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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_Novel/305_노벨화학상

[2019 노벨화학상] 존 굿이너프, 스탠리 위팅엄, 요시노 아키라 : 세상을 충전하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발명

by 어셈블러 2025.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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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주머니 속에 노벨상이 들어있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 가방 속의 노트북, 그리고 도로 위를 달리는 전기자동차. 이 모든 편리한 현대 문명을 가능하게 한 단 하나의 발명품이 있습니다.

바로 '리튬이온 배터리(Lithium-ion Battery)' 입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우리는 '벽돌'만한 휴대전화를 들고 다녀야 했고, 배터리가 다 닳으면 새 건전지로 갈아 끼우거나 무거운 납축전지를 짊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작고, 가볍고, 수백 번을 충전해도 끄떡없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등장으로 인류는 전선(Wire)의 구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무선(Wireless) 시대' 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노벨 위원회는 이 위대한 발명품을 만든 세 명의 과학자에게 노벨 화학상을 수여하며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충전 가능한 세상을 만들었다(They created a rechargeable world)."

석유 파동의 위기 속에서 배터리의 가능성을 본 영국의 스탠리 위팅엄(M. Stanley Whittingham). 배터리의 출력을 두 배로 뻥튀기시킨 미국의 최고령 수상자 존 굿이너프(John B. Goodenough). 그리고 폭발하지 않는 안전한 배터리를 완성하여 상용화한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Akira Yoshino).

가벼운 금속 하나를 길들여 거대한 에너지 혁명을 일으킨, 40년에 걸친 배터리 진화의 대서사시를 소개합니다.

 

📜 스탠리 위팅엄 : 오일 쇼크가 낳은 아이디어

 

이야기의 시작은 1970년대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오일 쇼크(석유 파동)' 였습니다. 기름값이 폭등하자 사람들은 화석 연료를 대체할 새로운 에너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엑손(Exxon)의 연구원이었던 스탠리 위팅엄은 전기 자동차를 꿈꾸며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리튬(Lithium)' 에 주목했습니다. 리튬은 금속 중에서 가장 가볍고, 전자를 잃으려는 성질(이온화 경향)이 가장 강했습니다. 즉, 배터리의 음극(-) 재료로는 리튬보다 좋은 게 없었습니다.

문제는 양극(+) 이었습니다. 리튬이 던진 전자를 받아줄 그릇이 필요했습니다. 위팅엄은 '이황화티타늄($TiS_2$)' 이라는 물질을 발견합니다. 이 물질은 층층이 쌓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리튬 이온들이 층 사이로 쏙쏙 들어와 박힐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터칼레이션(Intercalation, 층간 삽입)' 원리입니다. 화학 반응으로 물질을 부수는 게 아니라, 마치 호텔 방에 손님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듯이 리튬 이온을 저장했다가 꺼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위팅엄은 1976년, 세계 최초로 충전 가능한 리튬 배터리를 만들었습니다. 2볼트(V)의 전압을 내는 훌륭한 배터리였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펑!" 순수한 리튬 금속을 쓴 음극은 너무 불안정했습니다. 충전을 반복하면 리튬 표면에 가시 같은 결정(덴드라이트)이 자라나 분리막을 뚫고 합선을 일으켜 폭발해 버렸습니다.

 

🧐 존 굿이너프 : 전압을 두 배로, "코발트의 마법"

 

1980년, 옥스퍼드 대학의 존 굿이너프 교수는 위팅엄의 배터리를 보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2볼트는 너무 약해. 양극 재료만 바꾸면 훨씬 더 강력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는 금속 황화물($TiS_2$) 대신 '금속 산화물' 을 쓰면 전압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산화물을 테스트한 끝에, 오늘날 배터리 역사를 바꿀 운명의 물질을 찾아냅니다.

바로 '코발트산 리튬($LiCoO_2$, LCO)' 이었습니다.

이 물질 역시 층층이 쌓인 구조라 리튬 이온을 잘 받아들였지만, 황화물보다 리튬을 당기는 힘이 훨씬 강했습니다. 굿이너프가 만든 새로운 양극을 쓰자, 배터리의 전압은 단숨에 4볼트(V) 로 뛰어올랐습니다.

"용량이 두 배가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혁명이다."

굿이너프의 발견 덕분에 배터리는 훨씬 작아지면서도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폭발 위험이 있는 '리튬 금속 음극'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 요시노 아키라 : 안전핀을 뽑다, 상용화의 완성

 

마지막 퍼즐은 일본에서 맞춰졌습니다. 1985년, 아사히 카세이의 연구원 요시노 아키라는 굿이너프의 양극($LiCoO_2$)을 가져와서 완벽한 배터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안전성' 이었습니다. "폭발하는 순수 리튬 금속을 음극에서 빼버리자. 대신 리튬 이온을 안전하게 품어줄 다른 그릇은 없을까?"

그는 탄소(Carbon) 재료인 '석유 코크스(Petroleum coke)' 에 주목했습니다. 탄소 층 사이사이에는 빈 공간이 많아서 리튬 이온을 가두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 요시노의 최종 조합 ]

  • 양극: 굿이너프의 코발트산 리튬 ($LiCoO_2$)
  • 음극: 탄소 (C)

이 조합에서는 순수한 리튬 금속이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오직 '리튬 이온' 만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왔다 갔다(Rocking-chair) 할 뿐입니다.

요시노는 이 배터리 위에 무거운 쇠뭉치를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기존 리튬 배터리는 폭발했지만, 그가 만든 배터리는 찌그러지기만 할 뿐 멀쩡했습니다.

"안전하다! 그리고 가볍고 강력하다!"

마침내 1991년, 일본의 소니(Sony)가 요시노의 설계를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상업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출시했습니다. 바야흐로 모바일 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 노벨상 : 97세의 최고령 수상자

 

2019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존 굿이너프, 스탠리 위팅엄, 요시노 아키라에게 노벨 화학상을 수여합니다.

특히 존 굿이너프는 당시 97세로,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최고령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2023년 10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제야 주느냐"고 했지만, 굿이너프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좋은 일도 있군요"라며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의 이름(Goodenough)처럼 그의 업적은 인류에게 '충분히 훌륭한' 선물이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석 연료 없는 사회(Fossil-fuel-free society)를 가능하게 했다"며 그들의 공로를 치하했습니다.

 

📚 TMI : 소니의 도박과 굿이너프의 웃음

 

1. 캠코더가 살린 배터리

1990년대 초, 소니는 휴대용 캠코더(Handycam)를 작게 만들고 싶었지만 배터리가 너무 커서 고민이었습니다. 이때 요시노가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구세주로 등장했습니다. 비싸긴 했지만 작고 강력했기에 소니는 과감하게 이 기술을 채택했고,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후 워크맨, 노트북, 휴대전화로 이어지며 전설이 되었습니다.

2. 돈방석에 앉지 못한 발명가

굿이너프는 코발트산 리튬이라는 엄청난 물질을 발견했지만, 옥스퍼드 대학 측이 특허 관리에 소홀해서 큰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만든 기술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그만이다"라며 대인배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3. 노년의 열정

굿이너프 교수는 90세가 넘어서도 "아직 최고의 배터리는 나오지 않았다"며 더 안전하고 강력한 '전고체 배터리'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은퇴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 맺음말 : 인류에게 에너지를 담을 그릇을 주다

 

세 명의 과학자가 만든 '리튬이온 배터리' 는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에게 '에너지의 자유' 를 선물했습니다.

전선에 묶여 있던 전화기는 스마트폰이 되어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고, 매연을 뿜던 자동차는 전기를 먹고 조용히 달리게 되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배터리에 담아 밤에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벼운 금속 리튬 하나를 길들이기 위해 40년의 세월을 바친 그들의 끈기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는 충전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을 때, 97세의 나이에도 연구실을 지켰던 굿이너프 박사의 넉넉한 미소를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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