렬의 언어. 그리고 그 언어들이 오늘날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원자에서 별까지, 의약품에서 컴퓨터까지, 일상의 모든 것 뒤에 두 사람의 방정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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